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셋 ㅡ잠시 낯선 시간 이탈

어디선가 하쿠라도 나타나....

by stellaㅡ별꽃

붉은 열매

다이센을 오르는 모습ㅡphoto by 별꽃

수년 전 출판인들과 함께 겨울 설산 다이센을 등반한 적이 있다. 묵호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블라디보스톡 순항 선인 DBS크루즈선을 타고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항에 도착 후 버스를 타고 다이센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순백의 설산 위엔 살을 에이는듯한 칼바람과 흩날리는 눈발 탓에 앞사람의 형체조차 분간이 안되니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동시에 재했다.


눈 속 붉은열매ㅡphoto by 별꽃


앞사람을 놓치면 조난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강풍으로 휘청이는 몸을 스틱에 의지한 채 상대방의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며 하산시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 긴장 속 행보 중 시선을 강탈하는 장면이 환영처럼 펼쳐지곤 했는데, 새하얀 눈 속 붉은 열매가 그것이었다. 저절로 끌리는 발걸음에 따라가다 보면 죽고 싶냐며 천둥 같은 고함이 뒤를 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순간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내가 서 있곤 했으니 말이다.

인터넷 자료 캡쳐

하산 후 만화 왕국답게 만화마을이 있는 요나고를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만화 그림으로 가득 찬 기차 안 풍경과 사람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요나고 역에 도착했을 땐 시커먼 하늘 사이로 한겨울 장대비가 쏟아졌고 차 한잔이 그리웠던 나는 혼자(여행지에서 자만의 시간을 사유하기를 즐긴다) 골목을 돌고 돌다
'게게게의 기타로'를 탄생시킨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을 발견했고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샤머니즘적 느낌이 강한 거리에서 고즈넉한 카페를 찾아 골목을 휩쓸다시피 한 후, '요괴 낙원'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요괴라떼가 유명한 기념품 판매점 겸 카페였다.

20201128_172749.jpg 묵호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ㅡphoto by 별꽃

카페 회상

갑자기 혼자라는 불안감과 외로움이 엄습했고, '하쿠'라도 나타나 바닷가가 보이는 평온하고 아늑한 카페의 푹신한 의자에 데려다주길 바랐다.

우린 다시 묵호항으로 돌아왔고 내 소원대로 통유리 너머 주문진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찾아냈다.

문명의 발달과 자연의 파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로 인해 퇴색되어가는 인간성에 대한 경고처럼 보였던 내 개인적 감정의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금지된 신들의 경계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착각을 일으킬 만큼 평온한 정경에 마음은 녹아들었다.

photo by ㅡ별꽃

친구랑 생각 없이 떠난 여행지에서 문득 그 풍경이 그리웠고,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낸 카페 이름을 검색해 찾아간 곳은 같은 이름 다른 장소다.

바다 대신 잔잔한 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카페의 전경에 여행자의 마음은 평온해졌다. 수에 던져둔 마음은 잔물결 치듯 고요한 파문을 일으켰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뜨거웠던 커피는 이미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서쪽하늘을 탐내던 태양이 하늘 가장자리를 붉게 물들이며 '퐁당' 호수에 몸을 적시곤 황급히 사라진다.

호수 주변으로 사위어 오는 잿빛 그늘이 어둠을 탐할 즈음 '부릉' 시동이 걸리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평온함을 대신한 낯선 시간들 곁으로 달려간다. 어디선가 '하쿠'가 나타난 잃어버린 현실을 찾아 순간이동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절한 마음 부풀어 오른다.

photo by ㅡ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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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에 대한 열망은 가득 하나 집중과 몰입이 어려운 이유는 무얼까.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버릇이 생겼다. 흘러간 구름 한조각도 그리워하며 오래간만에 끄적이는 글이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