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 살이 된 작은 아이가 초콜릿 하나를 손에 쥐고 환하게 웃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 표정에는 이제 곧 먹게 될 달콤한 초콜릿 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방금 전에 형과 다투었거나 그 일로 인해 엄마에게 혼이 났다 해도 아이는 지금 손에 쥔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이에게는 다투거나 혼난 과거보다 ‘현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주 웃을 수 있고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더니 초콜릿을 손에 쥐고 활짝 웃는 아이의 사진을 보며 나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또 한 번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행복을 느끼는 횟수가 점점 줄어듭니다.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을 아이는 환한 웃음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간 일들을 현재와 연관 짓지 말고 지금 내 손에 쥔 초콜릿이 주는 행복한 감정에 집중하면 된다고,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돌이켜 보니 예전에는 자주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주말 아침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누군가가 전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탕 하나에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행복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다른 직장동료의 책상 위에 사탕 하나를 올려놓거나 혹은 사탕 한 봉지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건물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나 카페 종업원에게 사탕 하나씩을 건네곤 했습니다. 별거 아닌 사탕 하나에 상대방의 무표정했던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을 보면 내 마음도 행복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행복이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작은 사탕 하나에도 많은 생각이 오고갑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사탕을 주면 괜한 오해를 받지는 않을까, 내 나이가 몇 살 인데 고작 이렇게 사소한 사탕을 건네도 될까, 상대방이 오히려 무시당한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르면 사탕을 건네는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런 고민도 사라지게 되니까요.
주지 않으니 받을 수 없고 아무런 대가 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상대방은 물론이고 내가 느끼는 행복도 그만큼 줄어든 것입니다. 현재의 내 감정은 작은 사탕 하나라도 나누고 싶지만 그 작은 사탕 하나에도 나이와 직책과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결합되면서 행복을 포기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소소한 행복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미래에 갖고 싶은 큰 집이나 고급 외제차, 멋진 해외여행 등 큰 행복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고통을 인내하며 돈을 법니다. 지금의 고통은 미래의 행복을 거머쥐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고, 타인의 작은 눈짓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하루 속에서 이마에는 하나 둘 주름이 늘어갑니다.
그러면서 또 질문합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왜 나만 행복하지 않을까요. 정작 내가 했던 그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오늘은 세 살 먹은 아이의 환한 미소 속에서 찾게 됩니다. 그 작은 아이가 내게 환한 웃음으로 말하는 듯합니다.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느낄 수 있어요”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