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大) AI의 시대다
1.
바야흐로 대(大) AI의 시대다. 인터넷 어디를 둘러봐도 AI로 만든 콘텐츠, AI를 잘 활용하는 법, AI 시대에 사라질 직업, AI 수혜주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30몇 년 동안의 내 인생 속에서, 이렇게까지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기술이 또 있었던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담론은 자연스레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혹은 ‘AI에게 대체되지 않을 인간의 영역은 무엇인가’로 옮겨간다. 온라인 상에서든, 오프라인 상에서든.
AI를 탑재한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며 그 세계에 나름 깊이 발을 들였고, 지금도 AI 트렌드를 따라가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망적이게도 AI는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것이며 언젠가는 인간을 상당 부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AI라는 표현 자체도 Artificial Intelligence, 말 그대로 인공지능 아닌가. 인간의 사고 과정을 모사한 전자두뇌가 수면욕도 식욕도, 피로도 없이 1년 365일 성실하고 빠르게 작동한다면, 그것이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리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조금 회의적이다. 물론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그런 변화는 시작되었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먼저 온 미래>에서 장강명 작가는 알파고 이후 인간 최강자의 자리를 내줘야 했던 바둑 기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바둑계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큰 충격에 휩싸였다. 바둑만큼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금의 프로 기사들은 AI의 기보를 분석하고 학습하며, 그 위에서 다시 인간끼리 경쟁한다. 이 책은 그렇게 이미 AI의 우수함이 증명된 영역을 통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AI에게 대체되지 않을 영역. 본질적으로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인간만의 고유함은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완전한 신체와 정신,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추함. 하지만 인간만의 고유성이 고작 '결핍'과 '불완전함'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때면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이 스며든다.
나는 학부 시절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내내 인문학의 언저리에 머물렀다. 인문학이란 인간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인간세계에서 의미있는지를 묻는 학문에 가깝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파생된, 질문의 학문인 셈이다.
그 시절에도 그 전에도 인문학 전공에 대한 쓸모와, 여기서 파생된 취업과 관련된 농담은 있어왔다. 2011년 코난 오브라이언이 한 대학의 졸업 축사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은 고대 그리스로 가서 취업해야 한다"고 농담했을 정도로, 나와 대다수의 인문학 전공자들은 이미 컴퓨터 코딩과, 각종 공학적 지식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가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돈이라는 자원을 벌어다주는 시대에서 자신들의 '쓸모'에 대해 한 번쯤은 먼저 고민해 본 사람들인 셈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조롱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인문학의 효용성은 낡은 담론이 되어버린 듯 하고, 그 자리엔 인터넷과 서점가 등에서 지적 허영심을 위해 소모적으로 소비되어버리는 인문학만이 자리잡았지만, 이런 세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선 아껴두기로 하자.
그럼에도 나는, 어쩌면 인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AI가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야말로 인간의 정체를 탐구하는 사유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문학이 수천 년간 해온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자, 동시에 가장 ‘쓸모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 물론 인문학을 배운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이건 내가 늘상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해 평소에도 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일을 할수록 결국 모든 비즈니스는 결국 인간을 향하며, 인간을 이해하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인간을 향하지 않는 기술을 인간이 개발하는 것이, 무슨 쓸모를 갖고 있을까?
3.
우리는 왜 AI에 대체되는 걸 두려워할까? 자신의 쓸모가 없어져 결국은 밥벌이를 못 할까 봐? 혹은 AI가 결국 쓸모없어진 인간들을 모조리 말살하고 기계들의 세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디스토피아적인 SF 세계가 두려워서? 아마도 그 근원에는 ‘인간의 일이 사라진 세계에서 나는 무엇이 되는가’라는 막연한 공포 때문일 것이다.
1811년, 영국 산업혁명기에 기계 도입으로 일자리를 위협받은 노동자들이 방직기를 파괴하는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흔히 이들을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어떻게든 저항해보려 한 어리석은 노동자들로 기억하지만, 실제로 이 운동은 고도로 숙련된 숙련공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다.
그들은 모든 기계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지 않았다. 기계로 대체되기 전에 생계를 이어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점진적 전환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이를 약속한 공장의 기계는 건드리지 않았다. 심지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기계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어리석은 저항 운동’이라는 단순하고 납작한 언어로만 정리되어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내가 러다이트 운동을 벌여야된다거나, AI기술을 도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야말로 AI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 빠른 세상의 흐름 속에서 잠깐씩은 멈춰서서 그야말로 ‘대 AI의 시대’에 우리들은 어떻게 그 변화를 점진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하다못해 각자 개인들의 생각 정리 정도는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4.
언젠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AI가 쓴 글을 알아보는 법은 ‘지나치게 유려하고 매끈하게 잘 쓴 텍스트’인지 살펴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아직까지는)그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AI가 쓴 글은 여전히 완벽히 유려하지도, 완성도가 높지도 않다. 부사와 단어 선택은 여전히 아쉽고, 내가 손을 보지 않으면 도저히 그대로 쓸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인 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AI가 나보다, 위대한 인간 작가보다, 인류 그 누구보다도 더 유려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쓰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텍스트와 글쓰기로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시대가 온다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진다. 지금 이 글도 과연 AI로 쓰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는 할까?
미래는, 역사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