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가 갑자기 집을 떠나는 장면을 읽으면서, 문득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시어머니 역시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집을 나가셨다. 겉으로는 “아이들을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때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그 속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신기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 더는 그것을 억누를 수 없어 결국 자기 삶의 길을 선택하셨던 것이다.
나도 결혼 전에는 시어머니의 그런 선택이 그저 의아하게만 느껴졌다. ‘자식을 두고 집을 떠난다니,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워보니 그 결정이 얼마나 단단하고 얼마나 절박했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웬만한 엄마라면 쉽게 내릴 수 없는 선택이다. 그만큼 강렬한 결단이었음을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찰스 스트릭랜드와 시어머니는 결국 자신 안에서 들려오는 부름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만약 그들이 인습과 관성에 머물렀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뒤 “그때가 기회였는데…” 하고 후회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한 번의 기회’가 언제 오는지 우리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에는 단지 “지금이 기회야. 나는 내면의 소명을 따라야 해”라는 절박함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의 목적대로 살기 위해 꼭 집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떠남이 삶을 바꾸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떠남으로, 또 어떤 사람은 머무름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소명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으려는 그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