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예찬론

여기 2인분 추가요!

by 산들바람

“혜숙, 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몰라.”


혜숙이는 문 박사로 통하는 친구다. 그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있잖아, 생각하면 기분이 막 좋아지는 음식, 뭐 그런 거 없어? 문 박사라는 별명답게 골몰하던 혜숙이는 갑자기 아! 하고 손뼉 쳤다. 있어, 있어. 내가 27살 때 말야, 배낭여행 하는데 말야. 기억을 더듬는 혜숙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에게도 저런 음식이 있나?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환해지는 그런 음식이 있을까?


나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삼겹살이냐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혜숙이처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왜 삼겹살이지? 우아해 보이는 스테이크도 아니고. 이 의문이 풀리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삼겹살을 꼽게 될까?


누가 들으면 촌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테이크보다 삼겹살이 더 좋다. 삼겹살보다 맛도 없는 게 참말로 비싸네. 스테이크를 처음 먹고 난 소감이다. 양이 적어서 아쉬운 것보단 먹다가 질려서 남긴 게 돈 아까웠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어려운 이름의 와인과 곁들인 스테이크 맛은 다를까? 고기 본연의 맛을 느껴야 한다며 붉은 육즙이 흥건한 스테이크 맛을 아직 모르겠다.


by 산들바람


그보단 노릇하게 적당히 구워서 먹을 수도, 바짝 구워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구울 수 있는 삼겹살이 더 좋다. 삼겹살이 익기까지의 기다림. 막 익어갈 때 분주해지는 손놀림. 한 점이라도 더 먹기 위해서 눈치 보는 스릴. 그러다 “여기 2인분 추가요!” 외칠 때의 짜릿함. 스테이크는 이런 맛이 없다.


삼겹살은 이렇게 먹을 때 맛있다. 삼겹살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공복에 한잔”을 외친다. 그러면 다 같이 “먹고 죽자!” 하고 원샷한다. 소주 맛이 달면 삼겹살 맛은 두 말이 필요 없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이 ‘이제 나를 먹어주겠니?’ 속삭이면 기름장에 두 번 찍어서 꼭꼭 씹어 먹는다. 그때는 삼겹살을 먹는 나만 남고 주변에 모든 것이 페이드아웃 된다. ‘삼겹살 넌 어쩌면 이렇게 맛있는 거니’ 무아지경에 빠지고 ‘네가 없다면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헤쳐 나간단 말이냐’ 수줍게 사랑 고백한다.


그리고 두 번째 삼겹살을 먹는다. 이번에는 기름장에 한 번 찍어서 깻잎에 올리고 쌈장을 넣어 한입에 먹기 좋게 싼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쌉싸래한 맛과 삼겹살의 구수함이 어우러지는 동안 세 번째 쌈을 싼다. 상추 위에 깻잎, 깻잎 위에 삼겹살을 올리고 파무침과 쌈장을 올린다. 상추의 풋풋함. 깻잎의 쌉싸래함. 파의 알싸함이 어우러져 삼겹살의 풍미가 한층 올라간다. 쌈의 크기가 큰 까닭에 오물오물 말할 수가 없다. 다들 조용해지는 순간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양한 쌈을 무작위로 반복해서 먹다 보면 느끼함이 밀려온다면 이를 물리칠 방법이 있다. 삼겹살만큼 사랑하는 마늘. 마늘이 어디에 좋은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삼겹살과 마늘의 콜라보는 최고다. 애인과 같이 삼겹살 먹을 때 ‘아, 이따가 뽀뽀할 텐데 마늘은 어쩌지? 뽀뽀해? 말아? 해? 말아?’ 뽀뽀도 하고 싶고 마늘도 먹고 싶고. 머리에서는 3차 대전이 일어난다. 생마늘의 톡 쏘는 알싸함으로도 느끼한 맛을 잡을 수 없다면 마지막 비장의 카드가 있다. 바로 청양고추! 뾰족한 끝은 조금 잘라내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아삭 씹었을 때 제대로 걸렸다면 혀가 얼얼하고 식은땀이 난다. 손부채질을 연신 하다 보면 느끼함은 어느새 도망가 있다. 그래서 여기 2인분 추가요! 를 또 외칠 수 있는 재미가 살아난다.


음식은 누구와 먹는가로 그 맛이 달라진다. 어느 시인은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들이 있어서 진짜 외로운 사람에 속하지 않다. 2008년 가을, 사진 동호회 출사 여행에서 맛본 삼겹살 맛을 기억한다. 우리는 속리산 밑, ‘항아리 민박’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널찍한 불판에 촤르르 삼겹살을 구웠다.


맥주 마니아인 최강동안 경희 언니가 준비해 온 하이네켄은 삼겹살 맛을 돋워 줬다. 에너자이저 인석 오빠가 만든 김치찌개를 맛본 나는 “김치찌개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약이라도 넣은 거야?”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구울 테니, 이제 먹어라, 나도 잘 먹고 있으니 편히 먹어라. 훈훈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순둥이 기주 언니가 왜인지 하이네켄 반 잔을 원샷하더니 불타는 얼굴로 섹시한 포즈를 취해서 모두가 놀랐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충격으로 배꼽이 빠질 수도 있겠다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걸 사진으로 찍어 놨어야 한다며 오랫동안 안타까워했다. 삼겹살 파티를 끝내고 타이타닉 게임도 했다. 은주 언니가 게임에 자꾸 져서 벌주를 계속 마셨다. 술을 먹고 싶어서 일부러 지는 거냐며 놀려댔지만 취할수록 애교쟁이로 변하는 모습이 귀여워 우리는 은주 언니를 집중 공략했다. 깊어 가는 밤하늘, 별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무수했다. 여행이 주는 흥분과 속리산 맑은 공기. 언제나 유쾌한 사람들과 즐긴 삼겹살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삼겹살 or 소고기 선택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삼겹살을 선택했던 나. 알고 보니 이날의 기억이 나를 불러 세운 거였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막연히 ‘인물사진’을 찍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물사진을 찍는 건 갈수록 어렵다. 즐겁게 웃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그런데 비결 하나를 알아냈다. 사진 찍기 전 어떻게 찍힐까 불안해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식에 관해서 얘기해 달라며 시간을 줄 것이다. 나와 혜숙이가 그랬듯이 한대 얻어맞은 표정을 짓는다면 나의 삼겹살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그런 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물음이 내가 원하는 인물 사진을 촬영하는데 한 걸음 다가서게 할 거란 것을.





2012년 4월에 지음
글쓰기 초심을 다잡으려, 외장메모리를 털어봤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기억이 방울방울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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