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내 나이가 많다니? 나는 이제 겨우 50대 중반인데?
나는 멕시코에서 돌아와서 주변에서 하도 나이가 많다고들 하길래 내내 이를 부정해왔다. 내 나이가 많다니? 나는 이제 겨우 50대 중반인데?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말하자면 다들 살갑지는 않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든 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다들 남자들이라 만나더라도 살갑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보고 싶은 친구들이었다. 만나면 즐겁고 편하고 그런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을 정말이지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본래 모임이란 것이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루어지는데, 만나서 다음 모임을 결정하고 삼겹살 집에서 만나서 저녁하고 맥주집에 가서 한잔 더하고 헤어지는 게 다다. 그런데 만나면 정말 즐겁다. 나도 내 세대의 친구들과 만날 때 가장 편하고 즐겁다. 어떤 세대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렇게나 즐겁고 편한 모임마저 코로나-19가 밀어내 버렸다. 빨리 이러한 상황이 종료되길 바라면서 글을 이어간다.
모임을 몇 번 하면서 50대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 주제가 즐겁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인생을 5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소위 철든 후가 기준이라고 하면 30~40년을 살아오면서 삶에 아무런 굴곡이 없었겠는가? 생에서 겪을 것은 대부분 겪어보았을 것이고 지금도 겪고 있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들을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종종 드라마를 보면서 작가 분들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해피엔딩을 바라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나 새드엔딩을 고집하시는지에 대해 어떤 분의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그래야 기억에 아련하게 많이 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드라마와 영화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리 친구들은 반은 주류이고, 반은 비주류이다. 여기서의 주는 술 주(酒)를 의미한다. 반은 제시간에 오고, 반은 조금 늦게 온다. 일찍 오면 어떻고 늦으면 어떤가? 그저 만남이 즐겁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코로나 상황으로 만남이 너무 뜸하다. 그렇다고 메시지로만 하기엔 우리는 그런 세대가 아니다. 역시나 만나고 부대껴야 속이 풀리는 세대다. 그래서? 인정하라고? 그건 좀 더 두고 보자. 암튼 다시 패턴으로 돌리면, 처음에 만나서는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식사 주문을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길 시작한다. 살아가는 이야기다. 때론 주제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굴곡이 없을 리가 없다. 아이들을 이야기하고, 경제를 이야기하고, 아픔을 이야기하고, 기쁨을 이야기한다. 듣는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하할 일은 축하도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옛날이야길 한다. "자슥아, 넌 옛날에 이랬어." "너는?" "우~ 하하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1차는 주로 삼겸살 집에서 한다. 2차는 주변 맥주집으로 향한다. 거기서 맥주 한잔씩 시키고, 나와 같은 비주류는 콜라 혹은 사이다에 안주빨 세우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 옛날이여. 즐겁고 편안하다. 그러다 문뜩 끝날 무렵이 되면 누군가가 이야길 툭 던진다. "우리가 이젠 나이를 먹었어." "잉?"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나이가 많다고?? 그래 봐야 50 중반 정도인데 뭐가 많다는 거지? 그렇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의 표현을 한다. 속으로 나는 정말이지 부정하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나 많은 나이를 먹은 건 아니다. 해봐야 50대이다. 50대가 나이가 많은가? 아이가 벌써 20 중반을 넘어갔다고 해서 나도 나이가 많다고 느껴야만 하는 건가?
뭘 기준으로 내가 나이가 많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가 하면.. 첫째로 나는 건강하다. 내 인생에서 내가 20-30대 때와 건강상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깡마름이야 나에겐 피할 수 없는 일인 듯하다. - 이게 입이 방정이 되면 안 되는데.. - 결국 건강이 제일이다. 둘째로는 사랑하는 아내가 옆에 있고, 아이들이 있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작금의 코로나 상황으로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안타깝지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끌벅적하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 또한 많은 나이를 부정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최소한 나의 느낌으로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대화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셋째로는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일들, 직장생활도 열심히 해왔고,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다.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물어보던, 무엇을 하고 있던 나이가 주제로 들어서게 되면, 일단 내 나이는 많다는 걸 아주 노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해도 나는 우리나라에 오니까 나이가 많아졌다. 그래도 인정하기도 했다. 나는 나이가 많다. 하긴 그래서 뭐?
나는 이제 내가 나이 많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악순환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무조건 긍정의 길로 들어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상황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설사 어느 정도의 기간은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 대더라도, 그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된 후에는 어떻게든 선순환의 고리를 잡아끌어야 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더 나쁜 상황이 올 것으로 지레짐작을 하기도 하고, 잠을 못 자고, 입맛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가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낼 수가 없다. 어려서 몸살감기가 걸리면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삼계탕을 끊이셨다. 약을 먹고 입맛은 전혀 없고, 몸은 떨리고 하는 상황에서 음식을 입안에 넣는 것조차도 싫어지는 상황에서 만약 국물이라도 떠 넣지 않았다면 그 몸살감기는 나를 한참을 더 아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지금 나의 나이 많음을 인정하고, - 그래, 이건 인정했다.- 그래서 살아온 날보다 죽음까지의 날이 더 적게 남았구나, 나의 뇌와 신체는 이미 노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 노화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지겠구나, 이젠 세대교체를 할 때이니 나는 물러날 때가 되었구나 등등등으로 언제까지나 징징댄다면, 세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노화는 정상 속도보다 배는 더 빨라질 것이며, 나는 이제 2선으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이미 물러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내가 나이 많음을 인정한다.
그래 인정하고, 이제 나는 나이들어갊으로 야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선순환으로 연결 지으려 한다. 나는 뇌와 신체의 노화를 늦추기 위하여 오늘도 운동도 하고, 멘사 문제도 풀 것이며, 마음이 더욱 풍족해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주변도 돌아보고, 같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욱더 살갑게 다가가려 노력할 것다. 그리고, 세대교체? 무슨 세대교체? 나는 일이 좋다. 일이 즐겁다. 언제나 현역이려 한다. 일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돌격 앞으로는 어제의 일이다. 전진 또 전진하되 현명하게 성숙된 삶과 어우러져 가는 그런 일의 방식으로 만들어 가려한다.
삶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나이로 구분되는 세대가 너무나 많은 조각으로 나누어질지라도, 주변에 아무도 그건 되기도 어렵고, 되지도 않을 것이라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성공 스토리는 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