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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r 31. 2021

여행자의 방: 낯설고도 편안한

내 삶에 영감을 주는 공간

여행자의 방: 낯설고도 편안한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빌리브에서 ‘내 삶에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주제의 질문을 해왔다. 나는 자연스레 여행을 떠올렸고, ‘여행자의 방’만큼이나 내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낯선 방에서 머물게 된다. 여행자의 방은 계속된 여행의 자극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편안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쉴 수 있는 공간임과 동시에 계속된 여행의 자극을 한 번 정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행자의 방은 완벽히 낯선 공간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자꾸만 손이 멈칫하게 되는 어색한 가구의 배치라든가, 어쩐지 냉기가 살짝 감도는 듯한 방 안의 낯선 공기는 우리의 신경을 자극한다. 이처럼 낯선 공간에 들어온 우리의 감각은 자극을 통해 새로이 깨어나기도 한다.


특히 오로지 투숙객의 경험을 위해 정교하게 짜여진 호텔에 묵을 때면, 영감은 더 풍부해진다. 호텔에 묵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한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다. 이들은 저마다의 콘셉트와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행지에서 꼭 하루 정도는 무리를 해서라도 호텔에 묵곤 한다. 그중에서도 내게 강렬한 영감을 제공했던 몇 군데의 호텔을 얘기해볼까 한다. 

인천 네스트 호텔


인천에 있는 네스트 호텔은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도 아주 먼 곳으로 떠나왔다는 착각이 들게 하는 곳이다. 공항 옆에 위치한 탓에 호텔로 가는 순간부터 이미 긴 여행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 호텔은 침대가 TV를 향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있다. 이처럼 독특한 방 구조 덕분에 아침이면 방안을 가득 채우는 햇살에 자연스레 잠에서 깬다. 이렇게 눈을 뜨자마자 정면의 커다란 창 밖으로는 햇살이 부서지는 서해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풍경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름답다. 이런 아침 풍경을 침대에 누워 볼 수 있다는 것은 네스트 호텔만이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인천 네스트 호텔


그런가 하면 오히려 너무나도 일상 같은 나머지 비일상처럼 느껴지는 호텔도 있는데, 뉴욕의 에이스 호텔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일반적인 호텔의 로비가 정돈된 웅장함을 통해 투숙객에게 압도감을 준다면, 에이스 호텔의 로비는 ‘내가 카페에 들어왔나?’싶을 정도로 호텔 로비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에이스 호텔의 로비엔 투숙객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일종의 사랑방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때문에 에이스 호텔은 여행자와 생활자가 구분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여행지의 일상을 살아보고 싶어’하는 여행자에게 에이스 호텔이 제공하는 가장 차별화된 경험이 된다. 

뉴욕 에이스 호텔 로비


그러나 호텔이라는 공간이 무조건 독특해야지만 비로소 여행자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할슈타트를 여행할 당시 묵었던 헤리티지 호텔 할슈타트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헤리티지 호텔 할슈타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호텔이었다. 적당히 친절한 종업원들과, 무난하고 깔끔한 방. 딱히 흠잡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칭찬할 만한 숙소도 아니었다. 

헤리티지 호텔 할슈타트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 호텔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묵었던 호텔보다도 가장 멋진 풍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할슈타트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낡아서 군데군데 칠이 조금씩 벗겨진 십자 모양의 창문 너머로는 새하얀 눈이 하염없이, 그리고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커다란 호수 위로 눈이 내리는 풍경은 그야말로 고요함과 평온함 그 자체였어서, 나는 그 풍경을 보며 언젠가는 꼭 다시 이 도시에 들러 몇 달이고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헤리티지 호텔 할슈타트


이처럼 여행자의 방은 그 자체로 영감이 되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일상의 슬픔이 살균된 완벽히 새로운 공간이라는 점에 있다. 


어딜 둘러봐도 삶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말끔한 공간, 공기 중에 섞여 있는 희미한 소독약 냄새. 가지런히 놓인 수건과 빈틈없이 개인 이불이 주는 비일상적 깔끔함에는 역설적인 위로가 존재한다. 여행자의 방은 일상의 상처와 슬픔으로부터 유리된 장소다. 우리는 그 말끔히 살균된 공간 속에서 내 삶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어가기도 한다.

강릉 씨마크 호텔


그래서 나는 지겨우리만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을 때면, 완벽하게 낯선 공간 속에 스스로를 던져 넣는다. 무엇하나 관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낯선 곳에서는 모든 감각이 새롭게 깨어난다. 그 감각은 자극이 되고, 자극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내 삶에 영감을 주는 공간, 그건 바로 여행자의 방이다.


더 많은 공간에 대한 고찰들이 궁금하다면 빌리브 홈페이지에서 만나 보는 것을 권유한다. 더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 중이니 관심이 있으신 독자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다.


※본 포스팅은 신세계건설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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