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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봄 Feb 10. 2022

296. 새집

어떤 시인은 ‘새들도 집을 짓는구나’라며 새삼 새와 집의 관계를 발견한 놀라움에 대해 노래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그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나무 꼭대기에 잔가지 몇 개로 얼기설기 엉성하게 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집도 참 과학적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 와서 규칙적으로 얹어 집을 만듭니다. 밑에는 제법 굵은 나뭇가지로 기초를 만들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도 튼튼한 나뭇가지를 얹어놓지요. 뾰족한 것이 아니라 안정감 있는 타원형으로, 그것도 중간 중간 진흙을 발라 튼튼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새끼를 길러야 하니 솜털 같은 것도 깔아 아늑하게 만들어둡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새들이 둥지를 짓는 기술은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짓기도 하고, 어떤 새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짓기도 합니다. 집을 짓는 기술이 늘어갈수록 마치 사람이 경험을 살려 더 세밀하게 집을 짓는 것처럼 새들도 건축 재료인 풀잎의 양을 조절해서 떨어뜨리기도 한다지요.

최근 집 짓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살 공간을 마련하고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 아늑하게 만드는 과정이 큰 틀에서는 새집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집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선이 그어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집 지을 공간이 확보되면 땅을 파고, 콘크리트를 다져 넣어 기초를 만들고, 그 다음부터는 목수들이 나무를 짜서 뼈대를 세우고, 그 뼈대를 따라 다시 콘크리트를 부어가며 집의 형태를 만듭니다. 

급하다고 다른 과정을 먼저 할 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진행해야만 합니다. 외부 형태가 끝나면 내부 마감이 시작되고, 내부가 끝나면 새가 깃털을 채워 아늑하게 만드는 것처럼 가구를 들여놓고 페인트칠을 하면서 말이지요. 수십, 수백 가지의 정성이 담긴 단계들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이 들어앉아 편히 살 수 있는 집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거처할 집을 짓는 것, 그리고 경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나 새나 모두 같을 수 있지만 사람과 새가 분명하게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은 집에 애착을 갖고 집을 가꾸면서 대를 이어 살기도 하지만, 새들은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른 다음에는 미련 없이 그 집을 떠납니다. 사람은 최대한 큰 규모로 집을 지어 자신의 권력이나 재력을 과시하려고 하지만, 새들은 자신의 몸에 알맞은 크기로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큰 새는 조금 크게, 작은 새는 조금 작게 집을 만듭니다. 알을 품을 공간만 있으면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의 집짓기와 새의 집짓기가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만일 집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가능한 젊은이들의 집은 조금 컸으면 좋겠습니다. 넓은 곳에서 생각도 조금 넓게 갖고 아이들도 마음 놓고 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은 나이만큼 집의 규모도 작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기력이 쇠약해지는 만큼 내가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집에 머무는 것이 편할 테니까요. 단순히 사람이 머무는 곳이 아닌 삶을 영위하는 공간으로서의 집, 우리들의 집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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