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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맡이야기꾼 Nov 03. 2019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

나의 반려고양이 샤를과 달타냥에 관하여

2011년 우연찮은 기회로 고양이 한 마리를 떠맡아 키우게 되었다. 작업실을 같이 사용하던 멤버가 데려온 고양이 세 마리 중 한 마리인데,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이름을 따와 '달타냥'이라고 지었다. 함께 지내던 고양이 세 마리는 모두 성격도 생긴 것도 제 각각이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귀여운 인형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몇 개월이 흐르고 각각 다른 집으로 입양 간 어느 날, 달타냥이 입양 간 집의 강아지를 두들겨 팬 덕분에 다시 작업실로 파양 됐는데, 마땅히 맡아 키울 사람이 없었다. 결국 돌아가면서 작업실에서 녀석을 돌보던 어느 날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다 마지막으로 작업실을 나서는데 평소 가까이 잘 안 오던 달타냥이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녀석과 놀아줬는데... 그게 나의 집사 생활의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양이라면 죽어도 싫다던 우리 엄마가 고양이 돌본다고 집엘 안 들어오는 큰아들 때문에 고양이까지 덥석 집으로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원체 예민하고 겁이 많은 달타냥은 엄마와 쉽게 친해지질 못했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는 동생 옆에만 붙어 있는다. 달타냥이 5살 때쯤, 나는 외국 생활을 해보고 싶어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아일랜드로 떠나게 되었고, 떠나기 한 달 전쯤부터 무언가를 잘못 먹어 많이 아팠던 달타냥 때문에 떠나서도 가슴 한 구석을 집에 놔두게 되었다.


문제는 동생 녀석이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와 달타냥의 불편한 동거는 계속되었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온 지 반년만에 나의 꼼수로 둘째 '샤를'을 입양하게 되었다. 나의 계산은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자란 새끼 고양이가 달타냥과 엄마 사이를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처음엔 몰래 고양이를 또 들인 배신감에 화를 냈지만, 차차 샤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또 사람이 집에 없을 땐 형 달타냥의 든든한 친구가 되고, 하루 종일 꼼짝 안 하는 달타냥에게 시비를 걸어 ‘강제’ 운동을 시킨 덕에 아픈 것도 덜하게 되었다. 가끔 샤를을 너무 격하게 안아 울부짖으면 달타냥이 뛰어와 녀석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것을 볼 때면 흐뭇하곤 한다.

엄마도 이제는 샤를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이 녀석은 마치 우리 집의 파수꾼이라도 된 듯 온 집안을 누비며, 숨겨져 있던 돈을 꺼내오고, 바퀴벌레를 잡고, 심지어 기미상궁 노릇까지 한다. 내가 크림이나 버터가 든 음식, 과자 등 살찌는 음식을 먹으려고 꺼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달려와 음식을 쳐다본다. 내 원참! 크림을 먹는 고양이라니.. 며칠 전에는 자다가 깨서 창가에 앉아 있는 녀석을 보니, 새벽녘 차가 달리는 강변북로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의 낭만을 되새겨 주기도 하다니, 정말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달타냥과 샤를, 두 녀석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의미는 이런 소소함 기쁨과 가족 내에서의 윤활유 같은 역할 말고 다른 곳에 있다. 그 첫 번째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두 녀석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녀석들의 신뢰를 얻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오랜 시간 관찰과 애정을 가지고 상대방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인상에 선입견을 갖는 나의 성질이 요즘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가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아직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나 혼자만을 위해 살 때와는 다르게 나의 삶에 일종의 제약이 걸린다. 이 제약은 나를 옭아매기도 하지만, 나의 폭주를 막아주기도 한다. 그게 나를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술자리에도 꼭 집에는 가야만 하는 작은 '이유'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혹자는 반려동물이 짐이 되지 않느냐고도 한다. 그런데 그 짐이 바로 나를 게을러지지 않게 하는 어떤 원천이기도 하다.


두 녀석을 키우기 전의 나는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나 자신에 대한 것 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인생에서 특별한 기억이 잘 없었다. 그런데 달타냥, 샤를과 함께 살면서 뭔지 모르게 기억이 풍부해졌다. 나만을 바라보고 나의 감정만을 위해 살던 내게 다른 '눈'이 생긴 것이다. 그 관심이 세상을 더 넓게 보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하게 만들고 그게 나를 성장시킨다. 여러모로 고마운 친구들이다.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우지만, 내가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고마워 달타냥, 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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