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랬을까?
얼마 전,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와 통화를 했다.
요즘 회사에서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말을 하려니 이야
기를 해도 괜찮을지, 말한 뒤에 나 자신을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지 여러 생각이 앞섰다.
대화를 이어가면서 나는 정작 말하고 싶은 지점을 피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말은 흐르고 있었지만 핵심은 비켜 가고 있었다.
그 회피를 알아차리는 순간, 내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는 것도 함께 느꼈다.
그때는 분간할 수 없었다. 이 반응이 내 잘못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의 말과 태도가 더 크게 작용한 결과인지.
‘나는 잘못이 없어’라는 생각과
‘그래도 나의 책임도 있다’는 인식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마 그 지점에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함께 작동했을 것이다.
상황을 더 잘 다루지 못한 나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이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나라는 사람 자체가 평가받을 것 같다는 수치심.
그래서 마음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왜 퇴근 후에도 그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집까지 가져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답은 비교적 분명했다.
나는 업무보다도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 말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퇴근 전에 이미 감정이 쌓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마음을 정리할 여유는 없었다.
몸은 회사를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수치심은 종종 나약함의 증거처럼 여겨지지만, 오히려 관계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오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감정을 없애기보다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는 쪽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상대방의 눈빛이나 태도, 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내 감정을 소진시키던 일은 결국 나를 지치게 할 뿐이라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다.
비슷하거나 같은 감정과 생각들이 겹치고 또 겹치는 시간을 지나고 나면,
아마도 감정을 분리하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일상 속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