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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삼오 Aug 30. 2020

얼마나 힘주어 살아가야 하나

완벽주의와 무기력 사이에서

 완벽주의와 무기력,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해왔다. 때로는 지나치게 힘을 주어 살다 무너져 내렸고, 때로는 모든 걸 포기한 채 멋대로 흘러가게 두기도 했다.

 한 번쯤은 삶의 맥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어느 정도의 힘을 들여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얼만큼의 힘을 주어 살아가야 하나-

 온몸에 힘을 준 채 살아간 적이 있다. 그 무엇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진 것을 잃을까 하는, 그리고 바라는 것을 평생 가지지 못할까 하는 마음. 욕심인 동시에 공포였다. 공포는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그때의 나는 공포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려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닿은 질문은- 무엇을 위해서?

 그때의 나는 도망쳤을 뿐 목적지는 없었다. 두려움의 대상을 피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기에,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숨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포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나를 옭아매는 공포는 그 몸집을 점점 불려 갔으며, 그로부터 도망치는 길은 나의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다. 삐끗한 한 걸음에, 불어오는 바람 한 번에, 또는 누군가의 입김 한 번에 '그것들'은 속절없이 내 손을 떠났다. 떠나는 것을 잡겠다고 손을 움켜쥘수록 손 안의 공간은 좁아졌고, '그것들'은 더 빠른 속도로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렸다. 나는 흔들렸고, '그것들' 역시 흔들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애초에 내 손 밖의 일이었다. 잡는다고 잡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후 나는 무력감에 젖어 온 몸에 힘을 빼고 살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잠깐 편안한 듯 느껴지던 달콤한 착각이 끝나고, 곧 회의감이 몰려왔다. 삶에 대한 애착은 사라졌으며 애착 없는 삶은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단지 숨만 쉬는 그런 삶. 그 어떤 이유도 남아있지 않은 삶.

 게다가 아무렇게나 떠내려간 곳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흘러간 곳에 평화가 있으리란 기대는 어리석었다. 물살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도 포기한 채 떠밀려 도착한 그곳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것들에 치이며 아파했다.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놓쳤음에 대한 상실감이 나를 압도했다. 결국 아무렇게나 사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유 없는 숨은 쉽게 쉬어지지 않았다.

 이유 있는 숨을 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이유'들에 한해서 만큼은 온 힘을 다하고 싶었다. 내 손 밖에 있는 일들이 대부분일지라도-. 행여나 그것들이 나를 떠난다 해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붙들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쉬어야 할 숨이라면, 그 호흡이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행위이길 바랐다. 다만 상실 앞에서 담담해질 것. 마음을 다하되, 그 마음만으로 삶을 뜻대로 굴려나갈 수 없음을 받아들일 것.

 호흡에서 욕심을 빼기로 했다. 두려움을 빼기로 했다. 다만 필요한 힘은 남겨두기로 했다. 지키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서만큼은 온 힘을 다하기로 했다. 상실에 대한 공포로부터 도망치느라 힘을 빼는 대신, 녹초가 될 만큼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어졌다. 라디오의 고장난 부분에 목을 맨 채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흘러나오는 선율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그 선율의 아름다움을 힘주어 사랑하는- 그런 삶.

제멋대로 흐르는 사유의 막바지에서, 나는 애초의 질문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어느 곳에, 어떤 힘을 쏟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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