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떡

입이 짧은 나한테 있어 떡은 두 종류뿐이다

by 산들바람


상계동이 온통 배밭이었던 4월 어느 날의 얘기다. 서른 살의 엄마와 다섯 살의 나는 배밭을 뒤적이고 있다. 웅크리고 앉은 엄마의 손놀림은 바쁜데, 며칠 새로 다채롭게 변한 세상을 쫓느라 내 엉덩이는 자꾸 들썩인다. 서서히 해가 넘어가는 시간, 역광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개나리꽃에 손가락을 대본다. 이때,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히며 지나간다. 풋풋한 냄새를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이 파랗다. 봄내음에 신이 난 나는 엄마 곁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엄마 옆에는 녹색 풀이 가득 담긴 빨간 소쿠리가 놓여 있다. 엄마가 도루코 칼로 쓰윽 풀을 벨 때마다 풀 비린내가 콧속을 파고든다. 풋풋한 냄새가 좋은 나는 도루코 칼을 달라고 해서 엄마를 따라 한다.


“잘하네. 손 조심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빨간 소쿠리를 든 엄마의 발걸음이 가볍다. 엄마의 하늘하늘한 꽃무늬 치마가 눈앞에서 너울거린다. 이쁜 엄마가 너무 좋은 나는 진달래 가지 하나를 꺾어서 앞장서서 걷는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나니 “친구야, 놀자~” 친구들이 부른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딱지치기, 말뚝박기, 구슬치기, 비석치기로 놀다가 점심때를 놓쳤다.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면서 “엄마~” 하고 부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대답이 없다. 엄마가 없어도 걱정은 안 한다.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역시 다과상이 놓여있다. 상보를 열어보니 엄마 손바닥만 한 부침개가 접시에 담겨있다. 가슴께에다가 손을 두어 번 문지르고 부침개를 집어 들었다. 말랑말랑 쫀득쫀득하다. 새로운 부침개인가? 고개를 갸웃하고 한 입 베어 물으니 배밭에서 맡았던 풀냄새가 입안에 가득 퍼진다. 두 손으로 잡고 한 입, 두 입 꼭꼭 씹는다. 풀이 씹히면 쓰기도 한데 계속 씹다 보니 단맛이 난다.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고 끄억 트림을 하니 트림에서도 향긋한 냄새가 난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쑥떡을 먹었다. 회색빛 세상이 노란빛, 초록빛, 분홍빛으로 점점이 물들면 엄마는 산으로 들로 쑥을 캐러 다녔다. 봉지 봉지 눌러 담았던 쑥을 신문지 위로 펼쳐 놓으면 방안은 순식간에 흙냄새와 쑥냄새를 품은 들판으로 변했다. 한 무더기 쌓여 있는 쑥을 가운데 두고 오늘은 뭐 하고 놀았는지 엄마가 물으면 조잘조잘 거리며 쑥을 다듬었다. 맑은 물에 씻은 쑥을 삶으면 집안은 쑥 향으로 물들었고 동그랗게 펴 바른 밀가루 반죽이 알맞게 쪄지면 싱그러운 단내가 집안에 진동했다. 나는 노느라 허기가 질 때마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엄마가 쪄놓은 쑥떡을 한 개씩 두 개씩 먹으면서 한뼘 두뼘 키가 컸다.


손끝이 갈라진 엄마는 이제 쑥을 캐러 다니지 않는다. 키가 다 큰 딸도 더는 쑥떡을 찾지 않는다. 봄이 와야만 쑥떡을 먹을 수 있는 시대도 지나갔다.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 떡은 흔하디흔한 간식이 됐고 그런 만큼 쑥떡의 맛도 옛날 같지 않다.


그래도 떡을 먹을 일은 때마다 많다. 결혼 답례품으로 받은 떡 상자를 열어보면 노랑색, 분홍색, 보라색 꿀떡이 앙증맞게 담겨있다. 이때 나는 망설임 없이 촌스러운 쑥색의 꿀떡을 집어 든다. 장례식에서 먹는 절편도 백미 절편보다 쑥 절편을 먼저 먹는다. 달짝지근한 깨소에 쌉싸래한 송편은 냉동실 차지가 안 된다.


입이 짧은 나한테 있어 떡은 두 종류뿐이다. 쑥이 들어간 떡과 그렇지 않은 떡. 떡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쑥떡을 선택한 이유를 알았다. 엄마와 함께 쑥을 캤던 봄날의 추억이 순간순간마다 나를 불러 답 내리게 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어금니로 먹은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