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유가 되는 것들

관계의 단순화 작업

by stellaㅡ별꽃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순간포착

일상 탈출

벼이삭 훑듯 '후루룩' 일상을 털어버리고 급한 채비를 한다. 숨 죽은 고요와 미동도 없는 새벽, 습한 기운이 내 창가를 엿본다. 고양이처럼 일어나 도둑처럼 집을 빠져나온다. 집에 걸어두고 나온 소란은 등 뒤에 업힐 듯 바싹 나를 추격한다. 급하게 시동을 걸고 소리 없이 아파트 마당을 돌아 나온다.

난 삶의 모퉁이에 걸릴 때마다 즉흥적으로 떠나는 습관이 생겼다. 수년 전만 해도 계획해 놓고 고민하다 남편에게 허락받는 절차를 거치느라, 떠나기 전까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스무살 때 대모님이 지어주신 세례명이 스텔라 ㅡ별이다.(글과 상관없는 이이지)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나의 인생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짐 지워진 삶의 무게에 눌려 어쩌면 필요치도 않은 삶의 중압감에 눌려 지내다 어느 순간 원치 않은 모습으로 노후를 만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남편과의 마찰이 싫고 번거로워 피하다 눈 딱 감고 과감한 전면전으로 맞서기로 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는 이기적 라이프의 남편에게 나는 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운 파티다ㅡ지인들과 소소한 파티준비 장면


큰 파란을 예상하고 시도한 전면전은 너무 시시해 되레 기운이 빠져버렸다. 남편은 신경도 안 쓰는데 나 스스로 통속적으로 내려오는 관습이랄지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진 모태 눈치였었다.

눈치 보는 여자의 일생을 끝내기로 결심한 순간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지금도 백퍼 완벽히 편한 마음으로 떠나는 건 아니지만 그즈음, 그런 결심이 없었다면 남들 다 떠나는 유럽 여행조차도 동경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관계의 단순화 작업과 가지치기

요즘엔 사람에게 지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의 동굴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빙자한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친분의 두께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던 시간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연락처를 하나 둘 지우기 시작했고, 지웠던 연락처를 다시 복구하기도 한다.
피자 한판이지만 삶의 철학이 가득 찬 사랑의 시간임을 기억한다(승민/현정과의 시간)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냉정한 면도 있지만, 보통은 내가 근무하는 직장 동료들이나 지인들이 뭘 부탁을 하면, 거의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거나 사는 편이다. 덕분에 필요치 않은 것을 사서 한 번도 풀어보지 않은 것도 꽤 있다. 이런 부분은 개선되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두 번째 수필집을 내고

난 당연히 25년간 몸 담은 직장이니 의리로라도 책을 사 볼 거란 자만심을 가졌더랬다.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영향력 있는 유투버도 아닌 내가, 책을 팔아서 돈을 번다거나 인지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런 연유로 지인과 지인들의 고리가 이어져 나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랐었나 보다.
그런데 참으로 민망하게도 완전히 빗나간, 아니 엇나간 망상이었다.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몇몇에게 선물로 준 책을 누군가 좋아하지도 않는 책은 왜 주고 난리냐며 짜증을 내는 소리를 들었고, 순간 온몸에 저릿한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이 까매지며

내가 잘못 살았나 보다란 자괴감이 아주 잠시 들었지만, 매니저를 내려놓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동시에 떠올랐다.

왜냐하면 첫 수필집 출간 때는 매니저였고 그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뭉텅이로 책을 사 갔던 장면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섭섭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대신 스트레스에 찌들어 사는 그들에게

책이나 문화생활 등은 외계 언어처럼 낯설었다는 것을 알아버리고 나니 오히려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담양 명옥헌ㅡ정원을 바라소는 시선


근속기간 25년 중 22년을 직책을 맡고 있었고, 휴일에도 맘 편하게 제대로 쉬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란 결론을 내렸다. 긴 시간을 싸움 아닌 싸움 끝에 평사원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이도 저도 아닌 시간 낭비만 될 것 같았다. 그들을 나의 지나간 시간에 대입해 보니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거다.

좋을 때 후배에게 물려줘야겠다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난 이미 내 꿈의 길을 걷고 있었고, 세상 그 어떤 화려한 칠갑을 내게 준다 해도 다시 맞바꾸거나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실적은 추락했고 패잔병처럼 너덜너덜해진 후에야 회사에서도 손을 들었다.

해남ㅡ비에 젖은 호박밭의 색감이 선명하다


길고 지루한 줄다리기가 끝났을 때는 주변의 눈초리도 차가워진 듯했다. 결국 자리가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맘도 있었지만 자유를 찾은 새처럼 그 홀가분함에 단전에서부터 호흡이 터졌다.

대범해져야지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가끔 내면의 굳은살들이 갈라지는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를 내려놓고 얻은 열 가지 행복은 자리와 비교도 안 되는 참된 선물이었다.

생에서 잘한 일 열 가지를 꼽으라면 경제활동을 시작한 것과 직책을 내려놓은 것이 동시에 포함된다.

내가 만일 퇴사를 한다면 내게 남을 연락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하다 몇 개의 번호를 지우고 카톡을 차단한다. 인간관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 된 모양이다.

소소한 행위자체도 내게 무한한 자유로움이다


도심만 벗어나도 숨통이 트이고 일상은 붙잡을 사이도 없이 밀려난다. 땅끝마을 미황사를 향해 달리는 길이다. 미르가 보고 싶다.

숙소 뒤란 장독대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