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콜센터 상담사의 감정노동 이야기
감정이 죽으면 기억할 거리도 없어지는 거래
항상 웃는 정혜
쥐는 자신의 위궤양 대신 다른 쥐의 위궤양을 유발한다. 우리 속에 쥐를 넣고 약하지만, 반복적인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이 있다. 해부해 보면 위궤양이 발생하고 부신의 크기가 비대해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우리에 나무 막대기를 함께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면 쥐는 나무 막대기를 씹으며 더 오래 견딘다. 첫 번째 실험의 쥐 보다 부신의 크기가 더 작고 위궤양도 훨씬 덜하다. 비슷한 조건에서 쥐 두 마리를 넣고 모두에게 전기충격을 가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포악해진 쥐들은 서로 싸운다. 두 마리를 해부하면 숱한 전기충격에도 위궤양의 흔적이 없으며 부신의 크기도 정상이다. 1)
정혜는 X 화재 콜센터 상담사이다. 내가 본 정혜는 나무 막대기를 씹을 줄도, 다른 쥐와 싸울 줄도 모르는 상담사였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폭발한 감정을 화풀이하는 고객. 원하는 만큼의 보상이 아니라고 물고 늘어지는 고객. 회사의 모든 불만을 모아 욕설, 폭언, 협박하는 고객. 그 어떤 고객을 만나도 다른데 욕하거나 엉뚱한데 화풀이하지 않았다.
사고가 났으니 경황이 없을 거야. 나 같았으면 더했을 거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려 깊게 일했다. 그 어떤 민원을 받아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겼는데, 그래서 붙은 별명이 보살이었다. 상담사에겐 친절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감정만이 허락됐고, 슬픔과 분노를 얼마나 잘 참느냐로 능력이 평가됐다. 정혜는 S등급을 놓치지 않는 유능한 상담사였다. 정혜에게 그녀의 상담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굉장히 친절하려고 노력해요. 고객이 기분 좋게 끊으면 나도 기분이 좋으니까. 억지로라도 웃으면 내 몸은 웃는다고 생각한대요. 눈은 울고 입만 웃으면 얼마나 징그러워요. 그러니까 거울 보고 최면을 거는 거예요. 나는 즐거워. 나는 기분이 좋아. 그러면 화냈던 고객도 미안하다며 전화를 끊구. 진상을 부린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구요. 한 3~4년 후에는 말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혜는 비기를 전수하듯 자못 진지하면서도 예의 그 천진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속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아무리 잘해도 스트레스는 어디 안 가기 때문이었다.
정혜가 거울을 보면 민원 1단계이다. 민원을 받다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는데 이때 거울을 보고 웃음 짓는 것이다. 회사에 화를 내는 거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고 돌려 생각했다.
정혜가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보면 민원 2단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혜는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정혜 어머니는 갱년기가 되면서 면역체계가 무너졌다고 한다. 병이 난 어머니를 대신해서 가장이 된 정혜는 민원으로 모멸감을 느낄 때면 어머니 사진을 보면 견뎠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멸시당하지 않는 상담 스킬을 연구했다.
정혜가 화장실에 가면 민원 3단계이다. 사람 진을 빼는 하소연, 욕설, 성희롱을 당하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갔다. 정혜는 악성 민원을 받으면 온몸이 더럽혀진 것 같다고 했다. 비누 거품을 잔뜩 내서 손을 박박 닦고 귀를 씻으면 더럽고 상한 마음도 깨끗이 씻긴 것 같다고 했다.
정혜는 욕하는 고객이라도 그런 고객이 있어 돈을 버는 거라고 말했다. 월급의 8할은 욕먹는 대가라며 마치 해탈한 듯이, 죽으면 진신사리가 나올 거라며 흡사 득도한 듯이 잘도 일했다. 정혜에게 진짜로 웃겨서 웃은 적이 언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정혜는 멍하니 얻어맞은 표정을 짓다가 기억이 안다고 했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했다. 기억하고 싶은 것도 없고 떠올리면 머리만 아프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날 일은 그날 잊는다고 했다.
“정혜야, 기억은 생생한 감정 속에서 뇌리에 박히는 거래. 슬퍼도 화나도 참기만 하니까 즐겁고 기쁜 감정도 올라오지 않는 거래. 그렇게 감정이 죽으면 기억할 거리도 없어지는 거래. 이건 나한테도 하는 말이야.”
“헉, 그래서 내가 자꾸 깜빡깜빡하나?”
이 말을 하면서도 정혜는 해맑게 웃었다. 정혜는 교회를 다녀서 욕할 줄도 몰랐다. 술 마실 줄도 몰랐다. 항상 자기개발서를 읽으며 긍정의 힘으로 살았다. 이상한 건 그렇게 씩씩한데 병을 달고 사는 거였다. 아토피가 나을까 싶으면 대상포진이, 대상포진이 낫는가 싶으면 위염이, 장염이, 중이염이, 허리디스크가.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아픈데도 언제나 밝고 유쾌하다는 거였다.
1) 데이비드 바래시, 주디스 이브 립턴, 『화풀이 본능』중 내용 요약
2) 정혜는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