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북풍한설을 맞고, 거문도 여행을 떠나다.
12월의 북풍한설 이 몰아치는 날에 거문도를 방문했습니다.
전남 고흥군 녹동항에서 항구앞 이름만 호텔?모텔에서 1박을 하고 아침일찍 퍼스트퀸호 를 타고 초도를 경유하여, 거문도 백도를 다녀왔습니다.
백도에서 도착하자마자 초고속쾌속유람선 환승해서 다시 탐험의 바다로 진격하였습니다.
백도행 통통배 유람선 내로 파도가 그냥 마구 마구 들이닥쳐도 마냥 신나는 백도탐험대!의 백도 기행~~~
역사탐방스토리텔링 이야기속으로
귀국의 제주도 동북쪽으로 100여 리 떨어진 곳에 거마도(巨磨島)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문도입니다. 바다 가운데 외로이 솟아 있으며 서양 이름으로는 해밀톤(哈米敦)섬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영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阿富汗) 경계 문제를 가지고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군함을 블라디보스토크(海蔘葳)에 집결시키므로 영국인들은 그들이 남하하여 홍콩을 침략할까 봐 거마도에 군사와 군함을 주둔시키고 그들이 오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 섬은 조선의 영토에 속한 것으로서 영국 사신이 귀국과 토의하여 수군(水軍)을 주둔시킬 장소로 빌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시 빌려서 군함을 정박하였다가 예정된 날짜에 나간다면 혹시 참작해서 융통해줄 수도 있겠지만 만일 오랫동안 빌리고 돌아가지 않으면서 사거나 조차지(租借地)로 만들려고 한다면 단연코 경솔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구라파(歐羅巴) 사람들이 남양(南洋)을 잠식할 때에도 처음에는 다 비싼 값으로 땅을 빌렸다가 뒤에 그만 빼앗아서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거마도는 듣건대 황폐한 섬이라 하니, 귀국에서 혹시 그다지 아깝지 않은 땅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홍콩 지구 같은 것도 영국인들이 차지하기 전에는 남방 종족 몇 집이 거기에 초가집을 짓고 산 데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점차 경영하여 중요한 진영(鎭營)이 되었고 남양의 관문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섬은 동해의 요충지로서 중국 위해(威海)의 지부(之罘), 일본의 대마도(對馬島), 귀국의 부산(釜山)과 다 거리가 매우 가깝습니다. 영국인들이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어찌 그들의 생각이 따로 있지 않을 줄을 알겠습니까?
이토 히로부미는 이전에 나와의 담화에서 영국이 만약 오랫동안 거마도를 차지한다면 일본에 더욱 불리하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귀국이 영국에 빌려준다면 반드시 일본인들의 추궁을 받을 것이며, 러시아도 곧 징벌하기 위한 군사를 출동시키지는 않더라도 역시 부근의 다른 섬을 꼭 차지하려고 할 것이니 귀국이 무슨 말로 반대하겠습니까? 이것은 도적을 안내하여 문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으로 이웃 나라에 대하여 다시 죄를 짓게 되며 더욱이 큰 실책으로 됩니다. 그뿐 아니라 세계 정세로 보아서도 큰 관계가 있으니, 바라건대, 전하는 일정한 주견을 견지하여 그들의 많은 선물과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이제 정 제독(丁提督)에게 군함을 주어서 이 섬에 보내어 정형(情形)을 조사하게 하는 동시에 귀 정부와 함께 진지하게 토의하게 하니, 잘 생각해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이 세계 열강의 분쟁에 편입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이에 조선에서는 열강의 대립으로 인한 불똥을 피하기 위해 영세 중립국론이 1885년 조선 주재 독일부 영사 부들러(H. Budler)에 의한 것과 개화파 계열의 소장 관료인 유길준에 의한 것의 두 가지가 서로 관계없이 구상되었으나 주변 열강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호응은 받지 못했다. 또한 이 사건으로 러시아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반발하여 제주도를 점령하려고 하였으며, 이 때문에 제주성 위협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거문도 사람들은 오히려 영국 해군을 환영했다. 이전에도 여러 번 영국군이 상륙하면서 서로 대접을 해주고 갔기 때문에 영국 해군이 낯선 상대가 아니었을뿐더러 영국 해군은 진지 보수나 포대 설치 작업시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거문도 주민들을 고용하여 작업에 동원했다. 하지만 본토의 탐관오리들과는 달리 백성을 마구잡이로 부려먹은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제공해 준 노동에 대한 댓가에 언제나 정당한 비용과 보상을 치른데다가 식량 배급과 의료 혜택까지 무료로 베풀었다. 당시 영국군은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 조선인들에겐 쓸모가 없는 파운드 스털링 대신 곡식, 염장고기, 통조림이나 술 등의 보다 실용적인 물건으로 보상했다. 나중에는 당시 조선에서 통용되던 화폐를 따로 조달하기까지 했다. 당시 조선은 관의 착취 등으로 민초들의 생활이 피폐해진 상태였는데, 일은 일대로 죽어나게 시키면서 보수도 제대로 안 주고 백성들을 등쳐먹기까지 하는 탐관오리들과는 달리 갑툭튀한 코쟁이들은 생긴 게 좀 기묘해서 그렇지 일을 시키면 반드시 정당한 대가를 주니 오히려 주민들이 영국 해군을 물심양면 도와줬다고 한다. 그래서 2년 후 철군할 당시 주민들이 매우 아쉬워했다고.
당시의 일화가 재미있는데, 영국 해군은 엄밀히 말해 침략군으로서 들어왔지만 거문도 주민들과의 마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민 물의를 최소화하려는 지휘관의 명령으로 주민들 거주 구역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특히 여자들과의 충돌이 있을까 봐 빨래터 근처를 지날 때는 각별히 주의를 가해 여자들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물 한 모금을 떠마실 때에도 반드시 동전 한 닢을 두고 갔다는 회고도 있다. 자세한 기사는 여기에. 시대상을 보면 현재도 모범이 되는 영국 해군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야사에 따르면, 거문도에 살던 젊은 여자 무당에게 반한 한 수병이 몰래 수영을 해서 만나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니면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없었다는 것이 연구 결과이나 이런 야사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영국군과 거문도의 백성들이 친밀했다는 이야기의 반영이라는 평가가 많다. 10여 년 전 방영했던 거문도 점령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거문도 주민이 전혀 다른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당시 영국 수병이 무당 혹은 과부를 밤에 몰래 몇 번 찾아갔다가 발각되었고 조선의 남녀 유별 전통을 잘 아는 지휘관이 장병들과 거문도 주민이 보는 앞에서 강도 높은 처벌을 했는데 수병을 뱃머리에 세워두고 걷어차서 수병을 바다에 빠뜨리면 수병이 헤엄쳐서 배에 오르고 배에 오르면 다시 뱃머리에 세운뒤 걷어차서 바다에 빠뜨리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르러서야 처벌을 그쳤다고 한다. 아마 이 에피소드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로 와전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강도 높은 처벌이 본보기가 되어 특별히 알려진 대민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또 다른 일화가 나왔다. 당시 영국군이 장병들의 식량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소를 상당수 구입해서 거문도 산간에 방목했는데, 특별히 지키는 사람을 두지 않았다. 이를 보고 동네에 살던 점잖아 보이는 노인 한 명이 매일 한 마리씩 훔쳐갔다고 한다. 영국군은 소가 한 마리씩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자 몰래 숨어서 훔쳐가는 사람의 사진을 찍은 뒤, 소가 사라진 다음날 노인을 붙잡고 훔쳐간 소를 돌려달라고 했다. 노인은 딱 잡아떼었지만 영국군이 노인이 소를 몰고가는 사진을 증거로 내밀자 결국 훔쳐갔음을 시인하고 소를 돌려줬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거문도 사람들은 사진이란 것을 몰랐는데 실물과 똑같은 모습이 종이 안에 있음을 보고 다들 놀라며 신기하게 여겼다 한다.
물론 이 이야기 또한 풍문으로 보이는데 당시 사진촬영은 무척이나 귀하고 어려운 것으로 촬영을 하기 위해선 피사체가 최소 30분 가량을 부동자세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다가 준비 하는데 시간과 비용도 많이드는 관계로 기념일이나 중요인물을 촬영할때나 사진을 찍었지 무슨 현대의 몰카 촬영 마냥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거짓이다. 소가 몇 마리 있었다는 사진을 미리 찍어놓고 사진에 있는 소의 숫자와 현재 남아 있는 소의 숫자를 비교해서 없어졌다는 것을 증거로 내밀 순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노인이 범인이란 증거는 못 되는데
한번은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날에 축포를 쏘기로 했는데, 영국군은 사전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함포 소리에 놀라지 말라고 미리 당부를 해뒀었다. 주민들은 대포 터지는 것을 구경하러 나갔는데 문제는 이때 개들이 포 소리에 놀라 다 산으로 도망갔고, 영국 해군에서는 외교 문제를 고려하여 영국 해병대원들을 풀어 개 수색에 나섰다.그 밖에도 조선에서 최초로 테니스를 했다고 알려졌고, 통조림을 먹었다거나 하는 일화도 있다.
오히려 영국 해군을 경계하기 위해 들어왔던 다른 나라의 군대들이 대체로 주민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러시아 해군은 군기가 문란하고 기강이 무너져 있어 행패를 자주 부렸으며 군사들이 죄다 술에 쩔어 사는 알코올 중독자다 보니 현지 주민과 마찰이 특히 심각했고, 프랑스 해군은 가는 곳마다 측량을 하겠답시고 지붕 위로 뛰어다녀서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그나마 네덜란드 해군은 곱게 테를 두른 모자가 인상적이었으며, 가는 곳마다 깃발을 많이 휘날렸다는 것 정도만 회고했다. 당시 네덜란드 해군의 복장에 대해서는 복원 중이다.
거문도 백도로 스토리텔링 및 힐링 트레킹 코스로 제격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아름다운 다도해 남해바다와 거문도 백도 답사를 다녀오기로 해요 다같이 가치있게 손에 손잡고 아니 거리두기 유지하면서 ㅎ
1960년대에 정부에서 그때까지 살아있던 거문도의 90대, 100대 노인들에게서 영국군의 지배가 어땠는지를 묻는 설문 조사가 있었다. 노인들은 영국 해군들에게 배운 영어와 요들송을 그때까지 기억했다고 한다.
거문도 백도로 스토리텔링 및 힐링 트레킹 코스로 제격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아름다운 다도해 남해바다와 거문도 백도 답사를 다녀오기로 해요 다같이 가치있게 손에 손잡고 아니 거리두기 유지하면서 ㅎ
백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입니다
함께 탐험하러 떠나볼까요?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왜 영국군이 거문도에 무단정착했는지?
그 이유를 거문도에 가보면 몸으로 느끼실겁니다!
다니기 참 편안하고 좋은 섬 편안한 거문도!
여행의 피로는 맛집에서
보양식으로 장어탕 한그릇 먹고 피로풀고 집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