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로 살 뻔 했던

종신서원을 원치 않으면

by stellaㅡ별꽃



'지금 종신서원을 하면 평생 반 수도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수도자처럼 사는 게 자신 없으신 분들은 이 자리를 떠나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수도자처럼 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삶을 원치 않으면 망설이지 말고 일어나세요.'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온다. 삶의 전부인 아기 둘을 가진 그녀에게 수도자처럼 사는 삶은 두려웠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기도로 살아야 하는 운명과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수도원을 나와 뛰기 시작한다. 어떻게 합정동 전철역까지 뛰어 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녀의 인생은 그날 합정역에서부터 다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삼십 대 초반 새댁인 그녀는 매일 미사를 다니며 성당 반장일을 맡고 있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지낼 때는 한집에 두 종교를(같은 신인데 천주교와 기독교는 다른 신을 믿는다고 여기시는 듯했다) 믿으면 집안에 화가 생긴다 하여 스무 살 때 눈이 별처럼 초롱 하다고 지어주신 '스텔라'는 영명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6년 정도 시어른들과 살다 남편이 지나는 길에 우연히 청약해 본 평촌의 아파트가 당첨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분가를 했다. 이사 후 몇 달은 더 신이 난 듯 보이던 남편은 도통 얼굴 보기가 힘이 들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은 힘에 겨웠고 아빠를 기다리는 두 아들의 지친 모습을 보는 건 가슴을 간장에 졸이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힘겨운 일이 있어도 혼자서 삭이던 그녀에게 매일 미사는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복닥거리며 사는 일상들이 작게만 보였고 그녀가 믿는 신의 영역 안에서 지내는 기도의 시간은 행복했다.


버리는 연습을 하세요. 자매님.’

‘가진 것도 없는데 무엇을 버려야 하나요 신부님?.'

세상을 끌어안기엔 아직은 벅찬 그녀에게 신부님은 종종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도 버리는 연습을 하면 저절로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셨다. 천방지축 럭비공 튀듯 예상치 못하게 튀는 남편에 대한 해바라기를 언젠가부터 그녀는 접고 있었다. 무의미함에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 이것이 버리는 연습이었나.'


기도의 은총을 받은 그녀는 점점 더 신앙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부여잡았던 많은 것들이 하나 둘 그녀 곁을 떠나고 대신 신심이 두터운 사람들이 다가왔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매일 미사를 다니며 사람들과 모여, 그녀가 믿는 신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들의 하루는 세속과는 참으로 무관한 수도자의 일상과 버금가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성당에서 반장일을 맡던 그녀에게 자연스레 갈멜 재속회에 입회하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어차피 일상이 기도가 반인 생활이었으니 수도회에 입회한다는 건 그리 큰일은 아닌 듯했다.


같은 재속회 교육을 받는 지인들끼리 번갈아 아이들을 봐주며 오직 기도만이 전부인 시간을

공유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번민에 싸였다. 잘 산다는 건 무엇인지 의문에 빠져들었다.


이제 삼십 초반인데 세상의 즐거움을 다 버리고 산다는 것? 끊임없이 부딪히는 내적 갈등과 번민하는 그녀를 이끌어 주려는 사람들, 그녀의 일상은 자연스레 아이들마저 구속하고 있었다.
종신서원을 포기하고 절두산 성지에도 도망치듯 빠져나온 그날 이후,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앙적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라며 다시 돌아오라 설득하는데, 이미 마음이 식어 버린 그녀는 단호히 거절한다.


수도자처럼 살 그릇이 못 됨을 너무도 잘 안다. 설사 그릇이 된다 해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과 알콩달콩 일상을 누리며 살고 싶었다.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듯 허탈하고 속 시원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문득 10년 후 자신과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던 그녀는 직장을 얻고 일벌레로 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만 건강하면 행복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그녀의 직장생활은 자신과 아이들의 꿈을 향해 한발 다가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세상의 힘든 일들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다 이겨 낼 수 있었고, 내 아이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하마터면 반수도자로 살 뻔했던 그날은 동시에 합정역을 향해 달리던 날이었다. 미친 듯 내달리던 그 순간은 아이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으며,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한 질주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