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학생! 주간학생!

계절이 촘촘히 다가올 즈음이면...

by stellaㅡ별꽃



야간 학생! 주간 학생!



“주간 학생! 누가 찾아왔네.”


나보다 한두 살쯤 위인듯한 여자가, 아니 언니가 독기를 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처음 보는 언니다.


“너 우리 오빠랑 어떤 사이니? 코딱지만 한 게 어디서 남의 남자 친구를 꼬드겨.”


“오빠요? 꼬드겨요? 언니는 누구세요? 다른 사람 찾아온 거 아녜요?”


코딱지는 무슨, 지보다 10cm는 내가 큰 것 같은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괜한 말이 아닌 모양이다. 어안이 벙벙한 나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언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자기랑 오빠는 ㅊ대학교 CC인데 어느 날부터 자기를 만나는 걸 피한단다. 따져 물으니 내 이야기를 하며 헤어지자 했단다.


“언니가 말하는 오빠는 본 적도 없지만, 그 정도의 남자라면 언니가 차요. 뭐하러 만나요?”


지나치게 답답할 정도로 보수적인 여고생이었던 내게 남자를 꼬드긴다는 말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었다.


“그런데 오빠라는 분 좀 데려와 보시죠. 얼굴이나 봐야겠어요.”


다음날 정말 그 언니는 남자 친구를 데리고 자취 집 마당 앞에서 나를 불렀다. 어디서 떨어진 외계인인지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인 데다 나사가 하나 풀린 듯 멍해 보이기까지 한다.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 무심하단 이야기를 가끔 듣던 나였던지라 그 정도 인물이 눈에 띌 리가 없었던 건 당연했다.


“그런데 저를 어디서 봤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응 가게(마트)에 번개탄 사러 가다가 너를 가끔 봤어.”


“아니 이 남학생이 주간 학생 보려고 우리 집 통나무 다리에서 맨날 기웃거렸구먼. 쯧쯧 공부는 안 하고 어린 여학생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다시는 얼쩡대지 말엇.”


주인집 아주머니가 일침을 날린다.





달빛이 별빛 품을 파고드는 어스름한 새벽 등을 밟으며 등굣길의 여정이 시작된다. 사립문 여는 소리, ‘삐걱’ 대문 소리, ‘컹컹’ 개 짖는 소리, 단잠에 취하기도 전에 새벽도 아닌 밤에 일어나 가마솥에 군불 지펴 새벽밥 짓고, 쇠죽 쑤는 솥단지에 수수나 콩을 삶는 엄마들.


엄마들이 밥을 짓는 동안 아이들은 우물가에서 양잿물로 만든 새카만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 뜨끈한 국물에 부지런히 밥을 말아먹은 아이들은 굵은소금 한입 물고 벅벅 양치질을 한다. 학교 가는 길에 먹으라며 엄마들이 손에 들려준 삶은 콩이나 수수 알이 바쁘게 아이들 입으로 들어간다.


감은 머리를 말릴 사이도 없이 툭툭 털고 나서면 바람이 달려들어 시원하게 말려준다. 한겨울에 달려드는 바람은 말리기는커녕 머리끝에 고드름을 매달기도 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 미호천으로 걸어가는 학생들 걸음 사이로 바람이 스친다. 중학교 3년 내내 갈고닦은 걷기의 내공에 어른들도 혀를 내두른다.


미호천에서 청주까지 가려며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한번 버스를 놓치면 지각을 면하기가 어려워 방향이 다른 버스를 타고 청주 시내에서 갈아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학생들은, 이미 꽉 찬 버스 안으로 지그재그로 사선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구겨 넣고 심지어 버스 발판 위까지 점령해 버린다.


‘탕탕’ 버스 몸통을 손으로 치며 ‘오라 잇~~!’을 외치는 버스 안내양, 닫히지 않는 버스 문을 양손으로 잡고 필사적으로 학생들을 밀어 넣는다. 터질 듯 부푼 버스는 흔들 한번 몸을 털고 청주를 향해 달린다.


새벽도 아닌 밤중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해야 하는 여고생이나 남고생들은 물론 엄마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만 해도 두 시간 반이 넘는다.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이 등하교로 하루 네댓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아깝기도 하고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되었다.


걷기 공력을 펼치던 길 위의 학생들이 하나, 둘 청주로 떠났다. 자취 생활을 시작한 거다. 자취 생활 비용도 만만치 않은지라 대부분 둘셋씩 짝을 지어 비용분담을 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내게 자취 생활은 먼 이야기였고, 자취 생활하는 친구들 집에서 가끔 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진천에서 청주로 유학(?)을 온 친구와 절친이 되었다.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하던 친구는 학교가 파하면 자취 집에 가자며 매일 졸랐다.


그 친구는 내 교복이나 스타킹을 빨아서 직접 다려주고 연탄 화덕에 양은 냄비 얹어서 밥을 지어 주었다. 영하 20도 정도 되는 추운 겨울이었나 보다. 자취 집에 가자고 보채는 친구, 머뭇머뭇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걷는 내내 친구의 얼굴이 불편해 보였다. 양은 냄비에 밥을 지어 방으로 들고 들어 온 친구, 나를 바라보며 수줍게 웃는다.

오봉 위엔 달랑 냄비 하나다. 반찬이 하나도 없다며 하얀 쌀밥에 참기름을 넣고 굵은소금으로 밥을 비며 한 쪼가리 남은 김을 부셔서 밥 위에 얹어 준다. 친구도 가난한 자취생이었던 게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밥이다.


여고 2학년이 되면서 다섯 명의 단짝 친구가 만났다. 수업이 끝나고 음악실에 모여든 친구들. 기타를 잘 치던 친구 진희 덕분에 음악실은 늘 우리들의 아지트로 변했다. 음악 선생님과도 각별했다.


가영(재임), 진희(분홍), 선희(써니), 나(혜리), 재순(보라) 등 별칭을 만들어 이름 대신 불렀다. 그중 재임, 재순 친구가 자취를 같이했었고 우린 시간만 나면 자취 집으로 모였다. 두 친구는 제법 집이 부유해서 전기밥솥까지 갖추고 지냈고, 요리까지 잘하는 친구 진희는 마가린과 채소와 버섯을 넣고 밥을 지어 양념간장으로 비벼 주었다. 자취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다 중봉리 다리에서 동네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놓쳐 종자태 아저씨들이 늦은 밤에 집에 데려다준 후 엄마는 내게 자취를 하라셨다. 집안 형편을 아는 난 싫다며 버텼지만 둘이 하면 된다며 친척이자 친구인 누구와 같이 우암동에 방을 얻었다.


그 친구는 공장에 다니며 밤엔 우리 학교 부설 야간 고등학교에 다녔다. 사실 둘이 친한 사이도 아니라 내키지 않았지만, 다행히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우린 교대로 아침, 저녁을 짓고 연탄불을 번갈아 갈았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우리를 야간 학생, 주간 학생으로 구분해 부르셨다. 이따금 방에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보였다. 주인집 아주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간 학생 미안햐. 내가 주간 학생도 의심했네. 우리 양념이 자꾸 사라져서 사실 내가 숨어서 한 이틀 봤거든. 그런데 양념 도둑을 찾았네. 번개탄도 가끔 없어져서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그러나 보다 참다가 도둑 키우는 것 같아서 안 되겠더라고. 아니 조금 갖다 쓴다고 말하면 내가 안주나.”


양념 도둑이 누구인지 말은 안 했지만, 의심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편해졌다. 학교가 파하고 자취 방문을 열던 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술병이 나뒹굴고 코를 골면 잠이 든 모르는 언니들, 이래저래 나는 짐을 싸야 할 것 같았다. 책과 옷가지만 챙겨 성급히 자취방을 나선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친구에게 말 전해 달라니 안 그래도 주간 학생은 집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단다. 자취 집 마당과 구멍가게를 연결하는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데 뒤통수가 간질거린다. 지난번 나를 찾아왔던 ㅊ대학 언니 남자 친구다.


“어디 가요?”


갑자기 존댓말은,


“어딜 가던지요. 뭘 봐요. 비켜욧!”


버스 정류장엔 늦가을 그늘과 초겨울 바람이 마주하고 있다. 자취 생활 고작 석 달 만의 일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들은 빛나도록 아름다운 그리움의 조각들이다.


ㅡ단 하루의 마중에서 발췌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