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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삼오 Jul 31.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터널 선샤인>, 2004

 영화는 어느 아침, 출근길로 향하던 열차에서 뛰어내려 몬톡으로 향하는 조엘을 비추며 시작한다. 무언가에 홀린 듯 시작된 갑작스러운 여행길에서, 그는 파란 머리의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제멋대로인 그녀의 태도에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며, 그는 클레멘타인과 사랑에 빠진다.
 여기서 이 둘이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들은 이미 사랑한 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사랑의 기억을 지우길 택했다는 것.
 첫 이끌림의 이유였던 '다름'은 익숙함과 묶여 어느새 서로를 지치게 했으며, 조심스럽던 말들은 거칠어졌다. 조엘의 눈에 비친 클레멘타인은 충동적이었으며, 클레멘타인의 눈에 비친 조엘은 지루했다. 상처로 마무리된 그 사랑의 끝에서, 그들은 기억을 지워주는 곳, '라쿠나'로 향했던 것이다.

 그 모든 기억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지워가던 조엘은 기억 속의 자신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반짝였음을, 그리고 클레멘타인을 증오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사실은 그녀와의 기억들을 너무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조엘은 뒤늦게 '이 기억만은 남겨달라'며 울부짖지만, 기억은 계속해서 지워져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은 때때로 가장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향수가 그 순간 속에 함께하던 것들의 부재와 맞물리면, 그 달콤함은 순식간에 고통으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기억들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어떤 감정은 그 기억을 지웠을 때조차 쉽게 사라지지 않고 아주 오래도록 남기에. 그 모든 감정을 둘러싼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끌어안은 채 살아가다 보면,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던 기억은 마침내 추억이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영화는 기억과 더불어 '지금'의 아름다움에 역시 포커스를 맞춘다. 사랑의 영원함을 꿈꾸고 동경하는 여느 영화와는 다르다. <이터널 선샤인>은 '영원하지 않을지라도,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지금의 사랑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사랑은 늘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태롭다. 빙판에 누워 별을 바라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아름다움에 겁 없이 올라 서로를 바라보는 무모한 도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음미하기를 택하는 것.
 라쿠나의 추적을 피하려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결국 그들이 처음 만났던 오두막에서 기억의 붕괴를 맞는다. 무너지는 집을 빠져나가려는 조엘을 붙잡으며, 클레멘타인은 말한다. "이번에는 그냥 있지 그래?"
 몸 담고 있는 사랑이라는, 그리고 운명이라는 집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그 운명 위에 함께하길 택한다. 끝나가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힘껏 끌어안는다. 그리고 '몬톡에서 만나자'는 클레멘타인의 속삭임과 함께 그들을 둘러싼 모든 기억은 무너져 내린다.
 서로에 대한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몬톡에서 만나 또 한 번 사랑에 빠진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라쿠나'에서 온 테이프 속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혼란에 빠진다. 이미 한번의 무너짐을 겪은 사랑이기에, 아마도 같은 결말로 향할 사랑이기에,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다시 한 번 사랑하기를 두려워한다. 조엘은 곧 이기적인 클레멘타인을 거슬려할 것이며, 자신은 조엘을 지루해하게 될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엘은 '괜찮다'고 말한다.
 <견뎌야 하는 단어들에 대하여>를 쓴 김준 작가는 사랑이란, 운명이 '너희는 여기까지'라며 선 그을 때 손을 잡고 그 선을 넘어 걸어가는 것이라 말했다. 영원하지 않을지라도 사랑을 이어나가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 안에 머물기를 택하는 것. 사랑이라는 빙판이 깨질 어느 날의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스스로 그 아름다움에 눈이 멀기를 택하는 것. 사랑의 가치는 완전함 또는 영원함 따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두려움 없이 설레고 몰입한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아플 걸 알면서도 기억을 끌어안는 것. 어쩌면 사랑은 시작부터 끝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을 향해 뛰어드는 용기.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사랑은, 그리고 햇살은 기억을 잊은 이의 것처럼 영원할 수는 없을 테지만-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그럼에도 햇살은 찬란하다.

 흘러나오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영화에 두었던 초점을 스스로에게로 옮겨 본다. 녹아내리는 빙판 위에서 나는 마지막까지 마음을 다했는가. 상대방이 두려움에 숨어버렸음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곳에 남았다. 설렘에 취해 영원할 거라 믿었던 반짝임이 상처를 남기며 흐려져 갈 때조차 그 끝을 온 마음으로 받아냈으며, 마지막까지 그 모든 마음들을 받아들이며 깊숙한 곳에 담아두었다. 한때 힘껏 반짝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버린 그 시간들을, 그리고 기억들을 추억으로 남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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