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는 어디이고, 그거는 무엇인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
숟가락에 밥 - 우리 집엔 언제부턴가 흰쌀밥이 없다 하얀 쌀에 현미와 콩이 언제나 같이 한다.- 을 크게 떠 놓고 그위에 고기 덩어리와 함께 푹 끓여 익힌 묵은 김치를 죽 찢어서 얹고, 파래 김 조각을 덮어서 입을 내가 벌릴 수 있는 만큼 크게 벌려 숟가락을 넣은 후 음식은 입 속에 남기고, 숟가락만 뺀 후에 느껴지는 맛은 지상 천하에 비할 맛이 없다. 아내의 김치찜은 소중하다 못해 나를 무한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여기서부터가 오늘 주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집에서 돼지고기 묵은 김치찜을 하거나, 우리들을 위해서 뭔가를 만든다 하면 집안이 약간 들뜬다. "거기서 그거 가져와." 거기는 어디이고, 그거는 무엇일까?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것도 모른다고 타박(?)이다. 그거는 또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빨리 그거 가지고 와."라는 말이 돌아온다. 난감하다. 아이들이야 기껏해야 20년여를 같이 살아왔고, 아기 때 빼고, 뭐 빼고 하면 몰라도 되는데... 나는 그야말로 철 들대로 들은 나이 이후 아내를 안 지가 30년이 넘는데, 그거를 아직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거기가 어디인지, 그거가 무엇인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그거 가져와." 하면 아이들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 정작 답답한 사람은 아내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우리 셋째 아이는 안다. 엄마가 "OO아, 거기 가서 그것 좀 가져와." 하면 딱 거기 가서 그걸 가져온다. 그게 참기름이 되었건, 냉장고 저 뒤에 모셔둔(?) 햄 조각이 되었든, 그걸 가져다준다. -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크기가 작다는 건 아님. (강조 ^^) - 셋째가 밖엘 나갔다 들어오는 시간, 아내가 그 빵가게의 롤케이크가 먹고 싶다 하는 날이면, 집에 들어오는 셋째 손에는 그 빵가게의 롤케이크가 들려 있는 날이 많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내가 뻘쭘해지는 순간이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내의 마음을 읽는 아이가 셋째이다. 귀엽다.
실제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건 어렵다. 어떤 상황에서도 알기가 쉽지 않다. 설사 읽는다 해도 이는 관심이 아닐까 싶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과 오래 하다 보면, 소위 눈빛만 봐도 안다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좀 다른 생각이지만.. 눈빛만 봐도 뭘 안다는 말인가? 영화를 봐도 눈을 보고 이야기하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의미 없다'는 나의 생각은 변함없다.
그럼에도 "거기서 그거 가져와."는 아내의 소위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 말이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우리 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는 아내가 이 습관을 고치지 말기를 바란다. 굳이 바꿀 이유도 없다. 그대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