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감정을 냉동고에 얼려서 보관하는 상상. 행복이 필요할 때 행복을 해동하고, 용기가 필요할 때 용기를 꺼내 쓰는 상상. 내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도 얼려서 보관해 주고 싶다. 내게 부탁한다면 말이다.
“내 슬픔을 보관해 줘. 지금은 감당하기 힘들어.”
“내 분노를 얼려줘. 지금 폭발하면 저 사람을 잃을지도 몰라.”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냉동고가 고장 나고, 얼린 감정들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며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그러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거리의 사람들은 갑자기 웃거나 울고, 이유 없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 감정의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녹아내린 감정에 휩쓸려버리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며 냉동고에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감정들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퍼져나간다. 오래전 얼려두었던 슬픔에 주저앉는 사람, 분노에 휩싸여 소리치는 사람, 기쁨이 차올라 낯선 이를 끌어안는 사람. 세상은 혼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풍경이 된다.
“나중에 꺼내면 되니까 굳이 지금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감정을 즉각적으로 마주하는 것이 버거운 걸까? 아니면 감정이 통제 불가능하다고 느껴서일까?
나는 계속해서 ‘만약’이라는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낸다. ‘사람들끼리 감정을 교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내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상상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상상력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냉동해서 보관하는 상상은 결국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나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미루기보다 제때 흘려보내는 방법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상한 감정은 어디에 버려야 할까요?
서운했던 감정, 쌓아두었던 분노, 충분히 기뻐하지 못했던 순간들. 이런 감정들을 제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쌓아두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훨씬 강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예전에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소홀히 해서 섭섭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바로 솔직하게 털어놨다면 오해를 풀고 예전처럼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마음속에 넣어두었고,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곪아버렸다. 나중엔 서운함을 넘어 ‘저 사람은 원래 나를 저렇게 대하는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충분히 기뻐하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꺼내려 해도 생생한 감정은 사라지고 ‘그때 참 좋았지.’라는 건조한 회상이 될 뿐이다. 감정은 제때 소비하지 못하면 본래의 감칠맛을 잃어버리고, 한때는 소중했던 감정들도 너무 오래 방치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분노도 그렇다. 금방 해소했더라면 단순한 짜증으로 끝났을 감정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더 큰 폭발로 이어진다. 가끔은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지금의 감정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묵혀온 감정이 섞여서 더 커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러니 감정도 꺼내어 정리해야 한다. 기쁠 땐 충분히 기뻐하고, 슬플 땐 충분히 슬퍼하고, 화날 땐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해야 한다. 감정을 제때 소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해버려 나중에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게 된다.
오늘부터라도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자. 오랫동안 묵혀둔 감정이 있다면, 이제는 꺼내어 다뤄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상하기 전에, 본래의 의미를 잃기 전에, 적절한 시기에 충분히 느끼고 흘려보내야 한다.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기를 쓰거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감정을 예술이나 명상을 통해 풀어내는 것도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것이다. 감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