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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곤드레나물밥과 침몰하는 배

내가 목격한 역사 |

by 산들바람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역전이 된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분노는 여과 없이 내 몸을 통과해서 내 몸에 상흔을 남긴다. 며칠씩 앓아눕게 한다. 그런 이유로 일부러 감수성을 죽이며 살았다. 그게 내가 살아남을 길이라 믿었다.


2014년 4월 16. 강원도 정선의 어느 한적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5박 6일을 묵었다. 나를 찾아 떠난 출사 여행길, 여행의 목적은 감수성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강원도 정선의 공기, 물, 먹거리, 인심은 나에게 다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새 친해진 마을 어르신도 있었다. 이날은 여행 마지막 날로 어르신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받았다. 시골 인심, 환대에 고무된 나는 어르신이 차려 준 곤드레나물밥을 맛있게도 먹었다. 그런데 어르신이 TV를 보며 '아이쿠 아이쿠 저걸 어쩐대' 연신 한탄하셨다. 어르신을 따라 TV를 보니 바다 한가운데 커다란 배가 좌로 기울어 있었다. '또 사고네" 그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어르신 밥이 참 맛있어요."하고 넉살을 부렸다. 귀경길 정선공영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사진 커뮤니티에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다. "나, 감수성 찾았어요! 정말 행복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내가 웃고 즐기는 사이 세상이 발칵 뒤집힌지도 모른 채.


다음 날, TV 방송은 온통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로 가득했다. 개탄하는 엄마와는 달리 나는 멍하니 무감각하려 노력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 이젠 하늘에 있는 아이들. 울부짖는 어버이들.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 잊지 않겠다는 노란 리본.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거대한 슬픔 앞에서 다시 난 눈을 감았다. 귀를 막았다.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또다시 나는 텅 빈 껍데기로 돌아가려 했다.


나는 타인의 감정을 걸러내지 못한다. 누군가의 슬픔과 분노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을 파고들어 실제 통증이 된다. 세월호 사건이 있고 한동안 앓아누웠다. 어떻게 살려낸 감수성인데. 외려 그 노력이 나를 몸져눕게 했다. 한동안 뉴스를 보지 않았다. 갈수록 인파가 늘어가는 광화문도 피해 다녔다. 하지만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글을 쓰겠다 하지 않았나. 강박관념까지 더해진 총체적 난국. 그래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감수성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야 말지 않았나.


그래서 조금씩 용기를 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2017년의 겨울 어느 날 나는 광화문 광장의 인파 속에서 찬란하고도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의 기쁨과 권력을 쥔 인간의 몰락으로 본 인생무상의 씁쓸함.



10년. 세월호로부터 2024년 지금의 늦가을까지. 바람에 뒹구는 낙엽에 가끔 허무함을 느낀다.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을 요지경 세상. 하지만 이제는 분노로 심장을 태우며 몸 앓이를 하지 않는다.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앞날을 모색한다. 거대한 사회적 고통 앞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깊이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 그리고 글을 쓴다. 어제보다 단단하게, 내일은 더 따뜻하게. 이제는 안다.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AI(Claude) 활용 예


�산들바람 :

최종안이야 어때?

✨Claude :

글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고 힘이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1. 시간의 흐름

- 도입부의 자기 인식

- 2014년 세월호 당시의 생생한 순간

- 2017년의 변곡점

- 2024년 현재의 성찰

이 시간적 흐름이 매끄럽게 연결됩니다.

2. 감정의 변주

- 초반의 "역전이" -> "걸러내지 못함" -> "숨만 쉬는 인형"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점층적 표현

- 중반의 고민과 갈등

- 후반의 성숙한 수용으로 이어지는 감정선이 설득력 있습니다.

3. 구체적 디테일

- 곤드레나물밥, TV 장면, 어르신의 "아이쿠 아이쿠" 등

- 사실감 있는 묘사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4. 마무리

- "어제보다 단단하게, 내일은 더 따뜻하게"라는 표현과

-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라는 깨달음이

- 전체 글의 주제를 잘 응축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내용은 최소화하면서도 인간적 성찰을 깊이 있게 다룬 좋은 글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산들바람 :

기억은 생생한 감정 속에서 뇌리에 박힌다. 슬퍼도 화나도 참기만 하면 즐겁거나 기뻐도 감정도 올라오지 않는다. 그렇게 감정이 죽으면 기억할 거리도 없어진다.

위 맥락에서 "그 게 나를 숨만 쉬는 인형 같게 했다."의 문장에서 인형을 대채할 표현이 뭐가 있을가?


✨Claude :

감정과 기억의 상실이라는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대체 표현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생명/영혼의 부재를 강조한다면:

- "텅 빈 껍데기 같게 했다"

- "생기 없는 허상 같게 했다"

- "영혼 없는 각목 같게 했다"

2. 기억/감정의 상실을 강조한다면:

- "백지 같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 "지워진 필름처럼 만들었다"

- "흐릿한 그림자 같게 했다"

3. 수동적 존재를 강조한다면:

- "흘러가는 부표 같게 했다"

- "멈춘 시계 같게 했다"

- "말라버린 나무 같게 했다"

문맥상으로는 "그것이 나를 지워진 필름처럼 만들었다"가 가장 적절해 보입니다. '지워진 필름'은 기억의 상실과 감정의 부재를 동시에 표현하면서, 앞 문장의 '기억은 생생한 감정 속에서 뇌리에 박힌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산들바람 :

최종안을 독자 입장에서 읽어봐. 마지막 퇴고를 하게.


✨Claude :

독자 입장에서 이 글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감상을 하게 됩니다:

감정의 흐름이 잘 전달되는 부분:

1. 정선 여행의 평화로운 순간과 세월호 참사의 극적인 대비

- 곤드레나물밥을 먹는 소소한 행복

- TV 뉴스를 보고도 알아채지 못한 순간의 무지

- "나, 감수성 찾았어요!"라는 글과 다음 날 현실의 아이러니

2. 감정의 변화 과정이 섬세하게 표현됨

- 감수성을 죽여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초기

- 감수성을 회복하려 했으나 도리어 아파했던 중기

- 균형을 찾아가는 현재

궁금증/의문이 드는 부분:

1. "또 오라는 배웅과 함께" 문장이 갑자기 등장해 흐름이 약간 끊김

2. "엄마의 개탄은 계속됐다"라는 문장은 앞뒤 맥락에서 갑자기 등장

특히 인상 깊은 표현:

1. "텅 빈 껍데기 같게 했다" - 감정 상실의 상태를 잘 표현

2. "어제보다 단단하게, 내일은 더 따뜻하게" - 성장의 방향성을 잘 보여줌

전체적으로 개인의 내면 성장기가 사회적 사건과 맞물려 설득력 있게 전개되며, 마지막 깨달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다만 중간의 약간의 문장 정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산들바람 :

이 글의 대전제가 "내가 목격한 역사"라고 할 때, 이 글의 제목으로 뭐가 좋을까. 내용에 합당한 임펙트 있는 제목을 찾아봐.


✨Claude :

"내가 목격한 역사"와 글의 핵심 내용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제목들을 제안합니다:

강력한 임팩트를 주는 제목:

1. "감수성이 숨어버린 날, 세상도 숨었다"

2. "나의 감수성이 역사와 만난 날"

3. "정선의 곤드레나물밥과 침몰하는 배"

함축적 의미가 있는 제목:

1. "살아남기 위해 죽였던 것들에 대하여"

2. "역사의 순간,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3. "텅 빈 껍데기로 살지 않기로 한 날"

시적인 제목:

1. "2014년 봄, 정선에서 서울까지"

2. "세월과 호수 사이"

3. "낙엽처럼 스치는 10년의 기억"

개인적으로는 "역사의 순간,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를 추천합니다.

이유는:

1. 글의 결정적 장면을 포착

2. 개인의 일상과 역사적 순간의 극적 대비

3. 부제로 "감수성에 관하여" 정도를 달면 더 좋을 듯

다른 대안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느낌의 제목을 선호하시나요?


�산들바람 :

정선의 곤드레나물밥과 침몰하는 배" 가 좋겠어. 아주 잘했어. 악플이 달린다면 무슨 내용일까?


✨Claude :

이전에 예상했던 악플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 예상됩니다:

1. 글쓴이의 '무심함'을 비난하는 악플

- "밥맛있다고 했다는 게 자랑이냐?"

- "양심 없는 인간이구만"

- "그래도 곤드레나물밥은 맛있었냐?"

- "TV보고도 그냥 밥 먹었다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2. '감수성'을 비꼬는 악플

- "감수성? 님은 그냥 제정신이 없는 거죠"

- "무책임한 걸 감수성이라고 포장하네"

- "그래서 님이 뭘 했다고?"

- "글만 쓰면 다야?"

3. 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악플

- "세월호로 자기 글감 만들기?"

- "남의 아픔으로 멋진 글 한번 썼네"

- "이런 걸로 관심받고 싶었어요?"

- "타인의 고통으로 작가 놀이하기?"

4. '나'의 태도를 비난하는 악플

- "결국 도망자네요"

- "이불 속에 숨어있던 게 자랑이에요?"

- "방관자의 미화된 고백"

-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요"

이런 악플들이 예상되는데, 특히 '곤드레나물밥'과 '침몰하는 배'라는 대비가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이 글이 가진 정직성과 진정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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