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와 동동구리모
바늘로 찌르면 ‘톡’ 터져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10월의 하늘. 들녘을 수놓던 황금빛 벼들이 농부의 낫에 베어지면 몇 날 며칠 들판에 누워 일광욕을 마치고 한 아름씩 묶어졌다. 묶어진 볏단을 들고 장정 서넛이 탈곡기 앞에 나란히 서서 오른발로 힘차게 발판을 구른다. 호흡을 맞추는 발판에 리듬을 타며 탈곡기의 톱날은 볏단을 들었다 놓았다 좌우로 돌리는 장정들의 손에 의해 낱알을 털어내면 부지런한 아이들은 멍석을 펴고 밀대로 죽죽 밀어 넌다.
행여 탈곡기의 리듬을 놓치는 날이면 큰일이다. 볏단과 함께 탈곡기의 무시무시한 날 속으로 몸이 휘감겨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탈곡하는 농부들은 둘 셋씩 짝을 이루는데 한 팀이 낱알을 털어내면 재빠르게 다른 팀이 발판 위에 선다.
그들의 동작은 규칙이 있고 리듬이 있다. 행여 한 명이라도 리듬을 놓쳐 버리는 날엔 볏단이 감기는 건 물론이고 팀원 전체가 다칠 수도 있으니 초집중이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이다. 두 팀, 세 팀이 반복해 탈곡기 발판을 구르는 모습은 도돌이표 같다.
긴장되고 조심스러운 농부들 마음을 알 리 없는 참새들이 낱알이 수북한 멍석 위로 날아든다. 콩쥐 팥쥐에 등장하는 착한 참새들이 아니라 제 위장으로 낱알 채워 넣기에 바쁜 얄미운 참새들이다. 양철로 된 양동이를 장작으로 두들기며 훠이훠이 쫓아 보지만, 감나무나 대추나무 빨랫줄에 잠시 피신해 있다 순식간에 날아와 낱알을 쪼아 먹는다.
약이 오른 엄니 아부지들이 마당에 덫을 설치했다. 쌀을 펴 널고 소쿠리로 십 분의 구쯤 덮고 새 한 마리 들어갈 정도의 틈새를 만든다. 나무막대를 실로 묶고 소쿠리를 살짝 괸 다음, 쌀을 쪼아 먹기 위해 소쿠리 안으로 참새가 들어가는 순간 실을 잡아당기면 그 안에 갇힌 참새들은 오두방정을 떨며 오종종종 뛰어 보지만 헛일이다. 낱알 훔쳐 먹은 죄의 대가는 혹독한 것만은 아니었다.
참새가 소쿠리 안에 갇히면 덕구는 소쿠리 안의 참새들을 어찌해 볼 심산으로 빙빙 돌며 난리 법석을 떤다. 발로 툭툭 차 건드리다 실수로 소쿠리가 뒤집히는 날엔, 에라 갇힌 참새들은 ‘째~액 째재재 짹’ 죽을힘을 다해 퍼덕이며 날아간다. 번번이 참새들을 놓아주는 꼴이 된 덕구를 참새들은 어찌 생각했을까. 아니 갇힌 참새가 안쓰러운 덕구는 일부러 바보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물가에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어떤 날은 노란 카나리아가 날아들기도 했다.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은 두 마리가 함께 날아들었다. 참새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놀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파랑새와 카나리아를 잡고 싶은 욕심에 자매들은 병이 날 지경이었다. 기어서도 가보고 소쿠리도 던져보고 별별 수단을 다 써 보지만 그 어여쁜 새들이 쉽게 잡힐 리 없다.
그림 실력을 타고났던 언니는 1미터는 족히 넘을 기단 위에 세워진 안채 마루에 엎드려 우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물 바닥에 참새가 한 마리 두 마리 모여들고 화룡정점(畵龍頂點)으로 파랑새가 그려졌다. 언니의 우물 그림은 교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고 자매들의 파랑새에 대한 집착은 커져만 갔다. 이웃집에서 물을 길어 먹을 수 있도록 반은 집안으로, 반은 밖으로 나게 만든 우물가엔 종종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었다. 우물을 사이에 두고 물 한 두레박에 수다는 반나절이었고 파랑새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화두가 되었다.
“파랑새 갖고 싶으냐. 우리 딸들?”
“응 엄마. 파랑새! 파랑새!”
엄마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느 날부터 우물가를 유심히 살피던 엄마는 매일 그 주변에 쌀을 뿌리셨다. 쌀의 양은 조금씩 늘어났고 소식을 들은 새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새들이 놀다가는 시간도 길어졌다. 엄마의 소쿠리 덫이 우물가로 옮겨졌다.
드디어 파랑새가 날아들었다. 자매들은 숨을 죽이고 마루에 엎드렸고 덫을 고인 막대 실을 잡은 엄마의 손끝은 떨렸다. ‘제발! 파랑새야 덫 안으로 들어가거라.’ 가느다란 신음, 엄마 손에 잡힌 실이 재빠르게 당겨졌다.
“아이쿠, 잡혔네. 파랑새.”
넋 놓고 놀던 파랑새는 잡히고 약아질 대로 약아진 참새들은 후드득 날아가 버렸다. 덕구는 소쿠리 주변을 빙빙 돌며 난리였고 행여 사고 칠까 안간힘을 쓰던 덕구는, 오빠에게 질질 끌려 목줄 매여 툇마루 기둥에 묶어졌다. 소쿠리 안에 잡힌 파랑새를 꺼내는 일이 또 문제였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엄마는 자매들에게 소쿠리가 뒤집히지 않도록 사방을 꼭 잡으라고 단단히 이른 뒤 한 귀퉁이 틈을 최대한 적게 벌려 손을 집어넣고 수십 번의 씨름 끝에 파랑새 발목을 잡고야 만다.
자유롭게 창공을 날며 지저귀던 파랑새의 자유는 새장 안으로 사라지고 소문을 들은 동네방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파랑새를 보기 위해 집으로 몰려들었다. 듣도 보도 못했던 사람들이 새를 팔라며 찾아오기도 했다.
그 무렵 서울서 화장품 장사를 한다는 호계(마을이름)가 고향인 아줌마 한 분이 내려오셨다. 엄마에게 동동구리모 한 통을 내어놓으며 파랑새와 맞바꾸자며 흥정을 시도했고 자매들은 안 된다며 엄마 치맛자락을 잡았다.
“언니! 이 동동구리모가 을매나 좋은지 아시우? 내 피부 봐유. 언니처럼 절세미인이 시골서 살기는 증말 아깝대니께. 한번 발라 봐유. 저깟 파랑새가 뭐여. 시골에 널린 게 새구만요. 이 동동구리모랑 파랑새랑 바꿔유. 나는 서울서 적적하니께 파랑새랑 놀면 좋구, 언니는 서울사람 맹키 피부가 뽀얘지고 누이 좋구, 매부 좋구 아니겄어유.”
아줌마의 집요한 흥정에 말 한마디 없는 엄마는 어여 갈 길 바쁜 사람 서두르라며 일어서셨다. 동동구리모가 두통, 세 통, 경매 붙인 것도 아니건만 아줌마의 흥정은 지칠 줄 몰랐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줌마 얼굴엔 결연함 마저 감돌다 이내 폭탄 한 방 시원하게 날린다.
“언니! 5천 원 드릴게 나한테 파시우. 그 대신 한 번에 못 드리고 몇 번 나누어서 드릴게. 오천 원이 울매나 큰돈인지 알우?”
5천 원이라니. 40여 년 전의 5천 원은 상상이나 될 터인가. 엄마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시더니 결심한 모양이다. 새장 안의 새를 꺼내 든다.
“잘 생각 하셨유 언니. 증말 언니 결정 잘 하신거유.”
얼굴에 화색이 돌며 파랑새를 잡으려 하는 아줌마를 밀치고 엄마는 돌연 마당 한가운데 서더니,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있는 힘껏 파랑새를 날렸다. 아래로 추락할 듯 잠시 비척이던 새는 하늘 가운데로 사라져 버렸다.
“워매 워매. 언니 미쳤수. 아이고 아까운 파랑새. 돈 드린다잖어유!!.”
"아이고 안 그래도 내가 한 이틀만 더 있다가 날려 보내려던 참인디 너도 어지간히 끈질겨. 내가 팔 것 같으면 벌써 팔았겄지. 지맘대로 날아다니던 애를 붙잡아 둬서 이래저래 마음이 안 편했었는디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다.”
울고불고 자매들은 난리였고 눈을 흘기며 집을 나서는 동동구리모 아줌마의 눈매엔 원망이 가득했다. 자매들을 끌어안고 토닥이던 엄마는,
“사람은 사람 사는 곳에서, 새나 짐승은 지들 사는 곳에서 살게 내버려 둬야 하는 거여. 오늘부터 파랑새를 생각하며 잠이 들면 날마다 꿈에서 만날 거여. 그러니께 슬퍼하지 말어. 우리 딸내미들.”
우물가로 날아들던 파랑새는 이후로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간간이 카나리아가 날아왔지만, 자매들은 물론 그 누구도 카나리아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단 하루의 마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