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와의 늦은 이별

사람이나 짐승이나 진심을 물리치긴 어려운 모양이다

by stellaㅡ별꽃

4시간 반쯤 달려 도착한 미황사, 여긴 해남 땅끝마을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친다. 움푹 파인 땅에 물이 고여 질척거리고 종종걸음으로 빗 속을 걷는 사람들 모습이 정겹다.

"야야! 어서 와. 얼른!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니께."

채근하는 보살과 고집스럽게 비 맞기를 고수하는 불견의 실랑이다.

"왜?"

지나가던 년 스님이 묻는다.

"야가 부도암시부터 여까지 비 맞으러 왔나 봐유. 스님이 잡아보셔유."

목줄을 뒤로 감춘 스님이 불견과 눈높이를 맞춰 쪼그려

앉는다. 보살이 불견의 엉덩이를 미는 순간 목줄이 녀석을 잡아채고 비 한방울 들이치지 않는 차양 아래 묶인다.

스님은 목줄을 뒤로 감추고 녀석은 도망치려 하고ㅡ미황사 풍경

억울한 표정의 녀석과 해냈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만개한 스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미르가 안 보인다. 4년 전 이곳에 오던 날도 늦가을 비가 내렸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비에 젖은 땅바닥에 누워 풍뎅이처럼 데구루루 구르며 애교를 부다.

개냥이라 부르기에 모자랑이 없던 녀석은 유독 나를 잘 따랐다. 새벽이던 아침이던 용케도 내 앞에 나타나 산책을 돕거나, 호위하듯 꼬리를 곧추 세우고 내 앞과 뒤를 번갈아 살폈다.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차지했던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긴 스님 한분이 쯔쯔가무시 병에 걸려 고생하셨다며, 사찰 식구들은 바라만 보고 접촉은 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손과, 팔과, 품은 언제나 미르에게 열려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달려드는 녀석을 밀치며 미안하다 말하고 있었다.

미황사 앞마당 도라지ㅡ흔들리며 피는 꽃

그럼에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아침, 부도암 가는 길을 동행해 주 녀석의 깊은 속 마음에 가슴이 시렸다. 3박 4일의 여정이 끝나던 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방문은 활짝 열려있고 그 방엔 미르가 천연덕스럽게 누워 있었다.


나가라고 떠밀어도 요지부동인 녀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단장을 하며 시간을 끄는 듯 보였다.

짐을 싸서 방문을 나서는 내 앞을 가로막고 심지어 바짓가랑이를 물다 꼬리를 곧추세워 나를 저지했다.


녀석을 차마 물리기 어려워 에라 모르겠다. 쯔쯔가무시병에 걸리라지 녀석을 끌어안고 고맙고 사랑한단 말을 전하니 사람처럼 가만히 안겨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방문을 나섰다.

녀석도 사람이 그립고 정이 그리웠던 게다.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어진다. 처마 끝을 타고 흐르는 낙숫물 소리는 여름비를 연주하는 팬플룻 소리다. 점심공양을 다 마치도록 템플스테이 담당 보살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 비마중을 나선다. 작은 웅덩이에 피어난 수련은 에 젖어 청초하다.

미황사 초입 마당 웅덩이에 핀 수련

"템플 오셨오?"

노스님이 지나며 물으신다.

"! 스님."

"좋은 시간 보내다 가시구료."


전화벨이 울리고 드디어 외출 나갔던 담당 보살이 종무소로 오란다. 수련복을 받으며 미르 소식을 묻는다.


"미르요? 아~ 미달이! 미황사와 달마산을 합쳐 지은 이름이죠. 2년 전에 별 이유도 없이 떠났어요."

"어디로요? 혹시 하늘나라?"

"네."

손에 쥐고 있던 우산이 땅에 떨어진다. 온몸의 기운이 일순간 정지되며 어지럼증이 인다.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는 녀석을 보기 위함이었다.

툇마루 끝에 걸터앉는다. 제 몸을 뒤집으며 우는 풍경은 바람소리 빗소리와 합쳐져 그리움을 보탠다.

처마 아래 웅크려 앉았던 새 한 마리가 후드득 날아 완도 앞바다로 향한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진심으로 전한 마음을 물리치거나 잊기는 힘든 모양이다.

"미르야 잘 가. 너는 그곳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을 거야. 넌 정말 친절하고 사랑스런 아이였어."

코 끝이 매콤해진다. 그리웠던 미르와 난 이렇게 늦은 이별을 한다. 단청을 하지 않은 대웅전은 고고함으로 빛난다.


바람이 달마산을 통째로 흔든다ㆍ

단청을 하지않은 대웅전ㅡ미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