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된 별명을 얻었다. 내 별명은 google man
[세 번째. 인생에 기회는 3번 온다]
세 번째 기회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아직 30대 중반이고 젊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업에 있어선 3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콜킴을 열심히 운영하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 퀵서비스는 중개수수료 사업이다.
콜킴을 첫 운영당시 매출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나는 물류업계에 공룡이 되야겠다 잠깐 꿈을 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바뀌었다.
고객은 단돈 만원을 쓰더라도 100% 만족을 원한다,
99%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퀵서비스 고객들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정작 고객과 일대일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은 퀵서비스 기사님들이었다.
대부분 퀵서비스 기사님들의 낮은 서비스정신, 그리고 불친절함
아무리 회사를 포장하고 브랜딩 하고 내실을 다져놔도 정작 단골손님은 길게 가지 못했다. 길어봤자 몇 개월이면 떠나간다.
갈증이 났다. 나는 이 상황이 매우 불만이었고 짜증이 났다.
내가 말했던 핵심역량, 중개업은 핵심역량이 나에게 없다.
퀵서비스가 다시 싫증 나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했고. 고민했다
드디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당연히 연쇄적으로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미련하게도 이제야 감을 잡았다.
그로부터 나는 온라인 마케팅을 계속 찾아봤고
네이버가 최고인 줄 알았던 나는
구글마케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백링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구글 상위노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구글은 네이버와 확실히 달랐다. 구글에선 상위노출의 매뉴얼을 스스로 공개해주고 있었다.
놀라웠다. 내가 알던 네이버란 곳은 상위노출을 막기 위해 마케터들에게 알고리즘에 혼란을 주었고
추측만 난무하며 정답은 없었고, 점점 네이버 블로그의 글들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키워드 도배성 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글은 달랐다 확실히 네이버보다 똑똑한 집단이다.
구글은 정답이 있었다 제시한SEO 매뉴얼에 맞게 질 높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면 검색결과 상위에 나타났다
그것이 SEO최적화 마케팅이다.
나는 이때 퀵서비스 사무실에서 백링크를 공부했다.
백링크란
삼성카드 홈페이지에
“우리는 카드배송을 콜킴퀵서비스에서 해요”라고
쓰여있고
callkim.co.kr 도메인을 링크해줬다면 그것이 백링크다, 대기업이 나를 링크했으니
나의 도메인 신뢰도는 올라가고 구글에서 퀵서비스를 검색하게 되면 콜킴의 순위가 높아지는 것이다.
2022년 35살
나의 마지막 세 번째 기회다, 이름은 콜링크..
콜링크를 시작하고
지금 글을 쓰는 이날 콜링크를 운영한 지 1년 2개월이 되었다.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성공한 노인이 되었어도
지금 이 순간을 내 황금기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전의 내 모습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달까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지금 내 옆엔 나를 도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싶어 안달 난 사람 같다..
이 정도면 횡재했다고 표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내 인생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고 소리쳐 자랑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콜킴을 운영하며 동시에 콜링크 시작 역시 처음부터 순조로웠다.
뷰랜딩 인스타 시스템을 만들었던 개발자가 만들어줬다.
이로 인해 사람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다
컴퓨터가 대부분의 일을 자동으로 처리했고
이 또한 뷰랜딩때와 같이 90% 이상의 순수익을 내는
좋은 수익구조를 안겨줬다.
그렇게 상담직원 한 명과,
개발자 한 명으로 나는 또 한 번,,
아니!
당연하듯 3개월 만에 월 3천만 원의 매출을 만들어냈다.
당시 나는 제주도 오피스텔에서 두 개사업을 운영 중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또 실망을 줘서 죄송하지만
이때쯤 나는 다시 출근을 안 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기회를 또 놓칠 것인가?
이전에 실패한 행동을 또 반복하는 내 모습을
회상하며 글로 쓰니 창피하다.
나는 마라톤에 빠져들었고 러닝모임에 나가며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낮에는 다른 사업을 시작해 보려 사람들을 만났다.
와인바를 해보려고 했고, 심지어 친구와 서귀포에 땅도 보러 다녔다.
매번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내 결정에 따라주는 와이프도 이때는 정말 반대했다.
나는 35살이지만 어린 철부지다.
뭐든 다른 사업을 도전하는 것은 좋은 거지만
이때만은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 나는 콜링크를 집중했어야 했다.
다행히 내가 신경을 많이 안 써도 콜링크는 성장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뭐 가끔 나갔고.
와인바는 차리지 않았지만, 다른 걸 했다
22년 6월 3일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떠난다.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엔 와이프의 희생이 있다. 아내 혼자 아이 세명을 케어해야 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해외로 어학연수를 갔다.
아.. 솔직히 너무 재밌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끼리 서로 영어도 모르면서
영어로 말하고 친해지려고 했다
내가 어학연수를 떠난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콜링크의 해외 진출이었다.
내가 하는 구글마케팅을 해외에도 팔아보고 싶었다.
이 말을!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내 소개로 백번은 말했던 거 같다.
나는 영어로 된 별명을 얻었다.
내 별명은 google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