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꿀버러칩

“자갸, 억이가 꼭 먹고 싶데. 남들 하는 건 다 해 줘야지. 그지?”

by 산들바람

1년의 끈질긴 구애 끝에 빵이는 내 여자가 됐다. 마흔이 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 본 내게 빵이는 과분한 여자였다. 호빵을 좋아해서 겨울만 기다린다는 빵이가 올해는 하얗고 통통한 호빵을 먹지 못하고 있다. 3개월 전 빵이의 뱃속에 억이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빵이는 대한민국에서 한 아이를 키우는데 3억이 든다고 했다. 우리는 억만금보다 귀한 아기라며 태명을 억이라고 지었다. 나는 어렵게 가진 억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선 3억이 아니라 3천억이라도 벌겠다고 말했다. 물론 마음 같아서라는 말을 수식했지만. 비로소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든 나는 오늘도 담뱃값을 아껴가며 돈을 벌고 있다.


“정 과장님, 마이너스 임금 시대가 코앞이라는데요.”
점심시간, 이제 막 인턴 딱지를 뗀 준환 씨가 설렁탕에 밥을 말며 말했다.

“언제는 마이너스 아니었나. 담뱃세 인상도 합의되고 줄줄이 오를 텐데.”
“그러게요. 과장님은 아기도 생겼으니 이참에 담배 끊으시죠.”
“담배 때문에 회사에서 버틸 수 있는 거야. 애가 생겼으니 담배가 더 필요하겠지?”

“깨똑 깨똑”

[자기야~~]
[꿀버러칩이라고 들어봤어?]

이 톡은 꿀버러칩을 사 오라는 얘기다. 빵이는 임신한 후로 이해하기 힘들게 변했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사소한 냄새에도 예민하게 굴었다. 음식 냄새는 그러려니 했다. 임신과 동시에 청소는 내 담당이었는데 진공청소기는 시끄러워서 안 되고 빗자루는 먼지가 날려서 안 되고 꼭 물걸레질해야 했다. 문제는 걸레였다. 처음 청소를 했을 때, 비누칠하지 않은 걸레로 청소했더니 빵이는 온 집안에서 걸레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빵이는 몸에서 열이 많이 나고 땀도 많이 흘렸는데 밤에 안아 보기라도 하려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괜한 짜증을 내는가 하면 이유 없이 우는 날도 많아서 속아서 결혼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소화불량처럼 시작된 입덧은 날이 갈수록 빵이와 나를 지치게 했다. 빵이는 어떤 음식도 먹지 못했다. 어머니가 입덧에 좋다는 미역과 해조류를 보내왔는데 비린내가 난다고 해서 처분하는 데 애를 먹었다. 임산부한테는 더운 것보다는 시원한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모두 사 갔으나 이가 시리다며 먹지 않는 바람에 냉동실 구석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먹고 싶다는 건 모두, 좋다는 건 모두 구해다 줬지만, 빵이는 노란 위액이 나올 때까지 구토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첨크래커만은 먹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런 빵이가 오랜만에 먹는 걸 찾았다.

꿀버러칩은 빵이가 좋아하는 한류스타 S가 아주 맛있다는 글을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이 글은 급속도로 리트윗됐다. S와 친한 연예인들은 아이스 버킷처럼 인증샷을 따라 올렸다. 그들의 팬이 꿀버러칩을 검색하기 시작하면서 꿀버러칩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연일 올랐다. 연관검색어를 본 네티즌은 꿀버러칩을 다시 검색했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꿀버러칩은 포털뉴스 창을 도배했고 꿀버러칩을 개발한 책임자의 인터뷰 기사가 일간지에 실리기까지 했다. 이 기사를 본 파워블로거들은 꿀버러칩이 장안의 화제인 이유와 꿀버러칩 맛에 관한 포스팅을 했다. 그 포스트를 읽은 사람들은 꿀버러칩 먹은 사진을 블로그와 SNS에 올렸다. 이렇게 해서 광고 한 번 하지 않은 꿀버러칩은 출시 3개월 만에 100억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며 준환 씨가 말했다.

“준환 씨도 먹어 봤어?”
“안 그래도 여친이 먹고 싶다고 해서 구하는 중입니다.”




[빵이가 먹고 싶다면 달에 있는 토끼 간이라도 구해 가야지^^]

[ㄱ ㄱ ㅑ ㅇ ㅣ- 자기야 빨랑 와 ♥ ]

퇴근 후 회사 뒤에 있는 부부슈퍼에 갔다. 취직 후로 10년이 넘게 부부슈퍼에서 담배를 사 왔다. 눈매가 선한 주인아저씨는 항상 사람 좋은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디스 줘?”
“아니요. 꿀 머라더라,”
“아, 꿀버러칩”
“그 과자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집사람이 그걸 먹고 싶다네요.”
“말도 마. 꿀버러인지 꿀 버려 인지. 그것 때문에 문 닫게 생겼어.”

아저씨 말에 의하면 동네 슈퍼는 제과 회사와 직거래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창고가 있는 중간도매상과 거래를 하는데 중간도매상에도 들어오는 물량이 한정돼 있다 보니 우선적으로 거래하는 슈퍼가 있다는 거였다. 보름 전에 구매신청 했는데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아저씨는 담배를 꺼내 물면서 초등학교가 있어 꼬마 손님이 많은데 편의점으로 다 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번 꿀꿀면 때도 그러더니. 죽어라 죽어라 하네. 싸유편의점에서는 ‘2+1’이라니 그리로 가봐.”




[자기야~ 어디야??]

버스정류장 앞 편의점으로 향하면서 슈퍼 아저씨의 근심 어린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 좋은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꿀버러칩을 꼭 구해서 빵이를 기쁘게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장님이 계시네요. 알바는 어디 갔어요?”
“말도 마. 최저 시급도 안 된다고 그만뒀어.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지. 디스?”
“아니요. 오늘은 꿀버러칩 사러 왔어요. 그 과자가 그렇게 인기라면서요?”
“그놈의 과자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다.”

편의점 사장님은 열흘 전부터 발주를 넣고 있는데 입고가 안 되니 애가 탄다고 울상을 지었다. 오늘만 해도 40명 넘게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교복 입은 여학생부터 퇴근길의 젊은 아빠, 과자 이름도 모르면서 그 과자라고 하는 할머니, 여자 친구에게 구해주지 못하면 무능한 남친이라는 청년까지 사연도 제각각이라고 했다. 11월 한 달 동안 2+1 행사인 과자가 11월 20일로 행사중단이 됐다고 했다.

“편의점 한 지 8년 만에 행사가 중단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야.”
“아니 싸유편의점처럼 전국적 유통망을 가지고 있으면 제과 회사의 갑자일 거 아니에요?”

사장님은 꿀버러칩의 생산라인만 불이 났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건 뜬소문이고 애타 제과에서 일부러 물량 조절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급량을 통제해서 줄을 서게 만드는 거지.”
“남아돌면 별거 아닌데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지르고 싶은 마음, 그런 거요?”
“그렇지. 그래도 L 마트익스프레스는 매일 매일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
“L 마트가 24시간으로 바뀐다면서요?”



[자갸, 어디야 ㅠㅠ]

편의점과 10분 거리의 L 마트익스프레스를 향하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약육강식’ 태어날 억이를 생각하면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빵이가 임신하고부터 퇴근길에 L 마트익스프레스에서 종종 장을 봤다. L 마트익스프레스에 들어서자마자 꿀버러칩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두 번째 통로 우측, 죠리뽱 옆에 있다고 했다. 죠리뽱. 나는 어려서부터 우유에 죠리뽱을 넣어 먹었다. 꿀버러칩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추억의 죠리뽱을 먹고 싶어졌다. 죠리뽱은 세 봉지가 하나로 묶여 있었는데 2,000원이었다. 죠리뽱을 집어 들고 옆을 살펴보니 꿀버러칩이 한 봉지 남아있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를 산다는 쾌감과 빵이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몇 군데 돌아다닌 게 하나도 고생스럽지 않았다. 손을 뻗어 과자를 집으려는데 수그린 머리 위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눈앞에서 꿀버러칩이 사라졌다. 놀라서 주위를 살피니 빨간 립스틱을 바른 아주머니가 꿀버러칩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주머니, 제가 먼저 사려고 했는데요.”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죠.”
“아니, 아줌.. 아니 아주머니. 제가 여기에 먼저 있지 않았습니까?”
“그게 뭐요!”
끓는 주전자 뚜껑처럼 부아가 치미는 것을 겨우 참으며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아내가 임신 중입니다. 저한테 양보하시면 안 될까요?”
“우리 집에서는 애가 울고 있어욧.”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는 수 없이 카운터에 가서 사정 얘기를 한 뒤 재고가 있냐고 물어봤다. 캐셔는 오늘 들어온 물량은 그게 다라고 했다. 말투는 친절하지만, 눈은 울고 입만 웃는 얼굴이다. 계산하는 기계 같은 캐셔는 제과 회사에서 하루에 100박스밖에 주지 않는데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두 배 크기인 대용량으로 대형마트에 많다고 하니 EC 마트로 한 번 가보세요.”




[자기야, 샀어??]

슈퍼를 나오면서, 편의점을 나오면서 빵이에게 중간보고를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과자를 구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기다리다 지쳤을 것 같은 빵이를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빵이에게 전화를 걸어 꿀러버칩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빵이는 꿀버러칩을 구하려고 세 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구하지 못한 사람 얘기를 인터넷에서 봤다며 오히려 내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그 글을 보니까 무슨 맛일지 더 궁금하다고 했다. 인터넷에 꿀버러칩 구하는 방법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있어서 알아보니 3배 넘는 가격으로 사고 팔리는 중고사이트도 있고 욱신사이트에서도 파는데 인기 없는 과자랑 묶어서 19,990원에 판다고 했다.

“자갸, 억이가 꼭 먹고 싶데. 남들 하는 건 다 해 줘야지. 그지?”

EC 마트로 가는 길, ‘그게 뭐라고’ 하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참았다. 그래도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면 평생 원망을 들어야 한다니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EC 마트 지하 1층 입구에 들어가니 무전기를 들고 있는 보안 직원이 보였다. 꿀버러칩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물어 본 사람이 많다는 듯이 방금 마지막 남은 재고가 진열됐다고 했다. 남들은 세 시간을 돌아다녀도 못 구했다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했다. 빠른 걸음으로 과자 코너를 향하는데 갑자기 카트 끌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나더니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몰려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뛰었다. 아주머니 아니 아줌마들은 몸싸움하듯 소란을 피우며 과자를 쓸어 담고 있었다. 체면은 나중 문제였다. 아줌마들을 하나씩 젖혀가며 매대 앞으로 가니 이미 썰물 빠지듯 아줌마들이 물러났다. 순식간에 동이 났다. 그리고 아줌마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한 사람당 2봉지씩 사는 게 원칙이잖아요?”
성미가 급해 보이는 아줌마가 만만해 보이는 아줌마를 붙잡고 과자를 내놓으라고 했다. 여리여리하게 보였던 아줌마는 생긴 것 같지 않게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래서요?”
매장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직원들이 달려왔다.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며 그 아줌마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맥주 코너에 가면 YES 캔맥주 6개 묶음에 꿀버러칩을 증정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쟈갸~ 빨랑 와~~]

이 과자를 사기 위해 돌아다닌 걸 생각하니 술 생각이 절로 났다. 나는 별 저항 없이 맥주 코너로 갔다. 다른 캔맥주는 수북이 쌓여있는데 YES 캔맥주는 얼마 없었다. 만일을 모르니 한 봉지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녹초가 된 몸으로 YES 캔맥주 3묶음이 담긴 쇼핑백을 택시에 실었다.

[빵아, 구했다 ㅋ~]

집에 가니 빵이가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왜 이제 와. 기다리다 지쳐서 부스스하게 됐잖아.”
“많이 기다렸지. 얼마나 맛있길래 이 난린지, 나도 궁금하다. 빨리 먹어 보자.”
“아, 뜯지 마. 먹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놔야 한단 말야.”
“빵이는 꿀버러칩을 얼굴에 붙이고 셀카를 찍었다.”

사진을 다 찍고 드디어 과자를 뜯었다. 달콤한 냄새가 났다. 생긴 건 다른 감자칩하고 같은데 가루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나는 탄산이 톡 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과자를 한 입 깨물었다. 입안에서 과자가 부서지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달달한 첫맛에 씹을수록 짭짤한 맛이 나다가 과자를 삼키자 진한 버터 향이 혀끝에 감돌았다. 빵이는 꿀버러칩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했다. 과자를 먹고 행복해할 빵이의 모습을 포착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핸드폰 액정 속에 있는 빵이는 꿀버러칩 한 입을 깨물고 한 번, 두 번, 세 번 씹었다. 음...

으웩. 우웩. 빵이는 심한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빵이는 전에 먹은 첨크래커까지 다 토했다며 달달하던가, 짭짭하던가, 고소하던가,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게 느끼하기만 하다면서 냄새나고 꼴도 보기 싫으니 치우라고 했다.

“맥주는 왜 이렇게 많이 사 온 거야!”

성질이 잔뜩 난 빵이는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으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 났다. 빵이한테 화가 난 것인지, 꿀버러칩한테 화가 난 것인지, 이 과자를 만들어서 판 회사에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이 과자가 맛있다고 입소문을 낸 사람한테 화가 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화가 났다. 담배 생각이 났지만, 억이 생각을 하면 집에서 피울 수 없었다. 나는 캔맥주 하나를 더 땄다. 맥주 안주로 꿀버러칩을 먹는데 삼킬수록 느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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