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진지 잡수셔유”
조막막한 고사리 손으로 낑낑대며 밥상을 들고 오는 꼬맹이는 열 살이 갓 되었다. 꼬맹이가 차려온 밥상을 받고 눈이 휘둥그레지신 아버지의 표정은 이 세상 그 무엇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환하다. 아침나절 엄마는 충청북도 괴산에 살고계신 작은 아버지 생신 챙겨 드리고 오신다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황급히 신작로를 지나 고개를 넘으셨다. 딱히 교통수단이 없는 시절이라 조치원까지 걸어서 족히 한 시간은 넘을 것이고, 거기서 다시 괴산까지 가려면 버스타고 내려 굽이굽이 산길을 걸어야 하니 하루를 몽땅 써도 모자랄 테다.
자매에게 아버지 진지 차려드리라며 신신 당부를 하고 길을 나선 엄마, 점심때는 다가오고 아버지 점심은 걱정이 되고, 동생들을 데리고 나간 언니는 함흥차사고, 안절부절 못 하던 꼬맹이는 궁리 끝에 무거운 족대 대신 얼개미채를 들고 개울가로 달려간다.
개발과 전혀 무관했던 자연그대로의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며 살았던 그 시절엔 집 앞 개울가만 나가도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개울 가장자리 물풀이 우거진 곳이나 버드나무가 뿌리를 내린 침침한 곳은 붕어 떼의 안식처였다. 한사람이 족대를 펼쳐 붕어가 다니는 길목을 막고, 다른 사람들은 물풀이 우거진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족대가 펼쳐진 곳까지 빠른 속도로 발을 구르면 흙탕물이 일고, 놀란 물고기들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다 발길질을 피해 족대 방향으로 쏠려 들어간다.
그 순간 양손으로 잡은 족대를 재빠르게 치켜들면 그 안에 붕어나 미꾸라지 운 좋으면 메기를 낚는 횡재를 누리기도 한다. 장마철이면 논에 물을 대는 수로에 얼개미채만 걸쳐놔도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르는 물고기들이 바글바글 쏟아져 들어온다. 가끔 바닷장어가 쓸려 내려오기도 하고 빗줄기를 타고 날아오는지 알록달록 노란색 줄무늬를 한 미꾸라지가 마당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개울가나 논에서 노닐던 물고기들은 겨울이면 땅을 파고들어가 동면을 하기도 하는데 특히나 미꾸라지는 논배미 속 언 땅을 몇 번만 삽질하면 진흙 속에 바글바글 했고, 애꿎은 개구리들이 놀라 눈알을 굴리며 무슨 일인가 정신 줄 놓기도 했다. 둠벙의 물을 퍼낸 후 바닥을 파헤치면 뱀처럼 징그러운 장어가 나오기도 하고 보기도 흉측하고 소름끼치는 시커먼 웅어가 나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풍족해 지천으로 널린 먹 거리를 본 체 만 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살림은 궁핍해도 자연이 주는 먹 거리들이 풍성했던 시절이라 인심은 오히려 지금보다 후했다. 내 집 네 집이란 개념 없이 한집처럼 지내는 이들도 많았다. 엄마가 작은 아버지 댁에 가면서 이웃집 아주머니에게도 부탁을 해 둔 터라 점심을 드시러 오라셨지만, 아버지 성품에 불쑥 이웃집으로 가실 리가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꼬맹이는 아버지 점심을 차려 드린다며 대뜸 개울가로 달려 온 것이다.
얼개미채를 물풀이 우거진 곳에 대고 발을 동동 굴러 보지만 붕어는커녕 민물새우 한 마리도 안 잡힌다. 누군가 발을 굴러줘 족대로 물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속이 타들어가는 꼬맹이는 울상이 되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이 다가온다.
연유를 듣고 기막히기도 하고 신통하기도 한지라 동네 어르신 풀 섶에 손을 넣고 붕어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약아질 대로 약아진 붕어가 쉽사리 잡힐 리 없다. 이번엔 얼개미채를 풀 섶에 바싹대고 재빨리 손으로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니 옳거니 눈먼 각시붕어가 얼개미채로 돌진한다.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내 헹군 후 얄팍한 돌로 비늘을 벗겨 건네주니 흥분한 꼬맹이는 냅다 붕어를 들고 뛴다. 어디서 본 것은 같아서 붕어에 굵은 소금을 뿌려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 안간힘을 쓰지만 도통 불이 붙지 않는 지푸라기, 성냥을 그어 종잇장에 불을 붙여 불씨로 삼으니 아궁이 안이 환해지면 꼬맹이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된다.
석쇠위에 붕어를 얹어 타오르는 불 위에 얹는다. 흐뭇해진 꼬맹이는 마당으로 뛰어 나가 지천으로 널린 질경이를 뜯는다. 질경이를 들기름으로 볶다 쌀뜨물을 부어 국을 끓여 드릴 심산이다. 아버지는 조막만한 딸내미가 바쁘게 뛰어 다니는 게 내심 걱정이 되어 참견하려니 방에서 나오시지 말라는 꼬맹이, 반쯤 열어 둔 문틈으로 부엌을 살피며 행여 불이라도 낼까 노심초사다.
아궁이 붕어는 익을 생각도 없어 속은 타는데 달구어 진 커다란 가마솥에 한줌의 질경이가 들어가고 꼬맹이는 부뚜막에 올라앉는다.
그림ㅡ황성자 들기름을 부어 볶다 쌀뜨물을 붓고 뚜껑을 닫는다. 콧잔등은 재가루가 달라붙어 새카매지고 여린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붕어는 새카매지기만 하고 젓가락으로 아무리 눌러봐도 익은 기색이 없는데 야속한 시간은 잘도 간다. 아궁이 안 붕어가 익었다 싶어 꺼내 밥상위에 올리고 질경이 국을 퍼 담는다. 엄마가 아침에 해 둔 밥은 담요에 싸여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던 지라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진지 잡수셔유 아부지”
땀으로 범벅이 된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 눈은 표현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으로 넘친다.
“아이구 우리 효녀 딸이 아부지 밥 차려주려고 붕어도 잡아 온 겨? 질경이 국 끓이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꼬. 우리 딸이 해 준 밥 좀 먹어볼까나”
새카매진 붕어를 한 점 떼어 입안에 넣으신 아버지의 동작이 잠시 멈추더니 꿀꺽 삼키는 소리. 그리곤 환히 웃으시며 배부르니 붕어는 저녁에 다시 먹자 하셨다.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질경이 국을 다 드시는 모습에 꼬맹이는 안심도 되고 자랑스럽기도 해 빨리 엄마께 말씀드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우리 딸, 고맙다. 아부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먹었구나.”
아픈 허리를 한손으로 바치고 아버지는 족대를 들고 싸리문을 밀고 나가신다. 오남매가 모인 저녁시간, 초여름 앞마당엔 멍석이 펼쳐지고 난데없는 화롯불이 지펴진다. 뚜껑이 채 덮이지 않은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화롯불에 올라앉는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냄비 안에서 퍼지는 맛있는 냄새에 오남매는 놀라고, 한참을 불룩하게 솟아있던 냄비 뚜껑이 제자리를 찾는다. 배고픈 창자를 괴롭히던 긴긴 시간을 마른 침을 삼키며 기다리던 오남매에게 아버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냄비 뚜껑을 연다.
커다란 붕어가 가득한 냄비, 무청을 깔고 두부콩을 얹어 조려 낸 아버지의 붕어찜, 입안에 가시가 걸리면 성가시다며 와이자 모양의 가시 하나하나를 발라 오남매에게 먹여주신다. 긴긴 하루를 비추며 걸쳐있던 해는 서산으로 달아나고 처마 아래 기둥엔 남포 불이 내걸린다. 마당엔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엄마가 넘어가신 신작로를 바라보는 오남매의 눈엔 벌써 그리움이 차오른다. 성치 않은 몸으로 족대를 들고 나가신 아버지의 등은, 꼬맹이가 달려 나가 잡아 온 붕어와 질경이의 효심에 대한 부모의 위대한 사랑의 화답이었다.
수필집ㅡ단 하루의 마중 에서 발췌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