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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인생 사이의 미

달과 6펜스

by 원혜경

책상에 앉았다.

지난번에 떠남이 배신일까, 선택일까를 생각하며 『달과 6펜스』를 다시 펼쳤다. 그 질문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이번에는 찰스 스트릭랜드가 아니라 브뤼노 선장의 말들이 오래 머물렀다. 관찰자에게 스트릭랜드를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이상과 현실이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느꼈다. 요즘의 나 역시 어느 한쪽으로 쉽게 기울지 못한 채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뤼노 선장은 아내와 아들, 딸을 둔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 역시 스트릭랜드와 같은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성격도 삶의 방식도 전혀 다른데 어떻게 같은 것을 지향할 수 있느냐고 관찰자가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한다.

“아름다움 말입니다.”


이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브뤼노 선장 또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고, 자신을 나름의 예술가라고 여긴다. 다만 그의 예술은 화폭 위에 있지 않았다.


스트릭랜드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소설은 이를 이렇게 비유한다. 둥근 구멍에 네모난 못을 억지로 끼워 넣는 것과 같았다고. 그러나 타히티에는 별의별 구멍이 있어, 제 구멍을 찾지 못하는 못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스트릭랜드의 성격이 변하거나 누그러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환경이 그에게 유리해졌을 뿐이다. 그런 곳에서 살았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고약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서는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공감’을 얻는다. 그 공감은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한 방향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인간이 얼마나 공감을 갈망하는 존재인지 새삼 느꼈다. 이해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간은, 재능과 상관없이 사람을 메마르게 만든다.


그러나 그 공감을 얻었음에도 스트릭랜드는 한시도 평안해 보이지 않는다.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 사람은 끝없이 불안하고, 끝없이 고독하다. 그래서 더크도, 브뤼노 선장도 그를 한없이 가엾게 느낀다. 그 가엾음에는 동경과 경계가 함께 섞여 있다. 모든 것을 걸 만큼 치열했지만, 그만큼 삶을 돌보지 못한 사람에 대한 복잡한 연민이다.


찰스 스트릭랜드와 브뤼노 선장은 서로 대조적인 방식으로 예술을 드러낸다. 스트릭랜드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했다면, 브뤼노 선장은 인생 자체로 예술을 만들었다.


브뤼노 선장은 불모지 같은 섬으로 가 아내와 살며 두 아이를 낳았다. 아내는 그곳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쳤다. 그는 나무를 심고,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아 팔며 섬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곳에는 악의를 품을 이유도, 부러움으로 속상해할 일도 없었다. 그는 우리 손으로 일궈낸 삶에 대해 조용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지속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분명히 느꼈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족을 떠났지만, 브뤼노 선장은 끝까지 가족에 대한 책임을 놓지 않은 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했다는 것을. 요즘의 나에게 더 가까운 쪽은 스트릭랜드보다는 브뤼노에 가깝다. 떠남보다 남아 있음이 더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림과 인생은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이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움’과 ‘창조’라는 하나의 공통된 키워드가 흐르고 있다. 무엇을 버렸는가 보다, 무엇을 끝까지 지켜냈는가가 그 사람의 예술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브뤼노 선장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단 한 가지가 없었다면 자신은 실패했을 것이라고.

‘신을 믿는 마음.’


그가 말한 신은 누구일까. 나는 그것이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난 육체가 아니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방향을 묻고 선택하게 하는 영혼. 브뤼노 선장이 믿은 신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삶이 결국 의미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오늘의 나는 무엇을 창조하며 살고 있는가.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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