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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란시스 프로젝트 Dec 11. 2020

회상해보는 나의 역사.

종로 일대를 걸으며 회상해본 소소한 나의 역사. 


교보문고 앞. 



오전에 미팅이 있어 출근하자마자 얼굴만 비추고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새문안로에 있는 큰 빌딩은  두 번째 방문이라고 지난번보다 겁을 덜 줬다.

덕분에 그새 여유가 생겨, 건너편의 서울 역사박물관을 한번 곁눈질하기도  했다.  

머릿속에 처음 카메라를 잡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미팅 시간보다 대기시간이 더 길었다.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는 거래처 담당자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업무상 만난 누군가가 미안하다고 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늘 죄송한 일을 만드는 건 내 쪽이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어도 사과의 말을 좀처럼 듣기 힘든 사람이었다.


기대 안 했지만 역시 가벼운 미팅이었고, 나오자마자 길을 건너며 휘파람을 불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선 역시 노리플라이의 그대 걷던 길이다.

휘파람을 부는 나도 오랜만이었고, 그 노래도, 이 거리도 모두 오랜만이었다.


문득 2010년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의 절반을 적금 들어보겠다고 

점심시간을 쪼개 바쁘게 뛰어다니던 내자동 건너편 동네였다.

좀 더 내려온 세종문화회관 뒤쪽 저잣거리에선 

호주로 연수를 떠나는 언니와 국밥을 먹으며 괜히 울었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돈 문제였다.

다행히 그 적금은 고스란히 다음 학기 등록금에 쓰였다.


멀리서 노란 천막이 보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 숙이며 광장에 다다랐다.

광장의 의미를 묻는, 대학시절 들었던  '프레시맨 인문 교양 세미나'에서

멍청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문득 떠올랐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가자 미친 세상 덕분에, 광장의 의미를 스스로 묻게 되었지만.


어쨌든, 지나자 교보 앞이었다.

아침마다 일일 특급으로 얼음을 매단 치즈를 배송하던, 광화문 우체국이 보였다.


그리고 교보에 잠깐 들르기로 했다. 큰 소나무로 만든 책상을 구경할 요량이었다.

언젠가 이렇게 외근 중 급한 마음으로 교보에 들러 급히 소설 두 권을 샀던 기억이 났다.

한 권은 기억나지 않고, 나머지 한 권은 서강대학교 국문과 출신이라는 작가의 책으로, 아직도 읽히지 않은 채 책꽂이에 꽂혀있다.


내가 어릴 적엔 교보 입구에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액자가 걸려있고, 우리나라 부분은 비어있었다.

엄마한테 꼭 여기에 내 얼굴을 걸어보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나중에 그 에피소드를 잘 버무려 교보문고에 자소서를 넣어봤었지만, 

나 같은 주제는 어림없었던 일화도 기억났다.


어쨌든 교보를 한 바퀴 돌아 마스킹 테이프라는 걸 충동구매하고 서가를 구경했다.

오래간만에 간 교보는 참 공들여 가꾼 문화공간이 되어 있었다. 

진심으로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 했다.


복귀하기 전에 배를 채우고 돌아가려고 보신각 쪽으로 발을 돌렸다.


첫 카메라를 산 르메이에르, 가짜 피맛골, 그리고 농민신문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철거하고 만들어놓은 그랑 서울, 사라져 버린 토마틸로... 606번 버스정류장.. 스쳐 지나며-


여기저기 부유하다가 대충 분식으로 배를 채우고 택시를 잡아탔다.

문득 어느 하나 여전한 것이 없는 게 괜히 원망스러웠다.



* 2016년 1월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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