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가 된다. 누가? 에드워드 호퍼 말이다. 말로 정확히 표현해도 말이란 게 그냥 뱉은 순간 흩어진다. 어떤 의미를 오랫동안 담아내지 못한다. 그때의 느낌과 생각이 생생히 살던가?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을, 그림을, 글을, 혹은 작곡을 하는데, 이걸 해내는 이들은 우선 평범하지 않다.
평범과 비범과의 경계에는 크레바스가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빠진다. 그 경계를 넘어서도, 끊임없는 노력과 재능이 밑받침되어야 비범해지지만, 그 비범에 속해도 소수만이 성공해서 예술가가 될 텐데, 그런 이 중에 에드워드 호퍼가 있다. 초기 몇몇 작품이 다른 작품을 베꼈다고도 했고, 먹고살기 위해 광고 쪽에서도 일하기도 했고. 조세핀과의 관계도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에 결혼에 이른 것처럼, 화가로써 나중에 심히 창대해져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이 된 에드워드 호퍼. 아내 조세핀의 내조가 한몫 단단히 했다고.
그는 왜 유명한 걸까?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독을 그린 화가'란다. 고독을 그려? 고독이 그려질까? 고독을 느끼도록 한 것인데, 이것 때문이다. 이 감정이 특별한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있는데 이걸 느끼게 만들어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이번 전시 제목이 '길 위에서'인데, 이렇게 붙인 이유는 시대순으로 그가 옮긴 장소를 중심으로 작품을 전시했기 때문이다. 초기 파리에서 그린 작품을 중심으로 이후 뉴욕을 지나 뉴잉글랜드, 그리고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코드(Cape Cod)까지. 그림이 옮겨 다닐 수 없으니.
여행을 하다 보면 간혹 고독, 외로움을 느끼는데, 여기엔 쓸쓸함, 적막감 등이란 감정도 포함되는 것 같다. 이게 단순히 한 개인이 느끼는 게 아니라, 집단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면. 당연히 그러니 그게 사람들에게 먹힌 것이다. 시대는 21세기도 아니고 20세기 도시화가 진행된 뉴욕의 이면엔 복잡함, 번거로움, 활기 참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바쁜 도시생활 와중에 누군가 소외감과 고독을 느꼈을 테니. 주로 일상적인 도시의 이런저런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주로 그리면서 미국 팝아트와 신사실주의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는 미술사적 배경은 글쓴이의 능력을 마땅히 넘어선다.
에드워드 호퍼가 누굴까? 그가 누군지 몰라도 아래 그림을 한번 본 적은 있지 않을까? 〈밤샘하는 사람들, nighthawks 1942〉. 이 그림은 한 번쯤 봤을 수도. 유리창 밖과 안은 단절된 세상을, 그 안 네 명의 인간들은 서로 무심함과 외로움을 나타낸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에서 빠졌다. 그 외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대부분 온 듯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행은 전시실 내에서 대부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거고, 다행은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일부 작품들을 활용할 수 있다.
그곳에서 본 첫 번째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 그가 몇 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40대 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모자를 벗은 그의 다른 사진을 보면 중간 머리가 거의 없다. 대머리는 아닌 것 같은데, 이때 느낀 반전 감이라니. 1990년대 초에 그린 그의 자화상은 젊음 그 자체. 그도 젊었었다. 그래서 그가 고독감을 느낀 걸까? 나이 드는 것을?
▷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 1909, 서울시립미술관
호퍼는 젊었을 때 파리를 세 번 방문했다고. 호퍼가 초기 그림을 그릴 때 프랑스 파리가 준 이미지는 강했을 것 같다. 예술하면 파리, 예술가들은 파리에서 정착하면 뭔가 시대를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을 듯하다. 그런데 그려진 그림은 뭔가 엉성하다. 강은 센 강일까? 그 강을 가로지르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데 그리다 만 것 같다. 거리에 사람도 보이지 않고. 호퍼가 뭘 말하고 싶은 걸까?
▷ 푸른 저녁 1914
푸른 저녁 1914, 서울시립미술관
푸른 저녁? 작품 제목이 상징적이다. 그런데 뭘? 그림 전체 배경이 푸르다. 그래서일까? 1914년이면 그가 3번째 파리를 방문했을 때. 가장 눈길 가는 사람이야 당연히 광대. 나머지 사람들은 광대를 보고 있는 것일까? 이질적이다. 짙은 화장을 한 여성은 누구? 매춘부라고 했던가? 그녀가 왜 식당을 거닐지? 헌팅? 오른쪽 부유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광대를 보고 있는데, 정작 호퍼는 이 식당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호퍼 상태가 드러난 걸까? 어긋남, 낯섦. 그래서 소외를 느꼈나? 뭔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 같다.
▷ 밤의 그림자 1921
밤의 그림자 1921, 서울시립미술관
어딘가 익숙하다. 많이 본 듯한 그림. 호퍼가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그렸을까? 우측 건물은 상당히 큰 건물처럼 보이고. 혼자 걸어가는 사람. 길게 늘어져 있는 직선 형태 그림자는 가로등이 다른 불빛에 비친 것일까? 늦은 밤이라서 건물에 불빛이 없다. 밤을 그린 그림이라 다 검은색일까? 그림 제목이 '밤의 그림자'이다. 낮의 그림자가 아니라. 밤에 비친 그림자. 그림이 나타내는 의미는? 저렇게 혼자 걸으면 외로울 것 같다. 혼자 걷는 사내인 듯 행인의 마음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을 것 같다.
▷ 맨해튼 다리 1925~26
맨해튼 다리 1925~26, 서울시립미술관
다리 모양이 익숙한데, 영화 때문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년 개봉한 영화. 누구든 쉽게 떠올릴 장소. 마피아가 담배를 물고 총을 난사했을 것 같은 시대. 지금은 배낭여행객들이 들러 꼭 찍는다는 그 장소. 저 강이 이스트 강인데. 브루클린과 차이나타운을 연결하는 다리가 뭔가 허전하다. 이 그림을 그렸던 당시 고층건물들이 한창 들어서기 전이었다고. 뉴욕도 정말 많이 변해왔던 곳이란 게 실감이 안 난다.
▷ 도시의 지붕들
도시의 지붕들 1932, 서울시립미술관
건물 지붕 위에 사람이 없다. 이게 당연했을 것 같긴 한데, 이것도 어디서 내려다본 그림이다. 유명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 주거지를 케이프 코드로 옮겼는데, 그전에 뉴욕에서 살던 곳인 것 같은 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의 특기인 썰렁함과 허전함. 오른쪽 건물이 높아서 이 건물의 높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전시회에서 눈길이 많이 갔던 그림의 하나인데, 나 또한 마음이 휑해서였을까?
▷ 밤의 창문
밤의 창문 1928, 서울시립미술관
호퍼는 관음증이 있었을까? 들여다보는 그림이 많은 것 같다. 영화를 보면 건물들 사이로 철도가 지나가던데, 그곳을 지나며 그렇게 들여다본 것일까? 찾아보니 엘 트레인이란 고가철도에서 보고 그린 그림. 엉큼한 걸까? 성격이.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한 것은 움직이는 철도에서 포착한 감각이 남다르다. 왼편 바람이 날리는 커튼이 인상적이다. 침실 같은데, 여성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 작은 배들
작은 배들, 오건 킷, 1914
찾아보니 메인 주에 오건 킷이란 해안가가 있다.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린 것인데, 평화로워 보인다. 파도는 제법 있는 것 같은 맑은 날. 당시에는 이곳에 많은 예술가들이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역시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도시의 고독과 같은 느낌을 찾기는 어렵다. 이건 해안가라서 그런데, 그렇다고 사람이 복잡되지도 않고. 그의 그림에서 풍기는 그 무엇은 역시나 일관되다.
▷ 안갯속의 메인, 1926~29
안갯속의 메인, 1926~29
지도에서 미국 메인 주를 찾아보니 미국 동부 끝 해안가에 있는 주다. 위에는 캐나다와 연접해 있다. 역시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래턱에 올라가 있는 배라. 폐선 같기도 하고. 모래사장과 어울리는 바닷가가 꽤나 아름다웠을 것 같은데, 정작 딸랑 보이는 두 채의 집과 배 한 척이라. 이런 식이다. 호퍼가 그리는 방식이란 게. 뭔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스스로 무너지는 듯한 느낌. 외로우면 질 것 같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작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을 이 없는 우리들,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딘가 있을 공간이 이런 느낌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멋 집들
콥의 헛간과 떨어져 있는 멋 집들 1926~29, 서울시립미술관
콥의 헛간이라고 하니, 콥이 사람인 건 알겠는데 그 콥이 작은 시골마을 트루로(Truro)에 있다고. 그 콥이 누군고 하니 벌리 콥이라고. 마을 우체국장이라나? 케이프 코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코드(곶)에 있는 집. 미국이 워낙 크니 지도에서 봐도 그저 동쪽의 어느 한 곶. 호퍼와 와이프가 방문을 했는데, 집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림에 남기기까지. 정작 유명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집무실에 걸었던 호퍼의 그림 중 하나라고. 이와 비슷한 그림은 올해 5월에 경매에 나와 97억에 팔렸다.
오전 7시에 여는 상점이 얼마나 될까? 그 시각에 정말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괘종시계가 7시를 가리키는 것 같다. 썰렁해 보이는. 아무도 없으니. 역시나 사람이 없는 그림. 뭘 파는 가게일까? 초록색 병이 놓여있는데, 생활필수품? 그림이 나오는 장소를 보면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해안가가 많이 나온다. 미국 동부. 이곳도 역시 그가 마음에 들어 하던 동네 트루로다. 사우스 트루로. 매사추세츠 케이프 코드 지역. 이건 그가 마음이 상대적으로 평온한 때인 것 같다. 그런데 허전한 느낌도. 역시나 호퍼다.
▷ 이층에 내리는 햇빛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서울시립미술관
호퍼 스스로 좋아한 그림이라고. 사람이 그림에 나온다. 그래서 다른 그림처럼 고독이 덜 나타나는 것 같다. 안락한 하루. 아침일까? 오후일까? 왼편 여성은 중년일 것 같고. 오른편 여성은 옷차림으로 보니 젊은 여성이겠지? 두 여성을 대비시켜 놓다니. 건물도 명암의 대비가 뚜렷하다. 그림의 두 여성처럼. 호퍼는 이렇게 명함을 확실하게 대비한다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그의 그림이 깔끔해 보이는 것 같다. 원래 군더더기 없이 그리기도 하지만 빛에 따른 사물의 변화를 명확하게 대비해 놓으니 간결하게 보이기도 한다.
▷ 햇빛 속의 여인 1961
햇빛 속의 여인 1961, 서울시립미술관
호퍼의 아내를 그린 그림. '햇빛 속의 여인.' 여인이 혼자 담배를 피우고 서 있다. 그리고 길게 늘어져 있는 그림자. 전시회에선 이 장면을 포토존으로 만들어 사진을 찍게 했다. 찍고 찍히는 사람들 사이 고독은 온데간데없지만. 막 일어난 듯한 여인은 잠이 덜 깬 게 분명하다. 담배는 그것을 위한 도구가 되고. 빛은 밝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데, 여인의 표정은 심각함을 넘어 무덤덤해 보이기까지 하다. 늙어버린 아내를 저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림 속 여성이 외로워 보일까?
▷ 트루로 집에서 스케치하는 조
트루로 집에서 스케치하는 조, 1934~38
그의 아내 조세핀이 젊어졌다. 그녀가 1968년에 세상을 떴다고 하니, 상당히 젊었을 때다. 역시나 트루로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호퍼에겐 황금기였나? 전시회에 가면 아래 '그림 장부'를 볼 수 있는데, 이런 장부가 3개나 된다. 말수가 많지 않았던 남편 대신 아내 조가 사방팔방으로 호퍼를 내조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비록, 그들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내 조가 무명이 다시 피한 호퍼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인 것만은 누구도 부정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 예술가의 세계도 부부관계가 중요한가 보다. 그녀가 호퍼의 작품 2500여 점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을 해서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에드워드 호퍼, 조세핀 니비슨 호퍼, 〈작가의 장부 3권〉, 1924-67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호퍼의 전시회를 갔다 왔다. 그렇다. 봤다. 현대 미술계 거장. 그에 대한 찬사만큼이나 높은 경쟁 속에 표를 구해 본 소감은 그저 보고 느꼈던, 남들도 느꼈다는 그 감정을 느낀 건 맞다. 그게 100%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는 게 허전한 것 같기도 하고, 외롭고 고독하기도 하고. 이게 우리 모두가 느끼는 어떤 감정들의 실체일 수도 있겠다. 다행인 건 이걸 매 순간 느끼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게 완전하지 않은 나를 알게 해주는 촉매제가 된... 대가의 전시회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대가라서 라기보다, 마음 한구석 찡하게 하는 게 어디 쉽던가? 찡하게는커녕 많은 사람들이 짜증만 나게 하지 않던가 말이다.
사실 전시회 그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은 아래 그림이다. 워낙 유명하고, 미술관 외벽면을 장식한 그림. 미국의 광대한 자연 앞에 생뚱맞은 철길? 그들 부부는 매사추세츠 주나 메인 주에 열차를 타고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그런 여행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어느 날 화폭 안에 남겨놓았다니. 철길 옆에 우뚝 솟은 신호탑. 보면 볼수록 빠져들었던 그림이다. 그래서 자꾸만 미술관을 나오면서 뒤돌아봤던 걸개그림이기도 하다. 보고 또 봐도 좋다. 아래 그림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