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왼편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미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따가운 시선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그다음 주 미사 시간에도 미사포가 뚫어지기라도 할 것 같은 강렬한 시선은 여전했다.
“스텔라 씨!”
세례명을 부르는 소리에 고갤 돌려 바라보니 탤런트 강석우 씨를 묘하게 닮은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번번이 그녀 옆자리에서 미사참례를 함께 하던 그는 미카엘(가 세례명)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8살 연상의 남자였다.
거듭되는 우연인지 계획인지 모를 부딪침에 그녀는 미사 시간을 바꾸어도 보았지만 묘하게 그는 그녀와 늘 같은 시간에 성당엘 왔다. 성경책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같이 보자 하는 그와 별수 없이 짧은 대화라도 나누어야 했다.
필요 이상으로 그를 경계하는 그녀에게 삼촌처럼 편하게 생각하라는 남자.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을 뿐이라 했다. 대체 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클래식을 들려준다는 말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 고모 집에서 하숙 반 자취반의 형태로 살던 그녀는 퇴근과 동시에 총알처럼 튀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전농동 가는 버스를 타곤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모 집까지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다시 뛰곤 했는데, 다 큰 조카를 데리고 있다 보니 많이 마음이 쓰이셨던 모양이었다. 고모랑 고모부는 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도 점점 더 일찍 오라며 불호령을 내리셨다, 그런 두 분이 무서워 퇴근과 동시에 버스정류장까지 뛰는 게 일이었다.
서울 생활이 외롭기도 하고 좁은 고모 집에서 함께 하기가 많이 민망했던 그녀. 이십 대 어린 나이인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성당으로 달려가는 일이었다. 눈이 크고 초롱 하다고 대모님께서 ‘스텔라’라는 세례명을 지어 주셨다. 세례명을 살갑게 불러주는 아저씨를 주말마다 성당에서 만나다 보니 빗장 걸린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집에 어머니가 계시니까 안심하고 음악을 듣고 가라는 아저씨 집을 처음 방문하던 날, 정말 버선발로 뛰어나오셨던 아저씨 어머니의 환한 미소는 일상 중에도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화사했다. 그 큰 방에 방송국 수준의 음향시설과 장비들로 빼곡했던 아저씨의 방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 당시에 스피커나 엠프 LP판의 가격들을 들으며 쓰러지는 줄 알았다.
거장들의 음악세계를 설명하는 아저씨의 말은 너무나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 서울생활이 외로웠던 그녀에게 별이 쏟아지듯 그녀 안으로 선율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고모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아저씨 집은 퇴근하면서 들렀다 가기 좋은 곳이었다. 그토록 무서운 고모도 무슨 일인지 아저씨 집에 들러 음악을 듣고 간다고 하면 호통을 치는 게 아니라 많이 놀다 오라며 후한 인심을 쓰곤 했다.
여고시절부터 당숙 아저씨 댁을 드나들며 들었던 익숙한 곡들에 끌린 그녀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방을 드나들었고, 출장이 잦았던 아저씨 덕분에 방을 혼자 차지하는 날도 더러 있었다. 그녀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뻐하셨던 아저씨 어머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퇴근하는 그녀를 불러 저녁밥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우리 스텔라. 자주 놀러 오너라. 참 예쁘게도 자랐구나.”
나를 보기만 해도 입이 귀에 걸리고 햇살처럼 미소가 번지셨다.
“스텔라가 우리 며느리라면 울매나 좋을까나.”
아저씨의 어머니는 그녀를 볼 때마다 독백처럼 말씀하셨지만 그녀는 전혀 귀담아듣지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연인지 그녀가 좋아하는 쇼팽의 ‘이별곡’ ‘즉흥환상곡’ ‘모차르트 21번’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등을 아무 말 없이 반복해 들려주는 아저씨. 힘이 들어도 생전 힘들단 이야기를 안 하는 성격인 그녀는 객지 생활이 벅차고 외로웠던지라 음악은 크나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아저씨의 관심이 묘하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그녀는 언젠가부터 그 골목을 피하고 있었다. 우회해서 출퇴근을 하려니 것도 보통일은 아니었지만 부담스러움보단 나았다.
그녀의 관심을 끌려던 아저씨는 퇴근하는 길목에서 팔등신 미녀와 팔짱을 끼고 질투심이라도 유발하려는 의도였는지, 조금 유치하다 싶은 방법으로 그녀를 자극하려 했다. 음악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좋은 아저씨였던 그에게 경계심을 품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할 모진 말들을 쏟아내야 했다.
지루한 감정의 줄다리기로 한 계절을 보내고 비로소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졌단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 돌아가던 길을 접고 본래의 길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지라 아저씨가 안보이니 내심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의 모질고 독한 말들에 상처를 입었는지 느닷없이 종적을 감춘 아저씨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이 지나도록 소식조차 알 수가 없었다.
1년쯤 지났을까. 비서실에 근무하던 그녀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처절하게 싫어하는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한 아저씨는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구로 내려갔단다. 사업을 시작해 돈을 많이 벌었다며 보여줄 것이 있으니 대구로 딱 한 번만이라도 내려와 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 더 싫어져 더 이상 전화를 하지 말라며 매몰차게 굴었다.
밤새 내린 눈이 무릎까지 차고 자칫 방심하면 구르기 십상인 날이었다. 굽이 높은 롱부츠를 신고 조심조심 골목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무사히 왔나 싶었는데, 아뿔싸! 갸우뚱 몸이 기움과 동시에 그녀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보라 빛 고르덴 미니스커트는 폭이 좁은지라 일어서려는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몰골은 점점 사나워졌고, 일어서려 하면 할수록 몸은 자꾸 바닥으로 밀착이 되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총중에 ‘아! 정말 미치겠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대구로 내려갔다던 아저씨가 왜 그 시간에 버스정류장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 바닥에 누워서 본 아저씨는 신수가 훤해져 영화배우처럼 잘 생겨 보였다.
그토록 진저리 나게 싫었었는데 눈길에 넘어져 누운 상태에서 스치듯 본 영화배우 같은 그 아저씨가 묘하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출퇴근 길에 그 아저씨 집을 기웃거리는 이상한 버릇도 생겼다. 비서실 전화벨이 울리면 혹여 하는 마음에 쿵쿵 뛰는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아 메스꺼움 비슷한 멀미를 일으키며 전화를 받곤 했다. 하지만 전화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고, 버스정류장에서는 물론 그 어디에서도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도, 그 어떤 소식도 알 길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