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안 해도되는 행군 사서 고생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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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일매일, 주경야독도 아니고 주간에는 훈련, 야간에는 장사를 하며 피폐한 유격 생활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5일이 흐르고, 드디어 부대로 복귀할 시간이 되었다. 행군을 자주 하지 않는 포병이라도 유격훈련인 만큼 복귀 역시 행군. 그러나. PX병 주제에 유격 훈련 다 받으며 장사까지 해야 했던걸 좀 짠하게 봤는지, 대대장이 PX 짐 정리하는 트럭 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원래 캐릭터 답지 않은 소리를 한다.
피돌이 고생했어. 넌 원하면 PX 차로 복귀하도록.
줬다 뺐는 건 나쁜 일이지만, 뺏었다 주면 기쁨이 두배라고 했나. 그 말 한마디에 5일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 같더라. 아씨 얼른 부대 복귀해서 짐 풀어놓고 샤워하고 자야지~ 그런데 같은 군번 동기인 통신병 안병진이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고민스러운 제안을 건넸다.
우리 동기 제대 전 마지막 큰 훈련인데,
복귀 행군 같이 하자. 별로 힘들지도 않잖아.
갑자기 마음이 흔들린다. 미우나 고우나 2년이나 같이 자고 훈련하고 부대끼던 녀석들인데… 고향도 죄다 다른 지역이라 이제 만나기도 힘들 텐데… 에라 모르겠다. 걸어보자! 입소 행군할 때 한 세네 시간 걸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참고로 나와 입대 동기들은 첫 번째 유격 때 입소 행군으로 걸어가서 하루 훈련하다 수해 경보가 발생해서 곧바로 차로 복귀해 남은 기간을 철원 수해 복구에 투입되는 바람에 유격 복귀 행군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음.
대대장과 포대장, 행보관에게 그냥 복귀 행군하겠다는 보고를 하고 어느덧 오후 2시, 드디어 복귀 행군이 시작되었다. 대대 본부에서 짬밥이 좀 되던 우리 동기들은 전부 중간으로 모여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걸어 나갔다. 총이 좀 무겁긴 했지만 군장에 들어갈 것들을 좀 빼서 가볍게 한 덕에 걸을만하다. 그것 때문에 개고생 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가벼운 ‘노란 하이바’ 덕에 머리도 가볍고…. 어느덧 걷고 걸어 저녁 먹을 시간인데 아직 부대 근처 길도 보이지 않네… 뭔가 좀 이상한데? 친한 위관 장교에게 ‘도착할 때 다 됐지 말입니다?’ 물어보니 돌아오는 답이 황망하다.
유격 처음이냐? 복귀 행군은 입소 행군의 세 배잖아!
네, 저 유격 복귀 행군 처음입니다. 아… 망했다. 당시 유격 입소 행군은 20km인가 그랬는데, 복귀 행군은 산악 행군까지 겸해 70km 장거리랜다. ‘안병진 개새끼, 씨발놈’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하니 한 발 한 발이 지옥이다. 눈앞이 보이질 않으니 자꾸 돌을 밟아서 발목이 시리고 발바닥 아프고… 늦은 유격이라 때는 가을의 절정, 철원의 10월 공기를 품은 바람이 땀 흘린 전투복에 닿으니 시리고 아프더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이라는, 군 복무 중 추운 날 야외에서 먹는 사발면까지 먹었지만 힘들긴 매한가지. 와… 졸리고 춥고 힘들고… 새벽 세 시쯤 되니 슬슬 우리 부대 부근 지형이 보이기 시작한다. 군대 문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부대 앞 1km 남짓을 앞두고 ‘남아의 붉은 피~ 조국에 바쳐~’ 함께 고함치며 군가를 부르던 기분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그렇게 새벽 네 시쯤 부대 문을 통과한 것으로 나의 군생활 마지막 행군은 끝이 났다.
막사에 들어가 얼른 군장을 내려놓고 전투화를 벗어 걱정되었던 발을 확인해 보니, 500원짜리 동전만 한 물집이 여섯일곱 개는 보인다. 이 발로 어쩌다 군대를 왔는지… 고생하시는 장애인 여러분에 비하면 경미하지만, 나는 두 발 모두 네 번째 발가락에 장애가 있어 걷는데 문제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입대했냐고?…….
(언젠가 다음번 글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