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킷캣 초콜릿 보다 달콤한.

키키 스미스(Ki Ki Smith) - 자유낙하

by 길문

전시

키키 스미스(Ki Ki Smith) - 자유낙하

2022.12.15~2023.3.12(마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76164&cid=40942&categoryId=34391


생각나는 게 킷캣 초콜릿이었다. 마침, 책상 위에 놓여있어서 먹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었다. 맛이 달콤했다. 전시회가 말이다. 초콜릿은 입으로 맛보지만, 이건 눈으로 맛본다. 그 차이구나. 그렇지만 결국 머리가 인지할 터. 돌아가지 않는 머리와 노후화된 감성을 잠시 돌리고자 찾은 전시회가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였다.


자유낙하 1994

알고 갔겠는가? 여기저기서 추천을 했었는데, 어떤 기사를 보니 기획이 좀 부족했다고 한다. 최근작 위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그녀와 그녀의 작품세계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요지 같은데, 이걸 이해했다면 초보가 아니겠지? 그저, 시간 내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어떻게든 돌리려 윤활유를 치러 간 건데 말이다. 그녀와 작품들을 다 이해했다고?


메두사 2004

처음 이름을 들은 작가. 그녀는 여성과 몸에 초점을 맞춘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게 1980~1990년대. 그 후 40년간 이어진 그녀의 작품세계를 보는 전시회라니 좋았다. 그 좋았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것도 남성인 내가 여성이 여성 스스로 표현하는 여성성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남성이 여성을 표현한다면 많은 차이를 보이겠지 정도. 그런데 전시회니까 발품 팔아서 눈으로 보면 뭔가 익숙함이 늘어나겠지? 그게 작품을 이해하는 출발이 될 테고 말이다.


전시회 제목은 '자유낙하'였다.


이름이 좋다. 자유낙하. 떨어지면 그 끝은 어떻지? 오랜 작품 활동을 해온 동료예술가들을 존경하게 되면서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여성의 모습을 판화로 찍어낸 작품. 판화였구나. 낙하를 통해 그녀가 표현하려는 의도는 낙하 그 자체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지구에서의 현실, 이게 인간이 갖는 필연적인 조건을 수용하는 것. 더불어 "이상과 기념비가 아닌 죽음을 앞둔 인간 조건의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의 수는 총 140여 점으로 조각, 판화, 드로잉, 사진, 태피스트리 등을 담았다. 이게 가능한 건 그녀가 형식에 얽매지 않고 실험적인 도전을 했기 때문인데, 전시 전체 분위기는 정리되지 않은 형태라고 지적도 받는다. 누군 이게 그녀를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이런 반열에 오른 건 미니멀리스트 조작가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 어머니로 부터 재능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런 논의보다 그녀가 했다는 다음의 말이 명언이다.


"예술은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예술가로 살겠다고 하면 된다. 스스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소화계 1988

그녀의 작품세계는 처음부터 '몸'으로 시작했지만 연륜이 쌓이면서 '몸'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나중에 그의 사고가 확장되는데, 초기 작품들은 전적으로 몸에 치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신체 중 혀부터 항문에 이르기까지 주철로 만든 '소화계'(1988)은 1980년대 돌아가신 아버지와 에이즈에 걸려 죽은 여동생을 보면서 생명의 취약함을 느껴 제작한 것이다. 전시회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조각상 '메두사'(2004)도 대표적으로 몸을 다른 작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두사 작품이랑 많이 차이가 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아니더라도, 아주 평범한 여성을 묘사했다. 노림수가 있겠지? 작품 의도 말이다.


꿈 1992

1992년 작 '꿈'은 그녀가 직접 동판 위에 올라 몸을 웅크리고 자신의 신체 윤곽선을 그리하고 한 것으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자세는 그녀의 작품에서 주로 반복적으로 다뤄진다는데, 1970년대부터 관심을 가져온 해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발견한 몸은 "먹고, 배설하고, 숨 쉬는" 그 이상이 아니다.


황홀 2001

아마 이번 전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황홀'(2001)과 '탄생'(2002)이 될 것 같다. 앞의 작품은 늑대의 배를 가르고 밖으로 나오는 여성을 묘사했고, 후자는 암사슴에서 여인이 탄생하는 순간을 나타냈다. 이는 서구 미술사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우아하게 등장하는 신화 속 여성들과는 다르게, 충격적인 구도와 당당한 자태를 보임으로써 차별화한 것. 그러고 보니 그랬다. 이들 동물로부터 나오는 모습이 우아하거나 아름다운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앞에 언급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메두사도 그렇고.


탄생 2002

그러고 보니 그녀가 누구보다 더 '신체'에 대해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현대미술가가 맞는 것 같다. 그 신체가 우아하고 아름답고 매끈한 게 아니라, 어떤 면에선 기기묘묘하기도 한데 이게 그녀의 작품이 갖는 특성이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 몸에 대한 이미지를 비틀면서 신체에 대한 미, 그 미에 대한 편견을 파괴하려는 시도? 이런 평가가 적합한 것 같다. 이런 작업을 통해 신체에 대한 이미지를 깸으로써 사회적 금기에 도전을 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게 스미스를 페미니스트작가라고 부르는 요소가 아닐까?


가진 사람이 임자 1995


1995년 작 '가진 사람이 임자'는 제목이 독특하다. 스미스가 방광, 간, 폐, 췌장 등 신체 기간을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한 것으로 스크린프린트와 모노타이프 기법으로 찍은 후 노란색 잉크로 직접 채색을 한 작품이다. 신체 내 장기의 생김새를 객관적인 시각 자료나 육안으로 확인해서 사람들이 몸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도록 한 작품. 이는 1985년 자기 동생과 함께 응급구조사 교육을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관람자가 마치 정물화를 보듯 종이마다 우리 몸의 장기를 하나씩 그려낸 작품.


세상의 빛 2017 로신프라하종이에 시아노타이프(청사진)


사실, 예술도 잘 모르지만 '페미니즘 예술가'라고 하면 더 모를 텐데, 이번 일을 계기로 뭔가 좀 알 것도 같다. 그럼에도 스미스는 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경향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동물과 자연, 우주 등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이하게, 이 시기에 세계 각국의 종이를 구해서 드로잉 작업을 펼치던 시기이기도 한데, 아쉽게도 우리 한지로 작업을 하지 않은 듯하다.


블루프린트 : 늑대소녀 1999/ 하늘 2012 태피스트리



남성의 몸도 아니고 여성의 몸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 초기 작품경향과는 달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유롭게 소재와 한계를 벗어나서 작업하는 그녀의 전체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런데, 뭔가 달달한 느낌만은 확실하다. 같이 간 후배도 인정했던 '좋았다'는 말. 전체 관람에 대한 인상을 말하는 것이다. 몸과 몸을 주로 탐구하던 초기 페미니즘 작가에서 주제와 소재의 영역을 자연, 동물, 우주로 표현한 방법들도 계속 확장되면서 보여주는 그녀의 작품세계. 잘은 몰라도 회색으로 채워지던 뇌가 오늘은 다채로운 색감과 모습으로 채워져 좋았다. 진짜, 달달했다.



대표

- 푸른 소녀 1998 - 성모마리아를 소녀상으로 제작한 작품. "두 팔을 곧게 뻗은 자세는 성모 마리아의 전통적인 제스처로, 기도, 경외, 축복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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