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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자운봉

가장 도전적인 순간 |

by 산들바람

글쓰기에도 허니문 기간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밤이 늦어도 힘든 줄 모르고 글을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나중에는 무엇 때문에 고통을 자처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글을 쓰며 환희에 찼던 것만큼 글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길 바라고 바랐다. 불꽃놀이, 파바박 불꽃이 피어오르듯 글쓰기의 황홀경에 다시 빠지고 싶었다. 무거운 엉덩이는 꿈틀대는 열망을 주저앉힐 뿐이다. 하여 비바람도 자신을 연마하는 도구로 삼을 것 같은 바위산, 도봉산으로 갔다.


지하철 첫차에서 내리니 찬 공기에 기침이 났다. 꽉 닫힌 텀블러 뚜껑을 열었다. 공기 중으로 하얀 김이 퍼지면서 부드러운 커피 향이 났다. 코끝이 간지러웠다. 도봉산 초입에 들어서자 ‘2인 이상 등반’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수락산 묻지 마 살인사건 같은 강력범죄가 생각났다. ‘무섭다고 돌아서면 아무것도 못 하지.’ 동이 트기 전이라 겁이 났지만, 조심스럽게 걸음을 뗐다.


산은 그냥 오르는 것이 아니다. 종아리 허벅지 근육이 뭉치고 당기고, 땀이 나고 숨이 차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마음이 격렬히 싸우다가 그래도 가고야 말겠다는 쪽이 승기를 잡으면, 산은 비로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그 시험 격인 돌계단을 끝없이 올랐다. 숨이 차서 어지러웠다. 옷이 땀에 젖어 축축했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힘에 부쳤다. 가까스로 계단 끝에 다다르니 쉬어가기에 딱 좋은 너럭바위가 보였다. 도봉산 둘레길로 빠지는 갈림길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쉰 후 바위에 걸터앉았다. ‘힘들다. 그만하고 내려갈까?’ 그때 스윽 불어온 바람이 온몸을 에워쌌다. 시원했다! 이 맛에 산을 타는 거지. 사라락 바람이 또 한 번 불었다. 다리를 쭉 펴고 고개를 들어보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숨바꼭질했다. 비로소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까마귀 울음소리가 나서 정신이 들었다. 까마귀는 머리 위를 맴돌며 계속 울었다. 그게 꼭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잘 왔어.” 마주 선 나무들이 잎을 흔들며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빠끔히 고개를 내밀다 재주를 부리며 달아난 청설모는 앞장서서 길을 봐주는 것 같았다. 나무 쪼는 딱따구리는 목탁을 두드리며 안심하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유년 시절의 감수성이 되살아났다.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바위에 손을 짚고 사과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알알이 깨어났다. 살아있다는 건 매일 먹는 사과를 산에서 먹었을 때처럼 감각이 확장되는 것이다. 흥이 오른 나는 어느새 산과 하나 되어 걷고 있었다.


꿈결 속을 거니는 것처럼 한참 가다 보니 머리가 띵했다. 산타는 재미에 취해 허기가 진 줄도 몰랐다.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김밥을 먹었다. 멀리 보이는 칼바위는 햇볕을 받아 우윳빛으로 빛났다. 햇빛이 머리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갑갑한 신발을 벗었다. 발이 더워 양말까지 벗었다.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속까지 시원했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마음이 순해졌다. 김밥 맛이 참 좋았다.


정상 자운봉까지는 1.2km를 더 가야 했다. 내려갈 시간까지 생각하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검게 그을린 피부에 다부지게 생긴 아저씨가 곁으로 왔다. 힘을 받는 데는 산만 곳이 없다고 산 예찬론을 펼치는데 말이 아주 잘 통했다. 그는 여자 혼자서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지만, 이왕 온 거 자운봉까지 가보라고 권유했다. 주저하며 망설이자 앞으로 가는 길은 능선이라 어렵지도 않다고 했다. 곡기에 뱃심이 생기니 귀가 팔랑였다. 자운봉에서 산 아래 세상을 굽어보면서 산바람을 맞고 싶었다.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일어섰다.


사람이 돈, 권력, 명예에 눈이 머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하는 집착이 정상을 향한 욕망을 부채질한다. 조금만 더 가면 자운봉이라는 집념은 여기서 내려가면 패배라는 미련을 낳았다. 능선은 무슨 능선, 자운봉에 가까워질수록 산타는 재미가 났다. 산에서 산타는 재미란 죽을힘을 다해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너무 재밌어서 꼭 죽을 것 같았다. 살길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산악회 리더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내려가는 길을 물어봤다. 아저씨는 5분이면 자운봉이고 거기서 반대편으로 하산하라고 했다. 산악인의 말은 듣는 게 아니었다. 산악인의 5분과 나의 5분은 같지 않다. 도봉산은 바위산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자각했을 때, 나는 Y 계곡 90° 수직 절벽에 매달려 있었다.


드디어 정상. 턱밑까지 찬 숨을 고르며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참 이상했다. 산 정상에 오른 성취감, 감격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날카로운 바람이 정신을 차리라고 따귀를 때리는 것 같았다.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고 해서 신선대야?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얼굴이 붉게 상기된 여자가 물었다. 신선대라. 자운봉이라고 서 있는 곳이 다름 아닌 신선대라니. 알고 보니 자운봉은 일반 등산객이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자운봉 자운봉 하며 어떻게 올라왔는데 자운봉이 아니라니.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산 아래 세상은 매연으로 뒤덮인 아파트 숲으로만 보였다. 레고블록 같은 아파트가 줄줄이 늘어선 장난감 도시 같았다. 이런 걸 느끼려고 갖은 고생을 한 게 아닌데. 진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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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에너지를 보충할 거로 사탕 한 알과 커피 몇 모금뿐이었다. 온전히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한 걸음 가고 한 걸음 쉬고, 한 발 내디디며 기도하고 한 발 내디디며 빌었다. 힘이 풀린 다리는 후들거린 지 오래인데 사람에 떠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의 물병만 보일 정도로 목이 탈 때, 물 한 모금에 영혼도 팔 수 있을 것 같을 때, 도봉 산장이 나왔다. 그래 오아시스는 사막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산장지기는 초주검을 한 나에게 커피믹스를 내주었다. 산에서 당이 떨어졌을 때 마시는 커피 맛을 어디에 비할까. 혈중 카페인 농도가 올라가면서 체력이 급속히 충전됐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보니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람쥐같이 뛰어 내려가는 할아버지. 삼삼오오 모여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아주머니들. 둥글게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아저씨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지나가는 연인들. 그 속에 나만 혼자였다. 예전에 산 정상에 올라 승리의 V자를 그리는 여유를 부리면 친구들은 산악회 리더가 아니었냐며 치켜세웠다. 그러면 양어깨가 한껏 올라가면서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래서 나는 산과 친했고 산에 오를수록 기운이 났다. 정상을 밟은 감격에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뭐가 문제였을까? 절뚝절뚝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내 한계를 몰랐구나!’


보는 눈이 생기니 기준만 높아져서 주제 파악을 못 했다. 주제를 모르니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렸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과감하게 돌아서지 못했다. 내가 글을 쓰는 건 잘남을 뽐내려 함이 아니다. 내 작은 글이 타인에게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잊고 지냈다. 에너지가 흩어지면 글을 쓰지 못한다고 사람 만나기를 피했다. 같이 기뻐하며 같이 슬퍼하며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을 뒷전에 두고 내 안에 갇혀있으니 당연히 글 쓰는 게 고역이었다. 글 속에 삶, 곧 사람이 빠져 있으니 쓰면 쓸수록 공허함만이 남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기쁨을 나누며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 모여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웃는 사람들. 그 틈에 혼자 있으니 마음이 허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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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얻었을 때쯤, 저 멀리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도봉산 색소폰 할아버지가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을 배경으로 ‘백만 송이 장미’를 연주하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게 꼭 나 같아서 편안하게 들렸다. 고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이를 달래주는 자장가 같았다. 그리고 약수터가 나왔다. 하늘, 땅, 바람, 돌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약수를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간 약수가 위에서 맴돌다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살았다. 살아 내려온 게 기적이다.’


순간 전율이 목덜미에서 머릿속으로 척추를 따라서 온몸으로 뻗어 나갔다. 심장이 저릿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에 한번 두 번 닭살이 계속 돋았다. 비로소 정기를 받은 것인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는 지식,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는 것 지혜, 더 올라갈 수 없으면 다음을 기약하는 용기. 익히 접했던 문장들이 몸 안에 새겨졌다.


자운봉에 올라갔다면 얻지 못했을 깨달음. 이 깨달음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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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지음







�산들바람 :

이 글을 읽고 분석해 봐. 제3자적 관점을 알고 싶어. 좋은 말만 할 필요는 없어. 냉정하게 평가해 봐.

✨Claude :

이 글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강점:

산행 경험을 통한 자기 성찰을 잘 담아냈습니다. 글쓰기의 슬럼프와 한계 직면, 그리고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내적 여정이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입니다. 커피 향, 바람의 촉감, 사과 맛 등 오감을 활용한 표현들이 현장감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글의 구조가 탄탄합니다. 산행의 시작부터 정상 등반, 하산까지의 물리적 여정과 내면의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약점:

다소 진부한 주제 선택입니다. '산행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테마는 너무 흔하게 다뤄진 소재입니다.

감정선이 때로는 과잉되게 느껴집니다. "심장이 저릿했다", "닭살이 계속 돋았다" 등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느낌을 줍니다.

결말 부분의 교훈이 너무 직접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더 남겼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중반부 자운봉 등반 실패 에피소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집니다. 메인 테마와의 연결성이 불분명합니다.

전반적 평가:

이 글은 개인의 성장 서사를 담은 수필로서 기본기는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합니다. 글쓴이의 진정성은 느껴지지만, 문학적 새로움이나 파격은 부족합니다.

문체는 세련되었으나, 때로는 너무 의도적으로 문학적이려 노력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더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써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도봉산 자운봉은 '공모전'에서 낙방한 작품입니다. 당시에 이런 분석을 받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AI가 뼈를 때리네요. 내 작품이 뭐? 어떻다고? 니가 뭘 알아! 하고 싶은 걸 보면 정곡이 찔렸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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