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엄마, 어머니(장모님), 사랑합니다.
나는 여전히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아낀다.
밤에 잠자리에 들려고 아이들에게 잘 자라고 하면 우리 셋째는 언제나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매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듣는 이 말이 오늘 나에게 살갑게 다가왔다. 어떻게 보면 우리 셋째 아들이 내뱉는 이 밤 인사는 우리 가족에게는 신호가 된다. 이 말이 떨어짐과 거의 동시에 "사랑한다." "사랑합니다."는 말이 쏟아진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50대 중반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부모님을 향해서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드린 건, 내 기억으로 딱 한 번이다. 아내와 나의 부모님 해서 네 분이셨는데 - 아버님(장인어르신)은 돌아가셨다. -, 그중에 나의 어머니에게 딱 한번 "사랑합니다."라고 했었다. 그것도 술의 힘을 빌어 한 말이었다. 내가 술을 끊기 전에 멕시코에서 우리나라로 출장을 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술을 마시고,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전화를 드려 힘겹게 그 말을 내어 드렸다. 그거 딱 한 번이었다.
내가 멕시코에 근무하고 있을 때, 아버님 (장인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아내와 결혼한 지가 20여 년이 훌쩍 넘는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그 세월 동안 난 아버님을 몇 번 뵙지 못했다. 당시에 회사일이든 무슨 일이든 심지어는 명절날 술에 취해서든 (지금은 안 마신다. 끊은 지 꽤 되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아버님을 뵐 기회를 잘 만들지 못했다. 그저 뵈러 가야지 하고 가면 되는데, 그걸 못했다. 바보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러니 말씀이라도 "사랑합니다."는 언감생심이다. 그렇게나 어려운 말이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아버님을 병원에서 잠깐 뵌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도 아버님의 손을 잡고 그저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일어나셔야지요." 이 말이 뭐 그렇게나 어렵다고 그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손만 부둥켜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그 시간의 일들을 그렇게나 후회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아낀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50대들에게 부모님을 향한 이 말은 그렇게나 어려운 말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을 부모인 아내와 나에게 해주는 이 말을 나는 나의 부모님들에게 할 줄 모른다. 맨 정신으로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술을 마실 때는 술을 마시고라도 자주나 해볼 것이지, 그것도 못했다. 바보같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의미 없다.'
한때 우리 회사에서 회식을 하면서 우리 부서의 건배사가 "사랑합니다."였던 적이 있었다. 잔을 들어 부딪힐 때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와주었고, 나는 결코 쑥스럽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합니다."는 나를 쑥스럽게도 이상하게도 만드는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못하겠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한번 용기를 내서 "사랑합니다." 하면 될 것을 나는 아직도 못하겠다. 너무나 쑥스럽다.
내가 지금 부모님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드린다면, 아마도 첫 말씀은 "무슨 일 있니?"가 될 것이다. 소위 얘가 안 하던 말을 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의미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눈빛으로만 사랑을 표현한다, 보면 알지, 이런 말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빼고는 다 거짓이다. 독심술사도 아니고 표현도 하지 않는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포옹을 하여 도닥이던, 손을 잡고 톡톡하든, 말을 하든 어떤 형태로든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부모님께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을 쑥스러워서 못 드리겠다. 제발 언젠가는 한 번 해 보자..
"아버지, 사랑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어머니 (장모님), 귀한 딸 저와 함께 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