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에서 뜨랑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나의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순조롭던 첫 시작과는 달리 다양한 변수가 생겨났다. 여행이란 늘 그렇듯.
사실 나는 여행을 갈 때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못된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 가득한 숙제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매번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뜨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바로 배를 타고 꼬묵 섬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배편은 마감된 상태였다. 출발 전 미리 배 시간을 알아봤어야 하는 문제였지만 내 성향이 쉽게 고쳐질 것 같진 않다.
어쩔 수 없이 크게 볼 것 없다고 생각한(착각한) 태국 남부의 시골 마을 뜨랑에서 1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숙소는 배편 예약을 도와준 여행사에게 추천 받은 숙소로 주저 없이 정했다.
작은 일에 신경쓰고 싶지 않았고 그저 짐을 풀고 좀 쉬다가 뜨랑이란 곳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간단히 짐을 풀고 뜨랑을 둘러보러 나왔는데, 왠걸. 뜨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제법 규모있는 도시였다.
마침 시내 역광장쪽에선 커다란 야시장이 열리고 있던 참이라 볼거리도 풍성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너무 많았다.
향기에 관한 물품, 공산품, 먹거리 등등 부스 하나 하나 찬찬히 둘러보는 데만 1-2시간이 소요됐다.
먹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가장 컸는데, 어린 아이들이 각 부스마다 부모님을 도와 일하는 것이 참 기특해보였다.
간단히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러 나섰다.
당연히 난 숙소에서 팜플렛을 보고 마음에 드는 마사지 숍을 구해, 연락을 취했다.
특이한 점이 아주머니 마사지사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 앞까지 날 픽업하고 다시 내려주었다는 점이다.
처음 만난 아주머니의 옷깃을 잡고 마치 드라이브를 떠나듯 오토바이를 타고 한 15분 여 정도를 달려 마사지 숍에 도착했다.
이 시골 마을인 뜨랑에서 나는 인생 마사지사를 만났다. 그동안 생활 속 뭉쳐 있던 부위나 여독을 어찌나 잘 풀어주는지 신음 소리와 감탄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마사지를 받아 보았지만, 그 아주머니의 손맛을 따라가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정도니까.
그 다음날 나의 몸은 온통 피멍이 든 채였지만, 내 몸은 아주 개운하고 가뿐해졌다.
우연한 경험도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뜨랑에 우연찮게 하루를 머물게 되었을 때, 우기라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날이 많았다.
숙소의 테라스에 앉아 비오는 것을 바라보며 청명하게 비치는 유리병 안에 담긴 물과 함께
추로스 비슷한 튀긴 태국 간식 빠떵꼬를 먹었다.
밀가루 튀긴 것을 달콤한 연유에 찍어 먹는 건데 생각 외로 무척 맛있어서 다음날 시장에 나가 또 사먹을 정도였다.
뜨랑의 낮과 밤의 얼굴은 무척 달랐다.
시끌벅적한 시장이 종료되고 하나 둘 씩 거리에 인적이 없어지고 밤이 되면 사람 몸집 만큼 큰 들개들이 무리지어 다녔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무리지은 개들이 짖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편의점 조차도 갈수 없어서 밤에는 거의 방 안에 갇혀 있다시피 했다.
호텔 방 테라스에만 종일 앉아 있는데 자연스레 그 주변 풍경에 관심이 갔다.
갑자기 내 호텔방(건물 꼭대기 층이였다) 근처에 사는 듯한 어미 고양이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꼬물꼬물한 새끼 고양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두 고양이의 집사인 나는 집에 두고온 아이들이 생각나 결국 다음날 태국 반려동물 판매점에 들러
고양이 참치 팩을 사서 몰래 그릇에 담아 테라스 문 앞에 슬쩍 놔두었다.
끝내 이들이 먹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 서둘러 숙소를 나와야 했지만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뜨랑에서 꼬묵으로 가는 배편까지 가기 위해 이동하는 날이다.
사실 첫번 째날 방콕에서의 몇시간을 제외하고는 뜨랑 여행은 순조롭지가 않았다.
계획에 없던 1박, 그리고 겨우 잡아 탄 꼬묵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내 가방이 배 밑에 침수해
여권이 홀랑 젖어 버렸다.
이렇게 훼손된 여권은 다음 여행에서 입국할 때마다 제약을 받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일으키곤 했다.
역시 모든 일은 인과응보因果應報 인 것인가.
우여 곡절 끝에 꼬묵Ko Muk 섬에 도착했다.
딱 예상했던 대로 아무것도 없는 시골 섬 마을이다.
배 선착장에서 미리 예약해둔 실바라이 비치 리조트 Sivalai Beach Resort로 이동하기 위해 자전거 택시인 뚝뚝Tuk Tuk을 이용했다. 인도인 할아버지가 비를 홀딱 맞은 채로 배 선착장에 온 사람을 미리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분 택시를 타기로 한 것이다.
내가 여행을 위해 최소한으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항공권과 숙소다.
실바라이 비치 리조트Silvarai Beach Resort 는 리조트 내 독립된 해변가가 있어서 이곳을 골랐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아침, 저녁으로 고요한 파도 소리를 들을수 있다는 점.
파도 소리를 들으며 깨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
'여기 오길 참 잘했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바보처럼 외로워했다.
이곳에 머물며 예전에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회상하기도 했고,새로운 시작을 위한 생각도 간간이 했고, 시간이 많이 있으니 평소 바쁘단 핑계로 뒤로 미뤄뒀던 일을 더 많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다음 날은 방콕으로 떠난다.
아쉽기도 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 좋기도 하고 내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늘 그렇듯.
2017.05.27~2017.06.01 Ko-muk, Thailand
Film camera, Rollei 35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