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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04. 2019

다람쥐 식탁

일관된 경험이 주는 즐거움

가게 앞에 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메뉴를 주문하고, 밥을 먹고 나올 때까지의 일련의 경험 전체가 통일된 느낌을 주는 식당들이 있다. 그런 식당들의 공통점은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 음식과 주인장의 마음씨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꿰뚫는 하나의 커다란 콘셉트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콘셉트는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고약하게도 식당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손님은 좋았던 경험만 기억하고, 식당의 장점만 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주 사소하게 어긋난 디테일 하나에도 본인이 느꼈던 경험의 즐거움을 산산이 부숴버릴 만반의 준비를 하며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식당이 음식을 포함해 외적인 부분까지 통틀어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일관된 콘셉트와 경험은 중요하지만 갖고 가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다.

그런 면에서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다람쥐 식탁은, 일관된 콘셉트의 경험이 손님에게 어떻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듯한 식당이다.


손님은 다람쥐 식탁 앞의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비치는 소박하고 조용해 보이는 식당을 보며 본인이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한다. 자그마해 잘 보이지도 않는 나무 간판과 가게 문 위로 살며시 내려오는 귀엽고 자그마한 천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식당의 분위기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마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영화 <카모메 식당>의 사장 사치에가 맞아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향긋하지만 과하지 않은 음식 냄새와 함께 사장님과 직원이 조용하게 인사하며 손님을 맞이한다. 과도한 친절이 아니라서 부담스럽지 않고 소담스러운 첫인상이다. 자리를 안내받고 앉으면, 귀엽게 그려진 메뉴판이 손님 앞에 놓인다. 몸에 와 닿는 부드러운 녹색의 벨벳 의자가 주는 촉감이 좋다. ‘다람쥐 쇼쿠지’라는, 조금 독특해 보이지만 누가 봐도 이 가게의 대표 메뉴일 것 같은 이름의 메뉴와 정갈한 ‘일본식 가정식’ 메뉴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함께 온 일행과 나는 직원에게 다람쥐 쇼쿠지와 메인 한 개, 사이드와 음료가 나오는 2인 세트 메뉴를 부탁했다.




주문이 들어가자 전면에 펼쳐진 오픈형 키친에서 요리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일본식 음식을 파는 식당들의 특징인 오픈 키친은 손님들에게 신뢰라는 아주 중요한 인상을 남긴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오더가 들어가자마자 분주히 만들어지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경험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가게를 둘러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가게 벽에 걸린 그림들이다. 식당 주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작가 신유림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라고 한다. 너무 맘에 들어 한 점 정도 사고 싶었으나 가격에 좌절하고 자리로 돌아가야했다. 다람쥐 식탁에는 그림뿐 아니라 일본간장이나 조미료, 나무로 된 식기, 빈티지한 유리컵 등도 판매하고 있었다.


식당 안을 큼직하게 돌아보며 기웃거리다가, 자리에 앉아 가게를 구석구석 뜯어봤다. 꼭 한글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일본어가 적힌 인테리어 소품들을 활용한 모습에서도 사장님의 디테일한 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을 신나게 구경하고 있으니 어느덧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다람쥐 쇼쿠지와 치킨 크림 카레, 그리고 사이드메뉴로 고른 감자 새우 고로케다.

쇼쿠지는 ‘식사’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다. 풀어보자면 ‘다람쥐 식사’ 정도의 뜻을 가진 귀여운 메뉴인 셈. 푸짐하게 깔린 채소 위에 닭다리 살로 만든 일본식 닭튀김인 가라아게와 단호박, 고구마, 연근 등이 소스와 함께 버무려져 나온다. 수제 특제 소스라고 하는 옅은 갈색의 소스는 간장치킨에 올려진 소스 맛이 살짝 난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짠맛이 상당해서 이 메뉴 하나만 먹는다면 조금 물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메뉴 안에 구성된 튀김들의 궁합이 좋아 소스가 굳이 없어도 채소와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소스가 조금 적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치킨 크림 카레는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본식 크림 카레의 맛이다. 카레의 향이 강하지 않고 크림이 들어가 부드럽게 넘길 수 있지만, 살짝 느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다.

전체적으로 음식의 양은 상당히 많았다. 2인 세트라고는 하지만 적게 먹는 사람들이 간다면 3인이 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양이었다. 물론 3인이 가서 2인 세트메뉴를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메뉴판에 쓰여있긴 하다. 메인 메뉴들의 가격을 생각해본다면(다람쥐 쇼쿠지 단품은 16,000원, 치킨 크림 카레 단품 12,000원이다)아주 많은 양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모자라다고 느낄 양은 아니다.

새우 감자 고로케는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고로케 맛이다. 부드러우면서 바삭한 식감의 고로케는 메인요리를 먹다가 물릴 때쯤 곁들여 먹기 괜찮았다.

전반적으로 음식들은 ‘아주 맛있다’ 라고는 할 수 없으나 독특한 분위기와 인테리어와 함께 즐기기엔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어떤 장소에서 어떤 분위기로 먹느냐에 따라 맛의 경험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다람쥐 식탁에서는 손님들에게 일본 어딘가의 식당에 살짝 들어온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제주에서 일본을 느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만, ‘일본 음식’이라는 국적에 주목하기 보다는 일관된 콘셉트가 주는 경험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충분한 식당이다. 사랑스럽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식당이었다.


* 다람쥐 식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익새 양과점’이라는 빵집이 있다. 밀크티와 파운드케이크를 팔고 있으니 디저트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익새 양과점은 아주 작은 공간에서 주문만 가능하므로 안에서 먹을 수는 없다.


https://www.instagram.com/jw_yoon_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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