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시작한 지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태어나서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이 다였었다. 살다 보니 이런저런 복닥거림에 마음 둘 곳 없어 걷다 보니 예까지 왔다.
우리나라 산맥의 가장 큰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비롯, 호남정맥, 땅끝기맥, 낙동정맥, 낙남정맥, 영춘기맥, 진양기맥,비슬기맥 등 참 많이도 걸었다.
산행 후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는 물론이고 강인한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을 덤으로 얻게 되니 일상에서 쓰이는 에너지는 실로 엄청나다.
비로봉 가는 길ㅡphoto by 별꽃
산행하면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깊어만 갔고 반면, 난개발로 인하여 사라지고 무너져 가고, 낯선 문명이 자릴 꿰차거나, 큰 산을 밀어내고 아파트가 질서 없이 들어서는 걸 보며 통탄을 금치 못할 때도 많다.
인위적으로 끊어놓은 산허리, 마땅히 이어져야 할 길들은 오리무중이고 벌건 속살을 드러낸 산은 아파 신음한다.수년 전부터는 아름다운 산하의 생살을무참히 도려내고 이곳 지곳 난립하는 태양광이 경악스럽다.
소백산 국망봉ㅡphoto by 별꽃
'세상에! 이런 곳에 까지? 진짜 미쳤구나.'
태양광 설치를 위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도 더 된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버리니 심각한 자연 훼손에 2차 3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반사된 강한 빛은 주변 나무와 농작물을 망가뜨리고, 심지어 그 고장의 식수이자 물줄기인 저수지나 강줄기까지 차지해버렸으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산맥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 선이 참으로 곱고 부드러우며 기개가 넘친다. 일필휘지 붓끝으로 거침없이 휘갈기다 숨 한번 고른 후 봉긋봉긋 자방 자방 쉬어가다 다시 급격히 내려치는 그 맛에 취하면 벗어나가 쉽지 않다.
정상에서 바라 본 풍경ㅡphito by 별꽃
숨이 명치끝을 치받는 삼십여분의 고통을 이겨내면 몸은 가벼워지며 탄력을 받게 되고, 진땀을 쏟아낸 몸은 정화작용으로 피부의 탄력과 건강한 허벅지 근육을 만들어 준다.
몇 번의 버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정상에 서는 순간 세상의 복닥거림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나와 자연의 경이로움만 있을 뿐이다.세상 부러울 것 없는 천국! 그 말 외에 딱히 더 표현할 말도 없다.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에 태어났음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산천에 흉터가 너무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뚝뚝 끊긴 허리와 생뚱맞게 들어찬 아파트, 전원주택 태양광 등으로 산맥은 끊기니 거침없이 휘갈기던 붓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난 주말 소백산엘 다녀왔다. 비로봉에 오르니 산아래 세상은 그저 한 점의 부질없음이요, 스쳐가는 바람일 뿐인데 어찌하여 시국은 이리도 소란한 것일까.
"허허 세상이 왜 이모양인지 답답합니다. 화병에 매일 산에 오른답니다. 그나마 요즘엔 집 주변에 오를 산이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갓 쉰 넘었는데 나갈 직장도 없고 산이 없었다면....."
산객의 한탄에 가슴이 미어진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누군가를 만나자 청하기도 어렵고 갈 곳도 딱히 없는 시절, 나갈 직장마저 잃어버리니 너도나도 산을 오르는 모양이다.인적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의 산행지는 점점 멀어지고 산행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가슴에 응어리를 한 움큼씩 싸들고 오는지 시국을 한탄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신새벽 혼자 산을 오르는 이도 많아졌다.
릴케의 시를 읊고 아름다운 가을날을 만끽하며 마음껏 취해 있었을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