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피(D.P) 본 소감: 대한민국 군대 다 족구하라그래
*폰에서 브런치 앱 잘못 만져 글을 통째로 지워버려 다시 씁니다. 멍청한 나새끼, 젠장.
*하단에 약스포가 있는 부분 표시해 놓았습니다
나는 1998년 10월, 지금은 없어진 306 보충대를 통해 군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운전병이 모자라다던 카더라를 듣고 운전면허를 따둔 게 주효했던지 난 군단 포병 운전병으로 차출되었고, 8사단에서 병 기본 훈련 6주를 마친 다음 청평 제3야수교에서 운전교육을 8주 받고 철원의 포병 대대로 배치받았다.
내가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는 혹한기 훈련을 1주도 남겨두지 않았었던 때. 난 내무 생활이고 뭐고 바로 혹한기 훈련에 투입되었다. 운동신경이고 체력이고 눈치고 죄다 딸리는 신병이 별 수 있나. 영하 3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추위에서 오만 바보짓은 다 하고 버버버 거리다 간신히 일주일만에, 그래도 다치지 않고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후 곧바로 이어진 면담. 원래 자대 배치 받자마자 첫날 하는게 대대장 면담인데 나는 훈련때문에 미뤄져 훈련이 모두 끝나고서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뭐 면담라고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아부지 뭐하시노?’로 시작해 군인정신이 어쩌고 단체군기가 어쩌고 뻔한 말에 네네 대답 하다 앞으로 내무생활 잘 하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전형적인 꼰대 대담 스토리.
대담을 마치고 부대 생활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후 내무실로 복귀하니, 분위기도 분위기인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강** 상병은 어디갔지? 이상한 분위기 속에 일단 화장실을 가려는데 옆 내무실 통신과 동기가 와서 물어본다.
야, 너 왜그랬어? 니가 강**이 혹한기 훈련때 사람들 괴롭혔다고 찔렀다며?
아닌데… 난 컴공 나왔다는거랑 운동 못한다는 소리밖에 한게 없는데. 혹한기 훈련때 강** 상병이 수송부 상병 초 일병 말호봉들 귀싸대기를 날리고 굴린건 사실이었지만, 난 정말 아무 이야기도 안했는데… 그러나 그날 면담을 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으니 모든 의심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가끔 누가 나에게 말이라도 걸려 하면 고참들은 그 사람을 떼어내며 이렇게 말했다.
야. 이정민이 새끼한테 말걸지마. 너도 말로 갈궜다고 대대장한테 찌른다
나는 그다음부터 식사 집합, 암구호 전파 등 어떤 공지도 받지 못했다. 야간 보초 교대때도 나를 깨우지 않거나 교대 1분전 깨워 엿을 먹였다. 처음에는 그냥 무덤덤하게 대하던 다른 내무실 고참과 후임들도, 이런 이유로 계속 고문관 짓거리를 하다보니 나는 점점 고립되어갔다.
2021년 8월 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 때문에 지금 미디어가 시끌시끌하다. 헌병대에 입대해 모진 갈굼을 당하다 박범구(김성균) 중사의 눈에 들어 탈영병 체포조인 D.P에 들어간 안준호(정해인) 이병이 탈영병 체포 업무를 하면서 겪고 느끼는 것이 드라마 ‘디피’의 주요 스토리 라인이다.
1화에서는 정해인의 우울한 심리상태가 드라마에 그대로 투영되면서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2화부터 공황장애로 입원했다 복귀한다는 설정의 한호열 상병(구교환)이 소위 깔깔이 연기를 비롯한 다채로운 모습으로 극에 힘을 불어넣어 주면서 스토리는 스피디하고 흥미롭게 흘러간다. 그러나 4화 말 드라마내의 왕따 병사인 조석봉 (조현철)이 괴롭힘과 성추행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상 예견된듯한) 탈영하면서, 텐션은 높지만 내용은 끝 간데 없게 우울해진다.
나도 크리스토퍼 놀란 급 시간을 초월하는 의식의 흐름 연출을 한 번 시도해볼란다. 그래서, 왕따당하던 내가 가만히 있었냐고? 그럴리가… 고참들 눈밖에 난 내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나도 별 짓을 다 해봤다. 당시 내가 당하던 왕따중 하나가 새벽 4시부터 5시 부근의 보초인 ‘말둘번’보초가 툭하면 배정되는 것이었다. 보통 5시 20분 쯤 복귀하는 말둘번은 보초 임무를 마치고 장비 정리하고 옷벗고 누워봐야 10~20분 후에는 일어나야 해 남들보다 잠을 손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참들에게 잘 보여보겠다고 말둘번 끝나고 와서 전투화를 다 닦아놓고, 남들 쉴 때 내무실 고참들 담당구역 청소 내가 싹 다 해놓는 등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왜? 그렇게 청소하고 전투화 닦아놓은 다음,
고참들이 자기일 떠넘겼다고 꼰질르게?
당시 우리 내무실 내무실장이었던 조** 병장에게 이야기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으이그 임마 그러길래 왜 고참을 꼰질러. 얼른 강**한테 미안하다 그래’. 한 6개월 지나니 나도 슬슬 포기하게 되더라. 그러나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당시 내부 진지 부식추진 차를 운전해야 했던 내 옆에 조** 상병이 탔다. 운전해 가는 중 계속 ‘아 재수없어 고자질쟁이 새끼 옆에 선탑을 하다니’ 되뇌이는걸 도저히 참지 못했던 나는 ‘나는 강** 상병님을 고자질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저한테 왜그러세요?’ 하며 대들었고, 차세우고 나를 내리라 한 조** 상병은 ‘그렇게 억울하면 함 붙자’며 싸움을 걸어왔다.
결과는 뻔하지 뭐. 나는 진짜 얼굴 빼고(거긴 또 멍들까봐 안때리더라) 작살나게 얻어터져 나뒹굴어야 했다. 누워있는 나한테 다가온 조** 상병은 갑자기 ‘야. 니가 이렇게 뎀비는데는 이유가 있을거 아냐. 그날 얘기 좀 자세히 해봐’라며 말을 걸었다.
그 이후 어떻게 됐냐고? 진짜 이건 드라마에서 이런 내용이 나왔으면 ‘너무 작위적이다’라 할 만한 내용인데, 내 이야기를 들은 조** 상병은 니 말 한 번 믿어보겠다며 고참들을 설득하고 다녔고 진짜 나에 대한 왕따는 1~2주만에 금세 풀리고 나는 ‘라떼 마시며 읽는 PX병 스토리’에 써놓은 대로 비교적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디피(D.P)는 드라마 주제에 이런 소설같은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는다.
-----약간의 스포가 있으니 드라마를 보실 분들은 이 이후를 읽지 말아주세요----
입대 전, 자신이 가르치던 만화 학원 학생의 그림을 손봐주며 ‘뭐라도 해봐야 뭐라도 바뀌지’ 했던 조석봉 일병. 자신을 괴롭히고도 무사히 제대한 황장수 병장을 죽이려다 실패한 후 납치해 도주하다 막다른 곳에 몰린 조석봉 일병은 한호열 상병이 외친 ‘우리가 바꾸자. 바꿀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석봉: 군대가 바뀐다고요?
호열: 우리가 바꾸자. 바꿀 수 있어!
석봉: 한호열 상병님 부대 안 제 수통에 뭐라고 써있는 줄 알아요?
호열: 뭐?
석봉: 1953. 6.25때 쓰던 수통이라고요. 수통 하나도 못 바꾸는데, 군대가 바뀐다고요?
안준호 이병이, 석봉이 가르치던 학생이 대학에 합격했고 자신에게 고마워한다는 말을 들은 석봉은 자신이 학생에게 해주던 ‘뭐라도 해봐야 뭐라도 바뀌지’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그 ‘수통’ 대사에 나는 깊히 감정이입해 버렸다. 군생활 시절 내 수통도 ‘1953’년에 만든 한국전쟁 시절 수통이었거든. 진짜 군대가 바뀔 수 있기는 한걸까? 모두 사태를 방관하지 않고 힘을 합쳐서 병영 폭력을 막아내면 되는걸까?
황장수 병장을 습격하려다 호열과 준호에게 체포당해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가던 석봉은 박범구 중사와 호열, 준호를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니들도 다 알았잖아. 다 알고도 방관했잖아
맞다. 그가 괴롭힘당하던 것을 모르지 않았던 준호와 호열도, 허기영 일병도 모두 조석봉 일병의 왕따를 방관해왔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적극적으로 석봉의 괴롭힘을 막기 위해 나설 수있었을까? 내가 왕따를 당하는 동안 내게 말도 제대로 안 걸고 서먹하게 지냈던 안**과 이**를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더라. 그들이 동기라고 나한테 말걸고 챙겨줬다가 ‘고자질한 개새끼 챙겨준다’며 쪼인트 까이고 기합받던 그들을 보았거든.
여기서 황장수 병장과 류이강 상병을 제외하고, 아니 그들만큼 잘못한 사람들은 부대 책임자인 천용덕 중령과 임지섭 대위, 박범구 중사다. 그들이야말로 그 사태를 방관하고 그대로 내버려두어 조석봉 일병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들이 노력한다고 군대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지난번 공군 여자 중사가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지만 묵살당해 자살한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또다시 해군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수십, 수백 건 있었겠지? 썩은 물은 정화하거나 끓이고 소독해 마시는게 아니다. 그래봐야 맛만 이상할 뿐. 썩어서 냄새가 나는 물은 버리고 그릇을 깨끗히 헹궈낸 후 새 물을 받아 마셔야 하는게 정상이다. 작가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드라마 마지막은 조석봉 일병이 관심병사였다던 뉴스를 보며 얻어맏고 괴롭힘 당하다 결국 총을 난사하는 석봉의 친구 김루리 이병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병영비리 근절 및 제도 개선? 웃기고 있네. 대한민국 군대 다 좆까라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