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금잔디 언덕에~~

행복한 기억이 많으신가요?

by stellaㅡ별꽃

"아악!"

은희네 집 반려견이 내 손목을 덥석 물었다. 비명과 함께 용수철 튀듯 일어난 나는 정신이 아찔하고 식은땀이 쏟아지는데 은희네 가족들은 데굴데굴 구른다. 깜짝깜짝 잘 놀라는 내 모습을 몇 번 보았던 은희 오빠는 장난기가 발동했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내 팔목을 갑자기 움켜 쥔 것이다. 산전수전 공중전(ㅎ)까지 치른 나이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러다니.....,




겁 많은 꼬맹이


"아니 이놈은 왜 울 이쁜 공주님만 보면

들이받으려 하는 거야."

"아이고 이놈의 자식이 어디 주인을 물어!

한번 맞아볼 테야?"


집에서 키우는 소도 심지어 쥐방울만 한 강아지도

꼬맹이를 깔보는 건 매한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은 왕방울만 한 데다 겁이 어찌나 많은지 경기하기를 밥 먹듯 하고 조금만 큰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기가 다반사. 맹이의 엄마는 경기에 보리수나무가 좋다고 고노리(동네 이름) 뒷산 허리춤에 박혀있는 나무를 베어 오는 일이 일상이다.


소죽을 쑤어낸 가마솥을

지푸라기로 벅벅 문질러 닦고 굵은소금으로 한번 더 닦은 후 보리수를 넣고 물을 가득 부은 후 하루 종일 우려내면 붉은빛 진액이 우러나온다.


꼬맹이보다 두세 살쯤 위인 머슴은 어른들 몰래 꼬맹이를 놀라게 하는 걸 취미 삼았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걷는 소녀 뒤에 바짝 다가가 강아지풀에 새벽 거미줄을 돌돌 말아 목을 쓰윽 훑기도 하고 갑자기 앞에 나타나 호랑이 소리를 내고 달아나는데 열 번이면 열 번 다 당하는 어리바리 꼬맹이.


어느 날 학교가 파하고 복수를 하겠다며 가시나무를 꺾어 들고 경계태세를 갖추고 집에 가는 꼬맹이 앞에 갑자기 나타나 괴성을 지르니 놀란 것도 모자라 가방까지 빼앗기고 만다.


앞마당 외양간을 가로질러야 우물이 있는 곳엘 갈 수 있는데 다른 식구들 앞에서 순하디 순한 황소 녀석이 꼬맹이만 보면 코딱지만 한 뿔을 세우고 고개를 15도쯤 숙여 들이받을 태세를 취한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가관이다. 식구들만 보면 벌렁 누워 갖은 애교질을 하다가도 꼬맹이만 보면 주변을 빙빙 돌며 못생긴 잇몸을 드러내고 위협을 가한다. 동네 어른들은 생기다 말아서 겁도 많고 병치레가 잦다며 몸에 좋다는 약이나 꿀을 따다 주기도 했다.


꼬맹이는 자라 중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꼭 들르는 언덕이 생겼다. 그 언덕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풍경은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배경과 아주 흡사했다. 꼬맹이 집에서 나와 구불구불 논길을 걸어 귀순이네 집을 지나고, 웅덩이를 지나 작은 언덕에 오르면, 앞에 큰 개울이 흐르고 개울 건너엔 박씨네 과수원이 보였다.


안녕 안녕 블로그님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


아카시아 이파리를 따 혼자서 가위바위보 놀다 보면

"일찍 왔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동생."

훤칠하고 잘생긴 오빠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고 영락없이 손엔 소 고삐가 들려있다. 오빠를 따라 나온 두 동생은 냇가에 첨벙첨벙 피라미 잡는다 소란인데 나는 오빠가 빌려다 준 만화책 삼매경에 빠진다.


실컷 풀을 뜯은 소가 게으른 낮잠에 빠지면 베어져 나간 나무 밑동에 고삐를 메어두고 오빠는 하모니카를 꺼낸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고요히 울려 퍼지는 하모니카 소리, 눈을 감으면 어디론가 한없이 달려가던 마음이 푸른 잔디 위를 뛰어놀다 들꽃 언덕으로 달린다. 머리에 들꽃 화관을 만들어 쓰고 깔깔거리다 보면 오빠 손엔 다시 고삐가 들려 있고 뉘 엿 저문 하루는 아슬하게 서편에 걸친다.


"잠깐만 고삐 좀 잡고 있어 봐. 오빠 풀 조금만 베어가자."


내손에 고삐가 쥐어지기가 무섭게 푸레질을 하는 소, 놀란 나는 고삐를 던져버렸고 옳다구나 황소는 내 세상이다 신나게 도망쳐버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찾아 나선건 물론이고 새벽녘에야 이웃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을 몇몇 어른들이 잡아끌고 오면서 소란은 끝이 났다.


오빠의 하모니카 부는 소리는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이따금 너무 애절해 뜻 모를 눈물을 쏟기도 했다. 내 고향 아름답던 그 언덕은 사라졌지만 눈을 감으면 생각나는 바람, 풀냄새, 꽃향기, 개울, 황소, 짓궂은 머슴, 등 빛바랜 추억의 순간들은 흑백영화럼 내 의식의 끈을 잡고 늘어진다.


은희 오빠의 짓궂은 장난에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기억이 여기에 남는다.


'엄마가 섬 그늘에~~'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뜸북뜸북 뜸북새 노~~ 온(논)에서

울고.....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__'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한 고향의 푸른 언덕,

그곳에서 들려오는 하모니카 소리가 이 밤엔 왠지 조금 쓸쓸하다.


서없는 리운 시절 이야기다.


그림ㅡby 별꽃

#표지그림ㅡby 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