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새로운 편집 노트북을 샀다. 친구는 내 노트북을 보며, “그래, 니가 맥 안 살 줄 알았어. 너는 윈도우가 어울려. 딱 얼굴에 윈도우 상이라고 써 있어” 라고 말했다. 무례하고 웃긴 말이라 생각했다. 2개월 동안 맥과 일반 노트북 사이를 고민하던 내 곁에서, 시종일관 맥을 사라고 강조했던 친구는 결국 내가 일반 노트북 결제한 것을 보며, 반복되는 구질구질한 연애 패턴을 꿰뚫고 있는 용한 타로카드 아줌마처럼 이미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이 노트북 사면 한글과 컴퓨터도 공짜로 준다고 했다고!” 워드로 원고를 쓰고 있던 친구는 나를 경멸하듯 쳐다봤다.
사실, 20대 내내, 맥에 대한 이상한 동경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맥을 쓰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동경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나른한 평일 오전, 향기로운 핸드드립 커피 향이 솔솔 풍기는 식물과 화이트 오크 풍의 인테리어의 카페 모퉁이에는 수수하게 걸쳤지만, 명품을 휘감은 사람보다 훨씬 더 담백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맥을 쓰고 있었다. (맹세코 윈도우는 없었다)
그들은 회색 티 쪼가리 하나를 입어도 뭔가 태가 났다. 카페 앞에 세워진 그들의 픽시 자전거는, 포르쉐를 타는 사람보다 덜 세속적이면서 자존감이 높아 보이고 심지어 친환경적이어 보이기까지 했다. 클라이언트의 말 한마디에도 하루의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나와 반대로, 맥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은 작은 것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적이며 마치 도도한 고양이처럼 오히려 클라이언트를 전전긍긍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영상은 또 얼마나 세련되고, 간결하며, 매력적일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이 있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획득해야 하는 작업자의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의 성향을 집요하게 분석하듯 맥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취향을 수집했다.
트럭 덮개천과 산업 폐기물을 소재로 만든 가방 체크, 라이프스타일 메거진 잡지 체크, 핸드드립 커피 체크, 디자인 숍 체크, 픽시 자전거 체크, 연희동 카페 체크, 유기농 채소 체크, 베를린, 포틀랜드 체크, 홈데코 체크, 간결한 옷차림 체크, 남들의 말에 무관심한 태도 체크, 체크 !
이제 데이터를 수집했으니,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수집한 첫 번째 레퍼런스인 1993년 취리히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마커스(Marcus)와 다니엘(Daniel)이 만든 트럭의 타풀린 (?) 천을 리사이클링 해 기능성이 뛰어난 믿음직스러운 가방을 사러 갔다. 매장은 비슷한 스타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로 바글바글했다. 그 인파를 헤치고 초록색 배낭 하나를 꺼내어 어깨에 둘렀다. 그 가방을 멘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을 뿐인데, 왠지 취향이 확고하고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며 남들에게 듬뿍 관심을 받지만 그 시선에 무관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가방에 달린 가격표를 확인했다.
‘아니, 쓰레기 재활용해서 만든 게 뭐 이렇게 비싸 !’
나를 제외한 매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달치 월세 가격이 찍혀 있는 가방을 매보며 '음 ~ 그래 가방 가격이 원래 정도는 하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일층 명품관에서 파는 명품 백보단, 훨씬 싼 가격이었지만 집에 있는 잔스포츠 가방 10개는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 매장을 나왔다. 두 번째 체크리스트인 티 쪼가리 하나를 걸쳐도 멋이 나보이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디자인숍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티셔츠를 입어보기 전에 가격표부터 확인했다. 촬영 단체복으로 받았던 10개도 넘게 있는 면 티와 비슷해보이는 무지티가 10만원이 넘었다. 나는 티셔츠를 빠르게 행거에 다시 걸고, 그 옆 인테리어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아이보리색 이불을 보자 자취방에 있는 엄마가 사준 현란한 장미 모양 이불보가 생각났다. 아무래도 맥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은 이런 촌스러운 이불을 덮지 않겠지. 하지만 분위기만을 위해 그 도톰하고 촌스럽고 멀쩡한 이불보를 버리고 새 이불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 속에서 새롭게 안 사실이 있었다. 나는 가성비 따지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가성비를 따지는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세련된 사람이 될 수 없겠지. 내 소비패턴에는 늘 타협과 구차한 느낌이 풍길 테니까.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탑승했다. 그 가방을, 그 티셔츠를, 그 자전거를, 그 이불을 샀다면 나는 조금 더 취향이 확고한 세련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과 함께, 오늘 돌아다녔던 매장에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커피숍에서 맥으로 뭔가를 작업하고 있었던 사람과 비슷한 가방을 메고,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자전거를 타고 심지어 비슷한 무덤덤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 그러고 보니 라이프스타일 메거진에 등장했던 사람들도 다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노브렌드 삼만원짜리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잔스포츠를 메고, 공짜 촬영 단체 티를 당당하게 외출복으로 입고 다니고, 분홍색 장미 모양 이불 덮고 자는 내가 제일 확고한 취향을 가진 거 아닌가? 아니다. 이건 가난한 찌질이의 합리화이다. 여전히 맥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더 멋져 보인다.
사실 구차해 보여서 말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거짓말을 한 게 있다. 1993년 취리히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마커스(Marcus)와 다니엘(Daniel)이 만든 트럭의 타풀린 (?) 천을 리사이클링 해 만든 가방 매장에 다시 들어가 가장 저렴한 오만원짜리 카드지갑 하나를 샀다. 취리히도 맘에 들고 마커스랑 다니엘도 맘에 들고 (뭔지 모르겠지만) 타풀린 천이라는 단어도 다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산 카드 지갑을 3년째 쓰고 있다. 아직도 밥을 계산할 때마다, 가방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활용했을 것 같은 크기의 작디작은 카드 지갑을 꺼내면 왠지 힙한 카페에서 맥으로 작업하는 느낌을 가진 세련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우쭐해진다.
제일 싼 카드 지갑에 이 정도의 만족감이라니. 역시! 가방까지 살 필요는 없었어.
나는 지금 얼마 전에 도착한 LG 노트북에 윈도우를 깔고 한글과 컴퓨터로 이 원고를 쓰고 있다. 뭘 클릭할 때마다 프로그램을 자꾸 설치하라고 메시지가 뜨는데, 오직 성실한 노력만으로 나와 친해지려 하는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처럼 너무 구구절절하고 촌스럽고 번거롭다. 역시 다음 컴퓨터는 꼭 간결하고 매력적인 맥으로 사야지.
(가만....이 생각은 5년 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