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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9 프리라이팅
제시어 : 틈
처음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잊고 있다가 한 번씩 눈에 띄면 그제야 ‘아 저런 게 있었지.’하며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틈이 볼 때마다 조금씩 더 벌어져 있더니 이제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커져있었다. “이래도 괜찮은가.” 걱정되는 마음은 컸지만 들여다볼 용기는 안 났다. 괜히 다가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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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1. 2025
by
유념
2. 한탄하는 왕국 첫 번째 기사
- 어린 것들과 늙은이, 그 이어지지 않는 시간
“요즘 녀석들은 근성이 없어. 나 때는 수천 번씩 검을 휘두르고도 밤이면 전술 교본을 외우곤 했었네. 그뿐인가? 요즘 녀석들은 이기적이야. 자신밖에 몰라. 티끌만큼도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 희생과 헌신이 따라야 사람들이 제 뒤를 따르는데 말이야.” 노기사는 허옇게 세어버린 흰 수염을 슬쩍 쓸어 넘긴 후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 잔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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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8. 2025
by
블랙스톤
250317 프리라이팅
제시어 : 흔적
우리에겐 언제부터 말소리보다는 한숨 소리가 많아졌다. 평범한 대화로 시작했다가도 격한 감정이 더해지고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진다 싶으면 약속한 듯이 둘 다 입을 꾸욱 다문다. 그리고 찾아오는 정적이 숨 막히게 답답하다. 이건 분명 헤어짐을 누군가 말할 때가 된 거 같다. 하지만 쉽게 입이 떼어지지 않는다. 그동안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 만 같아 그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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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8. 2025
by
유념
소원
첫눈이 모여 추억이 되었다/엽편소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별이 쏟아지는 밤에 아무도 걷지 않는 눈길을 걸으며 발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소원 하나는 완성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얀 방, 하얀 이불, 줄무늬 옷에서 벗어나 세상이라는 색 속에 나도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나는 혼자 일어나기는커녕 앉지도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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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8. 2025
by
아루하
키링
여러분들의 명절은 어떠신가요/엽편소설
누구는 명절이라 집으로 간다고 월차까지 쓰고 출발했다. 하지만 석호는 갈 데가 없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정신병으로 정신 병원에 있었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집을 나가 이때껏 소식도 모른다. 그런 석호에게 돌아갈 고향 같은 것은 없었다. “김 대리.” “네. 과장님.” “술이나 한 잔할까?” 그의 사정을 잘 아는 과장은 꼭 명절 전에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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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7. 2025
by
아루하
외따로 (2025)
독립, 홀로서기
<외따로> * 주먹을 꾸욱 쥐었다가 검지 손가락을 하나 펼쳐 본다. 검지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던 엄지 손가락이 슬쩍 들리고, 손등의 힘줄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본다. 민주는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어서 애먼 손가락 하나를 계속 접었다 폈다 하고 있다. 왜 그것들을 보고 싶은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왜 알고 싶어 하는가는 아직 모르겠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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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4. 2025
by
김미넌
파일럿
제 10회 항공공모전/엽편소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다.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슈퍼맨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문 높이에 있던 장독대가 주르륵 세워진 중간 옥상에서 뛰어 내렸다. 아주 찰나의 행복과 일주일의 병원 신세, 그리고 한 달의 불편함을 얻었다. 이때 얻은 찰나의 행복은 꿈을 향한 발판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 되었다. 그러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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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4. 2025
by
아루하
250312 프리라이팅
제시어 : 파편
안녕. 그렇게 안녕. 담담히 건네는 인사와는 다르게 심장은 마치 깨진 유리를 밟은 듯 아려온다. 어쩌면 그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도. 삼장에 박힌 수많은 파편들은 제 자리인 양 깊숙이 박혀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어쩌다 스치기라도 하면 쓰라리고 그렇다고 빼내려 하면 오히려 더 들어가 버릴 것이다. 그저 무시해야만 할 뿐이다. 이런 고통 속에 던져진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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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3. 2025
by
유념
마지막 하루를 살아야 한다면
마지막으로 후회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엽편소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안다. 지금 내가 시작하는 모든 게 마지막이 될 게 뻔했다. 언제 죽을지 정해진 삶! 그게 바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의 운명이다. 그렇다고 굳이 마지막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어차피 삶이라는 끝이 있는데, 나는 조금 빨리 온 것뿐이다. 내 나이 47이면 많이 살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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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3. 2025
by
아루하
250310 프리라이팅
제시어 : 잔상(殘像)
칫솔도 슬리퍼도 수저세트도 아직 두 개인데 주인은 하나가 되었다. 공허하게 앉아 그동안 했던 말들을 곱씹어본다. 어쩐지 다정했던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이렇게 말라갔던 게. 익숙함이라는 장점이자 단점은 서로를 조금씩 갉아먹어갔을지도 모른다. 상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탓에 대화는 점차 줄어들었고 가끔은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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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1. 2025
by
유념
나비
삶의 온기
수업을 마친 뒤, 강의실을 나왔다. 눈이 부셨다. 하늘은 청아했고 따스한 봄의 햇살이 자연의 생동을 자극하는 듯, 발이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싱그러웠다. 건물 주위에 몇 평 되지도 않을 작은 화단이 메마른 캠퍼스에 약간의 생기를 불어다 주고 있었다.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다음 수업이 있었다. 다시 무미건조한 인공적 건물로 들어가 색채 잃은 시간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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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0. 2025
by
DEN
외갓집
첫눈이 모여 추억이 되었다/엽편소설
어릴 적 나는 차멀미가 심했다. 귀에 붙이는 멀미약이든 먹는 멀미약이든 소용이 없었다. 그랬기에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외할머니 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고속버스가 있는 곳까지 30분, 고속버스에서 마산시까지 몇 시간, 마산시에서 다시 읍으로 들어가서 한 시간, 그곳 마을버스를 타고 또 30분. 버스를 타고 내려 걸어서 또 한참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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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4. 2025
by
아루하
대장장이
삶의 미제
한 마을에 대장장이가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장인으로서 솜씨가 매우 훌륭했고, 그가 만든 검은 명검인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 명성은 마을을 넘어 다른 지역까지 넘어갔다. 가끔은 다른 나라에서조차 그 장인에게 의뢰를 부탁할 정도였다. 그는 수십 년간 철저하게 지켜온 철칙이 하나 있었는데, 절대 하루에 3개 이상의 칼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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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6. 2025
by
DEN
250225 프리라이팅
제시어 : 문 앞에서
나는 자주 사후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아프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슬프지 않고, 보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든가 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현실과는 반대되는 세상인 건가 싶기도 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었는지. 당시의 나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어떻게든 다 지나갈 일인데도 말이다. 이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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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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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념
0. Bar 이바구Ebagu
-이곳을 방문할 당신에게(feat.Ema 'Emmy' Hesire)
비가 오거나 이상하게 안개가 많이 끼는 날. 처음 보는 골목에서 은은하게 북소리가 들리나요? 뭔가 친숙하고 흥겨운 음악이 들리면 조심스레 들어오세요. 그 안쪽 화려하진 않지만 이상하게 눈에 잘 뜨이는 네온사인이 하나 보일 겁니다. 그리고 그 네온사인이 보이면 당신은 바, 이바구에 도착하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헤헤헤. 그럼 이미 당신은 바에 앉아 계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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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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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톤
시댁과 친정
여러분들의 명절은 어떠신가요/엽편소설
“여보? 몇 시쯤 출발할 거야?” “글쎄. 새벽에는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이른 저녁부터 여행 가방을 꺼내 옷과 써야 할 용품들을 정리한다고 부산하다. 매년 명절 연휴가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짐을 정리해 트렁크에 싣고, 주차장이나 다름없는 고속도로를 타고 평소 같으면 5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10시간에 걸쳐 시댁으로 향한다.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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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5. 2025
by
아루하
250217 프리라이팅
제시어 : 우편, 그리움, 바다
이제부터 엽편소설을 꾸준하게 써보기로 했어요. 제시어를 자유롭게 설정하고 한 편의 짧은 글을 쓰는 거죠. 최근에 읽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장편소설을 쓰기도 하겠지만 가끔 긴 이야기를 이어나갈 때 오는 스트레스가 있곤 해요.(대부분 내글구려병에서 오는) 하지만 이건 생각 없이 써 내려가는 게 참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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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8. 2025
by
유념
바퀴벌레
저들은 우리와 참 많이 닮았구나(2)
알람 소리가 들린다. 피로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이른 아침이다. 허기를 채우려 식탁에 가보니 식어버린 빵 하나가 놓여있다. 식어버린 빵을 대충 입에 넣고 나갈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학교로 간다. 오전에 있는 두 개의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간다. 점심 식사는 사치다.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도, 넉넉한 돈도 없다. 도서관에서 왜 필요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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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7. 2025
by
DEN
당신의 선택은
짧은 이야기(소설)
터벅터벅,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도대체 얼마나 걸은 걸까?’ 문득 든 궁금증에 나란히 걷던 낯선 남자에게 물었다. “저기요,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얼마나 가야 도착하나요? 저기요?”나는 축 늘어져 있던 긴 팔을 간신히 들어 올려서 옆에 선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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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02. 2025
by
윤다서영
조락(凋落)
삶의 미제
옛날 기억이다. 아버지는 시간이 나실 때면 나의 손을 잡고 우리 집 근처 공원으로 데려가셨다. 몇 살 때인지, 얼마나 자주 데려가셨는지, 가고 나서는 얼마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원을 갔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아마, 꽤 자주 그 공원을 갔었던 것 같다. 가깝기도 가까웠고, 세월의 흐름이 과거에 흔적을 벗겨냈음에도 희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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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31. 2025
by
DEN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데뷔하세요.
진솔한 에세이부터 업계 전문 지식까지,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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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품이 책·강연 등으로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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