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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Jan 05. 2023

브런치북 수상 후기 - 출판사와의 미팅

연말과 연초를 동시에 통과하느라 글이 자꾸 밀리네요.

출판사와의 미팅은 잘 다녀왔습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1. 초록으로 위장하기

예감이 좋았습니다. 우선 서울에 산다고 했더니 대표님께서 파주에 위치한 출판사 대신 미팅 장소를 일민미술관으로 제안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학생 때부터 일민미술관은 괜히 좋았습니다.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현대식건물들 사이에 혼자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 같은 그곳을 좋아했습니다. 초록쳐돌이답게 초록색 코트에 초록색 수첩을 들고 초록 머플러를 둘러 저를 온갖 초록 부적으로 칭칭 감고 출발했습니다. 저희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았기에 저를 단번에 알아보실 수 있게 온갖 초록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초록 옷 입고 있습니다.' 라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2. 커피 - 우황청심환 - 커피 - 술 - 커피

하지만 초록 부적이 무색하게 심장이 꽤 쿵쾅거렸습니다. 미팅을 한두번 해보는 것도 아닌데 좋아한다는 건 두려움이라는 말이 절감되는 순간이였습니다. 거기에 긴장하면 부풀어오르는 위장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우황청심환 한 병을 들이마셨습니다. (저는 가끔 심장이 두근거리면 우황청심환을 한 병씩 마십니다.) 결국 오늘의 음료 라인에 우황청심환이 들어갔네요.


3. 본명 < 필명

대표님께서는 저를 윤작가라고 불러주셨어요. 글을 써왔었냐는 질문에 에세이 형식은 처음이라 부끄럽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활동명은 본명이랑 필명 중에 뭘로 하실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 드디어 고민하고 고민하던 게 맞닥뜨려졌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윤끼라는 이름은 기록할 기 를 합쳐 쓴거긴 하지만 왠지 어감이 '윤뽀로'로 정도로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본명은 너무 흔하기에 윤끼로 정했습니다.


4. 사전 준비

미팅 전 키키스미스 개인전이 시립미술관에서 있어 오전에 들렀습니다. 보는 내내 떠오르는 생각들이 흘러갈까 무서워 메모장을 가득 채우고 나왔어요. 도록을 사려고 서점에 들렀는데, 봉투에 초록새 한마리가 그려져 있었지 뭡니까. ‘오늘은 잘 풀리나 보군.’ 하고 전시를 다시 보러와야 겠다는 다짐과 함께 미팅을 갔습니다. 아마 운이 좋을 예정이였나봐요.


5. 윈도우 노트북을 꺼내들며

원래는 맥을 쓰는데 아시다시피 맥의 '한글' 프로그램은 정말 최악입니다.. 한컴에서 2014 이후 새 버전을 내놓지 않거든요. 클라우드라는 게 있다고는 하는데 불편해서 결국 윈도우 노트북을 꺼내들고 책상에 모니터 세 대를 펼쳐놓았습니다. 글을 신나게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껄껄.. 이전의 저를 지워야 새로 쓸 수 있겠죠.


6. 핑계

한동안 연말과 연초라고 글을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 주된 이야기의 제재가 반려동물인데 반려동물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글창고를 채웠어요. (핑계) 그리고 브런치북 발표 이전에 몇몇 곳에서 연재에 대한 문의가 들어와서 밑천이 드러나는 걸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책과 영화와 산책으로 재료들을 채워야할 것 같아요. (눈물)


미팅이 끝나고 행복했던 건, 나의 어떤 면들이 그대로 사랑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생각이 많고 어둡고 무거운 게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누누이 배웠어요. 이 사회는 밝고 행복하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부모님 조차도 자식이 복잡하지않고 긍정적인 따뜻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셨는데, 이런 세상에 어떻게 마냥 따뜻하고 행복의 한쪽 눈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물론 한병철 슨생님 덕에 조금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일민미술관에서의 두 시간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단단해지고 부끄러워지는 시간이였습니다.


다시 초안들을 다듬고 보니 도대체 어떻게 브런치 북에 당선이 된 건지 의아한 하루네요. 계속 다듬고 고치고 수정하고 뜯어보고 살붙이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종이로 나올 책은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뭉근히 써볼게요. 기대해주시고 관심주셔서 감사드리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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