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몇 년 차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이유

그러는 당신은 몇 년차세요?

by 감정 쓰는 직장인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직장이다.
그런데도 이직을 거듭할수록, 인간에 대한 실망은 깊어지기만 한다.

수많은 유형의 돌아이들을 겪고 나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상식을 벗어난 인간 군상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피할 틈도 없이, 일단은 맞아야 한다.


오늘은 회사가 내부 전자결재 체계를 정비해가는 과정에서 내가 올린 한 건의 기안문서가 세 번이나 반려됐다.

팀장에게 기존 승인 문서를 전달받아 그대로 참고해 올렸는데도 그랬다.
처음 두 번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수정해서 다시 올렸다.


그런데 세 번째 반려는 좀 달랐다.

최종 상위 결재자가 내게 직접 메신저를 보내왔다.
“기안에 부족한 내용이 있으니 반려하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해당 항목이 규정에 없어서 몰랐다고 설명했고, 그 내용을 비고란에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 원칙인데 왜 그걸 모르죠?”
“그럼 모든 비고에 근거 첨부하라고 규정 개정할까요?”
“민연님, 직장경력이 얼마나 되죠?”
“따지려면 경영지원팀에 따지세요.”
화면 캡처 2025-08-05 174146.jpg 메신저 대화 캡쳐본 일부 각색 버전

잠시 뒤, 대화 내용을 캡처하려던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직장경력이 얼마나 되죠?”는 삭제되어 있었고,
경영지원팀에 따지세요”는 “경영지원팀에 요청하세요”로 수정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겐 그런 말투와 뉘앙스가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나는 그냥 더 나은 기준을 공유하자는 의도로 요청했을 뿐인데, 돌아온 건 냉소와 비아냥이었다.


그날 이후로 마음은 더 닫혔다.
하려던 말도 삼키게 됐다.
일 자체는 좋아하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될수록 혼자 상처만 깊어졌다.


그 때 깨달았다.
직장생활을 오래 버틴다는 건,
결국 ‘다른 하나의 자아’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민한 나는 그렇게 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직장이라는 환경에 맞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