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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y 22. 2020

우리의 사랑은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가?

<Eternal Sunshine> New York, Montauk

*강력한 스포일러가 글 전체에 가득합니다.


바닷가에 서면 늘 세상의 끝을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기엔 특히 겨울바다가 제격이다. 황량한 겨울바다에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란 무엇일까?'라는 다소 철학적 질문으로까지 이어진다. 거대한 물의 끄트머리에선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세상의 끝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끝이 그러하듯이, 항상 시작과 등을 맞대고 있다. 낮과 밤, 생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끝이 있는 곳에는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는 곳에는 끝이 있다. 그렇다면 바닷가는 과연 세상의 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세상의 시작점일까.


뉴욕 롱아일랜드 끝자락에 위치한 몬탁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다. 둘의 사랑은 바다에서 끝났고, 바다에서 다시 시작했다. 시작과 끝보다는 끝과 시작이라는 서순이 잘 어울리는 이들의 사랑에는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가 희미한 경계를 이루며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그래선지 몬탁 해변은 끝과 시작을 구분할 수 없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더없이 완벽한 비유처럼 보인다.


뉴욕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 아직 채 시차에 적응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몬탁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여행자에게 시간은 늘 부족했고, 몬탁은 숙소가 위치한 브루클린에서 왕복 일곱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그렇게 뉴욕이라는 낯선 도시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나는 출근하는 뉴요커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몬탁으로 향했다. MoMA도 아니고,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아닌 한 겨울의 바닷가라니.

출근하는 뉴요커들 사이에 있으려니, 영화의 초반부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출근길에 오르던 조엘의 모습이 떠올랐다. 출근길을 표현하는 데에는 온 세상의 부정적인 단어를 갖다 써도 모자람이 없다. 가뜩이나 존재만으로도 스트레스인 출근길 아침, 누군가는 조엘의 차 옆을 시원하게 긁어버리기까지 했다. 밸런타인데이의 '로맨틱'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던 그날 아침, 기차를 기다리던 조엘은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반대편 플랫폼으로 달려가서는 몬탁행 열차에 올라탄다.

그냥 하는 생각, 2004년 밸런타인데이.
오늘은 카드 회사가 만든 명절이다. 사람들 기분을 잡치려고.
오늘은 회사를 무단결근하고 몬탁행 열차를 탔다.
이유는 모른다. 난 기분파도 아닌데.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아침 출근길에 조엘과 같은 일탈을 꿈꿔 본 적 있을 테다. 나 역시 그랬다. 매일 아침 한 시간 반씩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던 그 시절, 발 디딜 틈 없는 아침 일곱 시의 소요산행 1호선 열차는 앉아만 있어도 끔찍한 장소였다. 그 지옥 속에 있으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어지곤 했다. 출근만으로도 이미 몸은 녹초가 되어버려서,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자리에 앉아 정신없이 졸다가 내려야 할 역을 한참이나 지나친 적이 있었다. 어디지? 하고 고개를 들어 열차 내의 전광판을 바라보니 이번 역은 청량리라는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청량리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아 x 됐다'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이대로 청량리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먼 곳으로 도망가버릴까... 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생각을 실제로 행동에 옮길 배짱 따위는 없었으므로 나는 팀장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낸 뒤 회사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후에도, 나는 아침 출근길마다 회사를 땡땡이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건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몬탁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출근길에 오른 뉴요커들을 보며 나는 영화 속 조엘을, 그리고 1호선 지하철 안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Mount Vernon East 역에서 몬탁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는 조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 속 조엘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 속 조엘이 열차를 탄 곳은 Mount Vernon East역인데, 이 역은 맨해튼 중심부에서도 한참이나 위로 올라가고, 할렘보다도 외곽에 있는 곳이라 보통의 뉴욕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갈 일이 거의 없을 곳이다. 나 역시 숙소를 브루클린 근처에 잡았던 탓에 몬탁행 열차는 숙소 근처의 Nostrand Av에서 탔고, Mount Vernon East 역은 나중에 조엘의 아파트먼트를 들르기 위해 방문했다.


이날 역에 내려서 열차가 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한참을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기차에서 내린 한 미국인이 내게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움찔해서는 "Excuse me?"라고 했는데, 그녀는 내 안경을 가리키며 안경이 예쁘다는 말을 건넸다. 갑자기 안경 칭찬을 한다고?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좋은 하루 되라는 인사를 나눴지만, 역시 미국인들의 친화력은 엄청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적잖이 당황했다.

아무튼 다시 뉴욕에서의 첫날로 돌아와서, 몬탁행 기차에 오른 나는 사람들이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기차가 몬탁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세 시간 넘게 남아있었다. 영화 속 촬영지를 돌아다닌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이 일곱 번째 영화지만 왼손엔 영화 장면이 담긴 핸드폰을, 오른손엔 커다란 DSLR을 들고 찍는 일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빈자리에 앉은 나는 숙소 근처의 작은 델리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먹었다. 미국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델리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꼭 이런 장소에서 범죄가 일어나곤 해서 선뜻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게다가 막상 슈퍼마켓 정도를 예상하고 들어갔더니 생각했던 물품 구성이 아니었다. 당황한 나는 한참을 둘러보다가 괜히 사지 않아도 될 애꿎은 음료수만 사서 나왔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미국의 델리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자유와 개인의 개성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라서 모든 걸 내가 선택해야 한다. 델리에서 메뉴를 시키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샌드위치 하나를 사려고 하면 빵부터 안에 들어가는 고기의 종류와 굽기, 야채, 소스 등의 거의 모든 것을 내가 직접 골라 주문해야 한다. 가뜩이나 소심해서 한국에서도 서브웨이를 즐겨 가지 않는 내게는 쉽사리 적응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당황하는 동안 옆에서 한 아저씨가 능숙하게 주문하며 주인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부럽게 느껴지던지.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사 온 튜나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으며 LIRR에 앉아 있으니 참 미국스러운 식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샌드위치는 또 얼마나 크던지. 샌드위치를 몇 입 먹고는 다시 잘 싸서 넣어 둔 나는 미리 준비해 왔던 <이터널 선샤인> OST를 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탄 승객들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하긴, 한겨울에 겨울바다를 보러 뉴욕의 동쪽 끝으로 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그건 영화 속 조엘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한겨울의 바닷가로 향하는 미친 짓을 저지른 조엘은 스스로를 어이없어한다. 눈까지 내리는 추운 겨울, 그렇게 조엘은 뭔가에 이끌리듯이 몬탁으로 향했다. 겨울바다로 향하는 기차 안에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잔뜩 긴장한 여행 첫날의 마음이 누그러졌고, 스르르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깬 뒤에도 기차는 한참을 더 달렸다. 뉴욕에 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특색 없이 이어지는 교외 풍경이 질릴 때쯤, 창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기차는 창밖에 바다가 보이고 얼마 안 있어서 몬탁 역에 도착했다. 뉴욕의 롱 아일랜드를 달리는 LIRR(Long Island Rail Road)의 종착역인 몬탁 역에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렸다. 영화 속에서 본 익숙한 기차역이었다.


기차역에서 몬탁 해변까지 가는 거리는 꽤 길었는데, 우버 앱을 켜보니 차를 잡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걸어가는 시간이나 우버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비슷할 것이라 판단한 나는 그대로 쭉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었다. 해변까지 가는 길은 황량했다. 우리나라 국도변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한참을 걸어 마을에 도착했는데, 문을 연 가게가 별로 없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만났던 TACOMBI라는 이름의 식당도 문을 닫은 상태였다. 비수기인 해변가 마을에선 여기저기 보수가 한창이었다. 을씨년스러운 그 풍경이 오히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렸다. 마을은 나중에 해변을 다 본 뒤에 둘러보기로 하고 다시 해변으로 걸어갔다. 곧 익은 나무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 속에 나온 그 데크였다. 데크를 조금만 더 걸어가니 바다가 보였다. 몬탁의 바다였다.

영화 속 두 주인공에게 몬탁 해변은 특별한 장소다. 이 장소는 둘의 사랑이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지만, 둘의 사랑이 끝난 장소이기도 하다.


클레멘타인과 싸운 뒤, 조엘은 그녀와 화해하기 위해 직장으로 찾아가지만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전혀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조엘.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고, 친구들은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를 털어놓는다. 바로 그녀가 기억을 지워주는 LACUNA라는 회사를 통해 자신과의 기억을 전부 지웠다는 것.


영화는 이 얘기를 듣고 분노에 가득 찬 조엘이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미셸 공드리 특유의 익살맞은 연출로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지워지는 기억이 바로 몬탁 해변에서 둘이 처음 만난 기억이다.

Meet me in Montauk


조엘의 기억 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클레멘타인이 그의 귀에 속삭였던 문장은 몬탁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이었다. 이 단순한 문장 하나 때문에 조엘이 뭔가에 이끌리듯 황량한 몬탁의 해변으로 향했던 것. 둘의 사랑이 시작된 장소에서의 기억이,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끝내려 했던 사랑의 마지막 순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 뒤에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자신들의 사랑이 시작된 장소에서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한다는 듯이 다시 만나고, 또다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그야말로 사랑과 운명에 대한 끝없는 예찬으로 보인다. 과연 우리는 끝나버린 사랑 앞에서, 기억을 모두 지운 채 다시 그 사랑을 시작한다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을씨년스럽게 파도가 몰아치는 몬탁 해변을 걸으면서, 나는 왜 미셸 공드리 감독이 황량한 겨울 바다를 둘의 사랑이 시작된 장소로 선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뉴요커들의 여름 휴양지로 잘 알려진 몬탁 해변의 겨울은 단어 그대로 황량 그 자체였다. 모든 관계가 끝나고 기억마저 말끔하게 지워버린 연인들과 여름날 축제의 기억을 파도에 깨끗이 씻어버리기라도 한 듯 서걱거리는 모래사장만 끝없이 펼쳐진 몬탁 해변.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여름날의 축제가 펼쳐지는 장소.


이 둘의 모습은 퍽 닮아있었다.

두 시간을 넘게 겨울 강한 바람이 부는 겨울바다를 헤매고 나니 강한 허기가 몰아닥쳤다. 기차를 타고 브루클린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마을에 들러 가볍게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시간은 오후 세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며 맘에 드는 식당을 찾으려는데,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아서 선택지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바닷바람에 반건조 오징어처럼 몸이 절여진 나는 문을 연 곳 아무 데나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4인 테이블에 혼자 온 여행자인 내가 앉기엔 너무 민폐인 것 같아 평소엔 잘 앉지 않던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내가 음식을 다 먹고 나갈 때까지 식당이 꽤 한산했어서 앉았어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영어로 된 메뉴판을 한참 동안 읽다가, 그래도 미국에 와서 제대로 먹는 첫끼니이니 햄버거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햄버거를 주문하고 몬탁 지역 맥주도 한 잔 주문했다. 피곤했던 탓에 햄버거가 채 나오기도 전에 맥주 한 잔을 다 비웠고, 똑같은 몬탁 맥주로 한 잔을 더 부탁했다.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고 여유가 생긴 나는 식당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안에는 어림짐작으로 보아 바닷사람들처럼 보이는 중, 노년의 백인들이 앉아서 조용히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알 수 없는 숫자가 가득한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는데, 뭔가 복권의 일종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축구가 틀어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맥주만 홀짝거렸다. 미국 하면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느낌의 가게였다. 그제야 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무 데나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간 집 치고는 햄버거 맛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점 역시 햄버거의 본고장 미국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식당을 생각하면 바에 앉아 있던 사장님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웨스턴 영화의 술집 주인으로 나올 것 같은 인상의 그는 동양인 남자 하나가 당당히 걸어 들어와 바에 앉는 것을 보고 1차로 당황하더니, 맥주를 연거푸 세 잔이나 빠르게 비우는 내 모습을 보자 2차로 당황했다. 그는 그런 내가 걱정스러운 듯 괜찮냐고 물어왔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던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대답하면서도 미국에서까지 주정뱅이처럼 보였구나 싶어 괜스레 민망해졌다. 그 질문을 듣고 난 뒤엔 맥주를 더 시키지 않고 나왔지만 사실 물어보지만 않았어도 한 잔 더 하고 가려던 참이었다.


살짝 오른 술기운에 허청허청 걸으며 올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체감속도로 다시 몬탁 역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몬탁 역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왜 영화 속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기차를 전세 내다 시피하며 탔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12월의 한 겨울 몬탁 역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장소였다. 무채색의 겨울 몬탁은 파란 머리에 오렌지 후드를 입은 클레멘타인 같은 여자가 등장한다면 누구라도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영화의 시작부, 조엘은 충동적으로 향한 몬탁 해변에서 파란 머리에 주황색 후드티를 걸친 쾌활한 여자,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조엘. 그는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는 몬탁 역에서 그녀를 다시 발견하고 같은 기차를 타고 가며 대화를 나눈다.

우리 본 적 있나요? '반스 앤 노블'에서 책 사요?
그럼요.
거기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조엘과는 달리 초면부터(사실 진짜 초면은 아니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며 말을 걸어오는 클레멘타인.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그녀가 조엘은 싫지 않다.

영화를 다 보고 다시 이 장면을 보면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 둘은 사실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 뒤 뭔가에 이끌리듯 몬탁 해변으로 온 둘이 재회 아닌 재회를 하는 장면이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상대와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나고 나면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이별의 아픔도 별 것 아닌 술자리 안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이란 정해져 있으며, 인생이 일종의 신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방향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기억이 지워진 연인은 그 사랑을 똑같이 반복하게 될까? 나는 너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우고 나서 다시 한번 너를 만나더라도 전처럼 너에게 빠져들까? 과연 우리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운 후에 다시 만나더라도 전처럼 똑같은 사랑을 할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미셸 공드리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예"라고 대답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두 주인공이 사랑을 시작하고 끝내고, 다시 시작한 그 장소에서 하루 종일 지워진 사랑의 기억에 대한 발자취를 쫓으며 뉴욕에서의 첫 날을 보냈다. 고요했던 몬탁을 뒤로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자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의 분주함이 나를 압도하며 다가왔다. 몬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뉴욕의 느낌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왔다. 이제야 뉴욕에 왔다는 느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녀온 지 한참이 지난 미국 여행의 여행기를 업로드합니다. 글을 세 번 정도 썼다 갈아엎었다를 반복했던 것 같네요. 여전히 이게 최선인가 싶지만,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가 없어서 놓아줍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장소는 몬탁 외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외에도 라라 랜드, 500일의 썸머, 비긴 어게인 등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촬영 장소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부지런히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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