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언아 창밖 좀 봐봐. 눈이 내려."
정동교회ㅡ인터넷 캡쳐결혼 전 근무했던 회사는 서소문동에 있었고 회사 건물 11층에서 배재고등학교 언덕이 바라다 보였다. 그 언덕으로 이따금 연예인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고, 실과 바늘이라 불렸던 양언이와 나는 점심식사 후 그 언덕을 넘어 정동교회를 찾곤 했다. 우리 둘은 생각도 외모도 비슷했는데, 야유회를 가던 날 똑같은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서로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 적도 있었다.
조그만 예배당 앞에 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나무벤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 벤치에 앉아 무슨 수다를 그리 떨었는지, 깔깔거리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사계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 둘의 우정은 정동교회로 이어졌고, 덕수궁 돌담길 추억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낙엽이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이 시작되면 퇴근 후에도, 우린 자주 배재고등학교 언덕을 넘었다.언덕 아래 라면을 정말 맛있게 끓여주는 집이 있었는데 떡라면을 먹고 언덕을 넘기도 했다.
어떤 날엔 '뎅그렁뎅그렁' 울리는 예배당 종소리에 뜻 모를 울컥함을 동시에 느끼며 과한 감정을 쏟기도 했다.
그날은 눈이 정말 엄청나게 쏟아졌다. 양언이는 내손을 잡아끌며 배재고등학교 언덕을 향해 바쁘게 걸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왜 그러냐 재차 물었지만, 내손을 꼭 쥔 그녀는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표정이 굳건해 보였다,
벤치에 앉아 쏟아지는 눈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던 양언이는
"나 결혼해. 어떡하니. 너하고 다시는 이곳에 못 올지도 몰라."
"어머 축하해. 그런데 연애한다는 말 한 번도 안 했잖아. 누구랑 결혼하는데?"
"우리 과 이건우(가명)씨랑 해."
"어머어머어머! 이건우 씨는 길숙이랑 사귄 거 아냐?"
뒤통수를 엄청 세게 얻어맞은 느낌보다 훨씬 큰 충격에 가슴이 떨리고 어지럼증이 일었다. 양언이는 급하게 결혼을 했고 둘은 청주로 내려갔다.
상실감으로 한동안 정동교회를 찾지 못했던 나도 이듬해 결혼을 했다. 청주로 내려간 양언이는 손편지 몇 번 주고받다 갑자기 소식이 끊겨 종내 소식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문세 씨의 '광화문 연가'는 꼭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덕수궁 돌담길을 같이 걷던 사람들 중에 유독 양언이의 자리가 크게 느껴졌던 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생기면 정동교회 조그만 예배당 벤치로 오라는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광화문 연가'는 그런 의미던 다른 의미던 마음을 다독여 주는 나만의 또 하나의 계절이 되었다. 요즘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되는 노래. 그리워할 그 무엇이 있는 까닭일까. 아니면 흩어지는 시간을 그렇게라도 붙잡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조그만 예배당과 덕수궁 돌담길 대신 나는 호젓한 호수를 찾았다. 개망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포플러 나무가 한가로운 호숫가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덕수궁 돌담길ㅡ인터넷 캡쳐광화문 연가
아티스트 이문세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사진ㅡ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