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코와 오성이 아저씨

정이 넘치다 못해 흐르셨던 아버지..

by stellaㅡ별꽃

곳간채가 시끌벅적 하다. 무슨일인가 싶어 오남매가 쪼르르 달려가보니 장정 서넛이 들어가도 될 만큼 커다란 쌀독 안을 들여다 보며 어른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바람이 났느니 발정이 났느니 등등 초등생 어린 아이들에겐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갔지만 누군가 도망 갔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어릴 적 꽤나 부유한 집에서 잠깐이나마 호사를 누리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동네에서 외따로 떨어진 우리 집은 기와 지붕에 머슴들이 기거하는 사랑채까지 있었고 집안엔 우물이 있었다. 우물 반은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반은 밖으로 나게 해서 동네 사람들이 길어 먹을 수 있도록 두레박을 두 개를 달아 놓았던 기억이 있다.


봄이면 울타리엔 노오란 매화꽃이 만발하고 탐스런 접시꽃과 밥풀꽃이 뒤뜰을 가득 메우곤 했었다. 한여름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큰 키에 넓다란 잎사귀가 달린 정체 모를 나무에 아기 손가락 만한 열매가 다닥다닥 붙은 채 탐스럽게 열렸다. 늦가을이면 나무는 뿌리채 뽑혀 풋내 나는 열매와 함께 땅 속 깊이 묻혔다가 봄이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어릴 적에 그 기이한 열매의 정체를 모르다가 어른이 되어서야 그게 바나나 나무인걸 알았다,


아버지, 속없이 사람 좋아하시고 정이 넘치다 못해 흐르셨던 아버지는 어려운 사람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다. 하다 못해 품바아저씨들이 떼로 몰려다니면 먼발치에서도 소리치고 손짓해 부르셔서는 식구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그대로 차려주라 하셨다. 이런 아버지를 품바 아저씨들은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품바 생활을 접고 일상으로 복귀해서 자식 챙기며 사는 일도 종종 있었다 했다.


뺑코가 오던 날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 입학 무렵 사내아이 하나가 식구로 들어왔다. 나보다 대여섯살쯤 위인듯한 사내 아이는 유난히 콧날이 뾰족하고 말이 없었다. 옷소매로 코를 얼마나 닦았는지 소매 끝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아버지가 조치원 장터에 나가셨다가 음식점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내아이를 발견하고 무턱대고 집으로 데려 오셨단다. 오자마자 목욕물 데워 부엌에 목간통 들여 채우고 엄마에게 목욕을 해주라 이르셨다.

멀끔해진 사내아이는 제법 잘생겼고 뾰족한 코 때문에 오남매는 뺑코란 별명을 지어 주었다. 머슴으로 부린다고 데려 오셨다지만 밥 많이 먹고 게으르기가 느린 황소보다 더했다.


그 시절엔 누구나가 이가 있었지만 뺑코에겐 유난히 이가 득실거려서 저녁이면 뺑코 옷을 벗겨 이를 잡는게 울엄니의 일거리였다. 뺑코 옷을 다듬이 돌에 얹어 망방이로 두들겨 어느 정도 이를 소탕하고 나면 솔기 안에 버글버글 박혀있는 서캐를 등잔불에 태우는데 서캐 터지는 소리가 여간 요란한게 아니었다. 오남매 키우기도 버거운 울엄니가 안스러워 엄니 옆에서 통통하게 영근 이를 잡아서 엄지손톱으로 눌러 압사를 시키기도 하고 화롯불에 던지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뺑코는 뭐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고 일을 돕기는커녕 일거리를 더해주는 일들이 잦아졌다. 인정 많아 그냥 지나침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그런 뺑코에게 글을 가르친다고 끼고 앉아서 천자문을 읽히시고 쓰게 하셨다.

어릴적 유난히 병약했던 난 학교 가는 일도 버거운 일중의 하나였었고 그런 내가 걱정스러우신 아버지는 학교가 파할 쯤이면 뺑코를 시켜 내 가방을 받아오라 이르시곤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집에 돌아오는 길엔 여지없이 뺑코가 나타났고 그런 상황이 너무 창피하고 싫어서 아카시아 나무가지를 꺽어서 뺑코를 때렸다. 아버지의 명령이 있었던지라 그런 나를 무시하고 가방을 빼앗아 후다닥 도망가는 뺑코를 잡으러 죽기 살기로 달려 가면 뺑코는 혀를 쏙 내밀고 더 멀리 멀리 사라져버렸다.



오성이 아저씨는 또 누구?


뺑코가 가족이 되어갈 무렵 아버지께서 조치원 읍내에 나가셨다가 삼촌이라며 오성이라는 아저씨를 데리고 오셨다. 민머리에 배는 불룩하고 불만 가득한 얼굴은 오만하기가 이를데 없는 비호감 인상, 성이 같은 황씨라고 삼촌이란다 그렇다고 확인 할 길도 없어 아버지의 명이니 별수 없이 한집에서 부딪히며 살 수 밖에.


그런데 이 삼촌, 아니 이 아저씨 하는 꼴이 가관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울엄니 시집살이를 시키는데 자기가 시동생이고 주인이었다. 그냥 있어도 진상인 얼굴에 반찬 투정을 하며 괜스레 우리들에게 신경질을 부릴 때면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 찌그러진 얼굴을 발로 뻥 차서 날려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단 한번도 싫은 내색 없이 그 시집살이를 다 해내는 엄니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더 웃기는 건 뺑코를 우리 가족보다 더 머슴처럼 부린다는 사실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뺑코가 순순히 그 명을 따르지 않을거란 건 자명한 일, 둘이서 티격태격 말싸움이 잦아졌고 뺑코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늦은 밤에 들어 오는 날이 많아졌다. 번들거리는 뺑코의 이마엔 여드름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서 제법 사내모양이 갖추어져 가고 더불어 아버지의 불호령도 잦아졌다.


누가 그랬다. 뺑코가 바람이 났다고. 조치원 읍내에서 여자랑 다니는 걸 봤단다. 곳간채에 저녁을 지으려고 쌀을 푸러 가신 엄니가 혼절 할 듯 놀라셔서 아버지를 부르셨다. 쌀을 푸려고 조롱박을 쌀독에 집어 넣는 순간 뭐가 푹 꺼지면서 삼태기 엎어 놓은거랑 지푸라기가 쌀 대신 수북히 올라 오더란다. 삼태기랑 지푸라기를 쌓고 그 위에 살짝 쌀을 덮어 교묘하게 위장을 한 뺑코의 잔머리에 어른들이 혀를 내두르셨다. 쥐 죽은 듯 고요하고 깜깜한 시간에 어찌 그 많은 쌀을 퍼 날랐을까.


그 이후로 뺑코는 온데간데 소식이 없었고 간간히 조치원 장터에 나타난다는 소식만 바람결에 들러왔다. 오성이 아저씨도 뺑코가 가출한 이후로 무슨일인지 조용해졌고 식구들 눈치를 보며 집안 일을 슬금슬금 돕기 시작했다.


새끼줄도 꼬고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장도 손보고 소꼴도 베어오곤 하더니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다. 아버지에게 쌀한가마니 달래서 읍내에 헤어져 살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단다. 어느 정도 성장해서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오성이 아저씨는 빚 때문에 채권자들을 피해 숨어 살았었던거라 했다.


뺑코도 오성이 아저씨도 떠난 그 해 겨울 밤, 지나가던 행인이 던진 담배 불이 큰 마당에 쌓아 둔 짚 더미에 옮겨 붙어 불이 났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타고 불은 미친듯이 지붕으로 번져서 기왓장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를 내며 타 들어 갔고, 온 동네 사람들이 꽁꽁 언 논을 삽이랑 곡괭이로 파 샘을 만들어 겨우 불을 껏지만 후로 놀란 가슴이 병이 되어 아버지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


불현듯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뺑코가 나타났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어설픈 신사복이 꽤나 멋져 보였다. 누워계신 아버지랑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더니 엄니를 향해 넙죽 절을 하고는 읍내 쪽으로 다시 떠났다. 동태랑 선지 한 덩이가 검은 비닐에 담겨 부뚜막에 올라 앉아 있었다.


뺑코가 바람처럼 훌쩍 다녀간 그날,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 하늘에 삭풍이 몰아치며 함박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마루 끝에 걸터 앉으신 아버지는 상사병 걸린이처럼 동구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이후론 어디에서도 뺑코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의 꽂지게에서 발췌. 2014년 에세이문예 공모전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