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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98. 변기솔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매일 집안 청소를 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 출가한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청소를 합니다. 예전에는 행여 먼지가 아이들 건강을 해칠까 싶어 손에서 걸레를 놓지 못했는데, 지금은 먼지도 적당히 ‘나와 함께 살자’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젊은 시절의 칼날 같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 조금은 둥글둥글 해지나 봅니다. 

매일 생활하는 공간을 쓸고 닦고 하는 일은 꽤나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사람 움직이는 일이 모두 먼지와 함께하는 것이고, 아무리 쓸고 닦아도 금방 또 먼지가 쌓일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악마의 속삭임처럼 적당히 눈감고 외면할까 하는 마음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집안에 쌓인 먼지는 적당히 눈 감고 지낼 수도 있겠는데, 욕실만큼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이면 욕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 물때가 낀 거울,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더러워지는 변기 때문에 적게는 하루에 두 번, 많게는 수시로 청소를 해야 그나마 어느 정도 깨끗한 공간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변기는 조금만 소홀히 해도 더러워지기 때문에 변기 옆에는 항상 변기 솔을 두고 수시로 청소를 하게 됩니다. 

어제는 변기를 닦고 있는 하얀 변기 솔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문득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더러운 변기를 닦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욕실 청소를 하다 보니 변기 솔을 자세히 들여다 볼 일은 없었거든요. 변기 솔을 처음 살 때는 분명 하얀색이었는데 어느새 여기저기 조금씩 더러운 때가 생겼더군요. 다른 무엇인가를 깨끗하게 해주는데 몰두하느라 정작 자신의 더러움은 씻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힌 변기 솔의 존재가 그날따라 왜 그리 안쓰럽게 느껴지던지….

그래서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고 세제를 풀어 변기 솔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습니다. 때가 지워지고 처음 샀던 하얀 색으로 돌아온 변기 솔을 보고 있자니 그것 역시 처음부터 때가 탔던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만 생각하느라 변기 솔을 처음 고를 때 하얗고 예쁜 것으로 골랐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지낸 것이지요.

사람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생 남을 위해 일하느라 정작 자신은 챙기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외모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은 아름답게 꾸미지 못하는 사람, 남의 집을 고쳐주느라 정작 자신의 집은 고치지도 못하는 사람, 식당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밥을 먹이느라 정작 자신의 끼니는 수시로 거르는 사람,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 누군가를 빛나게 하느라 항상 그늘에서 뒷바라지만 하는 사람,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을까요. 

그분들도 남을 위해 일하기 전에는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누군가의 위대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남편이자 아내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문득 그분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좀 더 정성스럽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들이 없다면 다른 누군가의 일상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요.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의 모습, 그러나 돈이 아닌 마음으로 사람을 생각한다면 우리 주변 가까운 곳에서 반짝이는 그분들의 본래 모습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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