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장 짜장면 존맛설에 관한 과학적 고찰

사라져가는 것 한 가지에 관한,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by Francis

모르긴 몰라도 짜장면 싫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아. 짭조름하면서도 달큰한, 그 거무튀튀한 소스에 칼칼하면서도 달달한 양파와 가끔 씹히는 돼지고기의 조합은 기가 막히지. 후루룩 넘김 좋은 소다면의 탄력에 곁들여 먹는 단무지 조합도 잘 어울리는 연인마냥 찰떡이다. 사실 아무 때나 먹어도 맛있는 게 짜장면이다. 하지만 짜장면이 제일 맛있는 장소는 분명히 따로 있더라. 바로, 당구장이다. 당구장에서 '결!'부르고 먹는 짜장면은 못참지.

‘뻥 치시네… 니가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 맛을 어떻게 알아?’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맞아. 나 당구랑 별로 안 친하거든. 뭐 지금 굳이 당구 에버리지를 이야기하자면, ‘30’? 하지만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 맛은 분명히 기억함.


친구들이 대부분 당구를 치다 보니, 학교 공강 시간이나 방과 후엔 종종 당구장에 모였다. 난 당구는 치지 않고 따라만 갔지만, 속칭 ‘겐뻬이’라 하는 팀전에서 짝이 안 맞을 때 가끔 끼어 치는 정도? 몇 게임씩 연달아 당구를 치다 보니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고, 그때 보통 족발이나 짜장면을 시켰다. 그때 배달 온 짜장면을 쓱쓱 비벼 먹던 기억이 잊히지 않더라. 그런데 단순 추억이라 하기에는, 분명히 달랐다.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이 확실히, 절대적으로 맛있었거든.


왜 하필 당구장에서 먹는 짜장면이 특별히 맛있을까나?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찾아보고 고민해 보았다.


첫째, 본의 아니게 뜸이 들게 되니까?

2024년 KBS에서 방영한 ‘짜장면 랩소디’에서 외식 전문가 백종원은 짜장면이 막 나오면, 마치 뜸을 들이듯 ‘잠시 가만히 놔둔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면을 삶았을 때 겉의 물기와 함께 양념이 배어들게 된다나?

당구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아도 짜장면에 뜸이 들게 된다. 일단 게임을 하고 있는 상태인 만큼, 포장한 랩을 뜯어 면을 비비는 시간은 늦어지게 된다. 그때 저절로 뜸이 들게 되는 거지. 한 큐 치고, 한 젓가락 하다 보면 내 차례가 돌아온다. 짬짬이 소주까지 마시며 먹다 보면 양념을 가득 머금은 짜장면은 아주 훌륭한 끼니이자 안주가 되어 준다.


둘째, 어수선한 환경 덕이다.

가장 유명한 공식은 ‘이사=짜장면’이다. 이사 가서는 짜장면을 먹는 게 국룰이지. 그런 이유도 바로 그, ‘어수선한 환경’ 때문이다. 뮌헨 기반 미디어 ‘Hubert Burda Media’ 소속 여행 웹진 ‘Travel+Lesure’의 콘텐츠 <The Surprising Science Behind Why Airline Food Tastes So Different> 에 따르면, 비행기처럼 정신이 없는 공간이나 이사 등 너저분학 혼잡한 환경, 먼지 많고 정신없는 곳에서는 뇌가 탄수화물이나 당분 등 즉각적인 에너지를 원한다고 한다. 이럴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아, 짜장면에는 탄수화물과 당분이 충분히 들어 있구나…’. 그 느낌으로 한 젓가락 뜨면, 무조건 좋은 맛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 홍콩 ‘Hongkong Observatory’의 기사 <Why does food taste blanace on airplaines?>를 보면, 시끌시끌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흔히 ‘감칠맛’이라 하는 ‘Umami’를 더 잘 느끼게 된다고 한다. 볼 부딛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대화가 시끌벅적한 공간, 바로 당구장이잖아?


셋째는 바로 ‘승부의 맛’ 때문이다.

당구장에서 짜장면을 시킬 땐 (지금은 잘 몰라도) 보통 당구장에서 사전에 요금을 내고, 진 사람이 게임비와 짜장면 값을 합쳐 당구장 측에 계산하는 게 국룰. ‘패자는 카운터로’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게임에서 이길지 질지는 몰라도 말야, 일단 시켜 놓고 보면 꽁으로 먹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까. 졌다면 뭐... 카운터로 가야지.

당구계의 진리랄까...

미국의 언론사 'WUSA90'의 기사 <Victory Monday: Why a win can make your food tastier and boost your confidence>에서, 2015년 미국 '코넬 대학교'의 연구를 보자면 응원하는 팀이 승리했을 때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당연히 승리했을 때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이 더 달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 정도면 ‘왜 당구장에서 짜장면이 맛있는 걸까?’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런 내용 다 넘기더라도, ‘당구장 짜장면’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느꼈던 추억의 맛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달달하고 기름기 있는 음식인 만큼 족발도 비슷한 기전이지 싶기도 하고 말야. 이제 당구장도 서서히 사라져 가는데… 이제 이 맛은 정말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갈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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