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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Mar 27. 2022

산수유가 피었네

모로코의 사계절을 여행하고 싶었다



마른바람에 지난가을 쏟아놓은 낙엽이 뒹굴어 날아오르고 겁쟁이 별이는 죽어라 도망친다.  죽 얼굴을 내민 진달래는 봄바람에 볼을 맡기고 주변 친구들을 깨우느라 분주하다.

  


퇴ㆍ고ㆍ작ㆍ업

대서양 연안 풍경

2018년 1월에 13일간, 2019년 7월에 17일간 모로코 여행을 다녀왔다. 모로코의 사계절을 여행한 후 여행 에세이를 출간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2020년 2월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고 전 세계를 강타했다. 2020년 4월 예약된 카사블랑카행 항공권을 취소했다.  많은 사람들 칩거 아닌 칩거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다 결국 두 계절 이기만 쓰게 되었고, 세 번의 퇴고를 마치고 모 출판사에 투고를 했다. 물론 앞으로 열 번 이상 퇴고를 해야 할 테지만, 밀린 숙제 일부를 마친 것 같아 일단 속은 후련했다.


수필집을 출간할 때는 운 좋게도 두 번 다 출판사 대표님이 찾아와 출간을 권유했지만, 여행 에세이는 어찌 될지 나도 알 수가 없다. SNS 활동도 소극적인 데다 인스타도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 인지도 없는 내가, 앞으로 몇 번의 진통을 겪게 될지, 아니 어쩌면 출간이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투고의 결과와 상관없이 마음은 가볍다.


몇 년 전만 해도 한두 시간 눈 붙이고,  아니 때론 밤을 새우고 출근해도 정신이 또렷해 두권다 삼 개월 만에 출간했는데,  몇 년의 나이를 얹은 지금은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기 일쑤다.


더구나 원수 같은 코시국이라 집콕에 길들여지면서 몸은 게을러지고, 능률오르지 않아 이와 함께 용한 카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 여행지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정작 퇴고는 최근에 다녀온 두 카페에서 몰아서 할 수 있었다. 



카페 다루지

카페 다루지 내부모습(예쁜 카페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

강화도에 있는 카페 '다루지'로 가는 길은 너무나 예뻤다. 논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시끄러운 세상의  잡음은 사라진다. 뒷산에 몸을 기대고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을 무심히 바라보는 카페는 알함브라 궁전을 닮았다.  꺅!  저절로 탄성이 터지는 카페의 아름다움에 일단 반하고 나면  눈을 감는 고요와 화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바깥경치가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에 샤랄라 하얀 커튼이 햇살을 흡수하고 남은 여분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개냥이 살구는 천연덕스럽게 그 테이블을 차지하고 누워, 치명적 애교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별이는 내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살구를 바라보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나는 나의 내면 깊 빠져 들어간다. 햇살이 서편을 기웃거릴 즈음 테이블 위  커피잔 세 개가  란하,  원고는 볼펜 자국으로 새까맣게 그을려있다.




RIVER LANE

리버레인 간판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청평호를 따라 이어지는 호젓하다 못해 조금 무서운(^^) 길을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건물  각진 끝에 햇살이 부딪혀 사방으로 부서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RIVER LANE 간판을 확인하고  3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끝장의 진수란 게 무엇인지 금방 알게 된다. 친절한 직원들 태도에 마음의 온도도 올라가고,  통유리 너머 반짝이는 아름다운 윤슬에 남모를 설렘도 추가된다.  


각양각맛의 진열된 빵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하는 재미도 꽤 괜찮다. 다 먹어보고 싶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크림을 잔뜩 먹은 딸기 크로와상을 주문해 반려견 존 1층으로 내려온다.

나는 사실 이 카페에서 반려견 존이 제일 마음에 든다. 실내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과, 하얀 벽에 걸린 그림, 그리고 북카페처럼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도 있고, 바닥에 깔린 카펫도 맘에 든다. 몰입도 잘되어 조용히 작업하기엔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피도 빵도 정말 맛있다.

경기도 둘레길 중 일부ㅡ산책로가 참 예쁘다


호수 주변에 둘레길도 있어 중간중간 산책도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너무 좋아서 두 번째 갔을 때는 외부를 차단하는 유리문을 모두 오픈하는 바람에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덕분에 산책로에 캠핑용 의자를 펴고 앉아,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내어주고, 윤슬에는 눈을 내어주고, 햇살에 온몸을 맡긴 채 느긋하게 퇴고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피와 빵 가격이 조금 세지만 뷰와 산책과 반려견 동반을 감안하면 오히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

전망대에서 바람맞는 별

살랑 봄바람에 기우는 마음을 집안에 붙들어 앉히고 마음먹고 투고를 했다. 오랜만에 맡는 숲 향기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 있는 독소를 제거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별이는 나를 끌고 산책시키느라 혀가 쏙 빠졌다.



'고생했다. 우리 별!'

'어머나! 산수유가 피었네.'


관악산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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