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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Jul 24. 2024

사람들은 아시시에 왜 가지?

26.

"이곳은 지금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지만 언젠가는 천국의 문, 낙원의 입구라고 불릴 것입니다."


이 말을 프란치스코 성인이 했을까? 그분이 했을 것 같지 않지만, 지금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세워짐으로 해서 지옥의 언덕(collis inferus)이 천국의 언덕(collis paradisi)으로 불리게 된 건 맞는 것 같다. 사형수들을 처형하던 곳에 성당이 세워졌으니. 비록, 그때 그 사형수들이 구원을 받아 살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죽음은 어쩌면 삶(생)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는지! 로마 성 베드로 성당도 많은 순교자들이 묻힌 묘지 위에 건립되었으니.

왼편 프란치스코의 문과 베드로의 문. 그 문이 그 문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아시시 역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면 그곳에 떡하니 서서 반기는 문이 하나 있다. 아시시로 들어가는 성문. 그게 성 베드로의 문이다. 버스가 내린 곳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광장. 이게 광장? 그렇다. 이곳이 프란치스코 성당과 이어져 있다. 그렇게 다들 성 베드로의 문을 들어서면, 도시가 예뻐 방문을 하건, 영성을 얻고자 순례자가 되건,  남들이 좋다고 해서 왔건, 당신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도시 아시시에 빠져든다. 나중에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면 필연적 이게도 성 프란치스코의 문을 통해 아시시를 떠나는데, 이런 우연이!  베드로의 문을 통해 시작해서 프란치스코의 문을 통해 아시시를 떠나니.

성 베드로 성당. 여긴 문양이 3개이다.

암튼, 설렘으로 베드로의 문을 통해 조금 걷다 보면 바로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성 베드로 성당이다. 프란치스칸의 성당이 아닌 베네딕토 수도회가 운영하는. 성당과 건물 밖 조형물하고 아시시 들판이 조화롭다. 이곳에 가을에 온다면 만족감이 더 높아질 것 같다는 해봤자 소용없는 생각을 뿌리치며 걸음을 재촉했다.

산타마리아 성당 입구와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님. 신부님은 통화 중!

이 더위에 박차를 가해 더 올라가니 눈에 확 띄는 남자가 나타난다. 프란치스칸 신부임을 대놓고 드러내는 신부님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뭐 하는 거지? 프란치스코가 신부가 된 곳이라는 성당이 여기인가?  줄은 도대체 뭔 줄이지? 가까이 가보니 신부님 주변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신부님이 서 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경자에서 복자가 된 카를로 아쿠티스의 유해를 보려는 인파로 북적인다, 고 하려니 경을 칠 일이다. 의자에 앉아 혹은 서서 고요히 묵상을 하는 그네들을 보면서 죽음을 대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과 복자의 젊은 얼굴을 보니 그냥 숙연해졌다. 죽음이란 게!

죽음 끝엔 뭐가 있을까?

천주교에서는 가경자, 복자, 마지막으로 성인이란 호칭으로 존경할 만한 분들을 결정하는데, 이런 종교적인 내용보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안타까움을 넘어서, 죽은 사람을 이렇게 투명한 관에 넣어 공개를 하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기야, 신앙적으로 죽는다는 것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죽음과 다르지 않겠는가. 성당 안 분위기가 싸 했을까? 그러고 보면 세상에 알려진 대부분의 성당 지하가 무덤 아니던가. 서울 명동성당 지하도 무덤이고. 로마의 다른 성당들도 그렇고. 잠시, 숙연함을 뒤로하고 산타 키아라 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 키아라 성당 앞과 순례자들

아시시에서 가장 가야 할 성당 두 번째인 이곳에 도착을 하는데, 음악과 함성 소리? 아니, 내가 온 걸 어떻게 알고! 돌아온 탕자를 맞아주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배려일 것이라는 것을 오직 '믿음'으로 믿고 걸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성당 마당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내 이름은 들리지 않지만. 뭘까라는 호기심에 다가가니 어디선가 순례객들이, 그것도 젊은 순례객들이 모여 뭔가를 축하하는 것 같다. 생일 축하?? 어디서 왔을까? 그들의 함성과 노래는 저 아래 아시시 들판을 가로지르고.  

아시시 성당들의 특징인 장미꽃 문양. 예쁘다. 성당 옆을 왜 이렇게 아치 모양으로 만들었지?

그들의 행동에 눈이 팔려 지켜보다 성당 문을 쳐다보니 쓱 하고 닫힌다. 어라? 이런! 오후 2시까지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어떡하지? 아시시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는 16:05분에 떠나는데, 이곳에 다시 오자니 시간이 없다. 아직 성 루피노 성당과 성 프란치스코 성당도 가지 못했다. 첫 번째 바실리카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는데. 여기에 로카 마조레는? 난감하다. 성당 공개 시간이 성당마다 다르고, 점심때 문을 닫는 성당들이 있다고 생각한 들 어쩌겠는가? 그저 키아라 성녀께서 용서를 비는 수밖에!

아시시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욕심이다. 이곳을 반나절에 다 둘러보겠다는 것이 애초, 이건 거리 때문이다. 피렌체에서 이곳을 오는 것도 로마에서 이곳을 와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 결국, 이곳을 오가는 데 5시간이 걸린다는 말이다. 이곳에 머물지 않는 한 아시시 주요 성당들을 다 둘러본다는 것은 무리였다는 건 금방 들통났다. 날림으로 보면 충분한 한나절 여행 장소지만, 좀 더 세심히 본다면 부족한 시간. 그러니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산 루피노 성당과 성녀 키아라 생가. 수녀님은 미동도 없으셨었다.

그다음 성당은 산 루피노 성당이다. 역시나 앞에 바실리카라는 말이 붙지 않으니 덜 중요할 수도 있지만, 성 프란치스코와 키아라(클라라)가 처음 만난 곳이고 세례를 받은 곳. 이 성당과 붙어 있는 건물이 성녀 키아라의 생가인데, 성당과 집이 이렇게 붙어 있다니. 그녀 집안의 위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성당 정면을 보면 어디선가 봤던 모습인데, 이걸 장미창이라고 하니 장미겠지만, 이 장미가 그냥 장미던가. 가시 없는 장미를 본뜬 장미창. 오, 그렇다. 이곳 대부분의 성당 모양이 다른 걸 이제야 알다니.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아 성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직행하려다,

로카 마조레 전경

반대편이다. 그래서 동선을 처음 짤 때 가장 마지막에 이 성당을 넣은 것이다. 아시시 역으로 돌아가야 하는 오후 3시 너머까지 그 성당에 머무르기로 하고 짠 계획. 지켜야 해서가 아니라 동선이 안돼 기쁘게 포기하고 로카 마조레로 방향을 틀었다. 사진 명소 중 하나인 이곳을 더위를 무시하고 부지런히 걸어서 오른 그곳. 로카(요새)는 정말 로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로카를 평지에 짓겠는가? 전망이 가장 탁월한 곳에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짓지 않겠는가. 그러니 아시시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포인트는 당연할 터. 그래서 더위에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시시 평야. 그렇지만 요새 아니던가. 황제파와 시민파로 나눠 치고받고 했던데. 아시시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 페루자와 많은 싸움을 벌였다는.

바위 틈에 난 꽃 한송이.

그로 인해 프란치스코 성인도 전쟁에 참여하고, 붙잡혀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고.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앞에 우뚝 말 탄 기사. 전쟁에 나가 패해 나중에 돌아온 기사가 당당히 얼굴을 둘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의 귀환이란 동상. 성을 말하다 세속으로 새는 것 같지만 이 평화로워 보이는 아시시 들녘도 많은 전쟁으로 얼룩졌다니. 도대체,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각 도시들끼리 얼마나 치고받는 전쟁을 얼마나 벌였던 것일까? 사실, 이걸 무시하면 피렌체를 시에나를 피사를 로마를 베니스 등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남부 나폴리까지. 여기에 종교까지 가세한 역사라니.


아시시 미네르바 성당. 아시시 다른 성당과다르게 화려하다.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온 곳이 아시시 코무네 광장이다. 아시시 중심가이자 번화가. 잘 되었다 싶어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궁리하다, 멋진 외관에 끌려 불쑥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고대 로마시대 때 지은 신전 건물. 여섯 개의 기둥이 우뚝 우람하게 서 있는. 들어가서 보니 성당인데, 아시시에 본 다른 성당과 좀 다르다. 내부가 화려했다. 이런 성당도 있군 하고, 둘러보고 다시 나섰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라 그냥 스킵! 성당이 아니라 점심을. 이런! 날씨는 덥고 배는 고프고. 타야 할 기차 시간에 쫓기고. 그럼에도 간 곳이 역시나 아시시 대표 성당임을 확인시켜 준 바로 그곳.

열일하는 군인들? 어찌 건물이 위태 위태하다. 벽돌 색깔과 질감이 다른 곳과 다른 것 같다.

서둘러 갔더니 성당 입구에서 누가 뭐라고 손짓을 한다. 바로 눈치를 채다니. 이탈리아 짬밥이 좀 되었나 싶은 게, 바로 이해했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라고. 성당 입구부터 시작하라는 손짓. 그래서 내려갔더니 웬 젊은 학생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다. 성당 입구 왼편 건물이 무슨 중학교나 고등학교 같았다. 마치, 명동성당 바로 옆에 고등학교가 있듯이. 이곳이 그런 곳 같았다.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뒤로하고 성당 입구로 들어섰다. 여기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이탈리아 최애 장소. 어쩜 이번 여행 최고가 되어야 할 이곳에 내가 서 있다니. 감격스러워하다 그냥 안으로 쑥 들어갔다. 성당은 시원할 것이란 기대감에 망설이지 않고.

성당 주변


암전! 그렇다. 여기도 사진 촬영 금지다. 이런 이런! 그럼에도 꼼수를 부렸다. 남들 따라 했다. 뭘 했길래?? 가져간 울트라를 사용했다. 분명히 욕 얻어먹을 짓을 했는데, 내부에서는 그렇게 제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나 같은 나쁜 분들이 열심히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난 그날 그랬다! 하지 말라는 짓을 했으니, 회개와 반성을!

성당 입구와 성당 내부

아, 이렇게 끝내면 안 된다. 왜냐고? 당연히 늦은 점심을 대강 해치우고 기차에 올라타 로마에 들어왔다. 드디어, 머리털 처음 나고 로마에 온 것이다. 다른 곳도 다 처음이면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남들도 오는 로마지만, 제목을 단 이유를 말해야 한다. 사람들은 아시시에 왜 갈까? 그러는 당신은 왜 갔을까? 나는 정말 아시시에 왜 그렇게 가고 싶었을까? 이건 정말 내겐 숙제다. 그곳에 그렇게 가고 싶었던 이유 말이다. 로마 가는 길에 시간이 나서,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성인 묘소와 예쁘다는 말 말고 다른 말 찾기 어려운 성당 내부

참고로 로마에서 아시시를 처음 온다면 도시 아시시가 예쁘다고 하겠지만, 알다시피 아시시는 움브리아주 페루자도에 있는 곳이다. 피렌체에서 이곳에 왔다면 피렌체는 토스카나 주에 있다. 이 차이가 뭔고 하니?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지만, 짧은 이번 여행을 통해 확인한 것은  토스카나 주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피렌체에서 시에나, 산지미냐뇨, 피사를 짧게 둘러본 소감이지만, 그곳에서 로마에 오는 내내 어떻게든 기차에서 졸지 않고 밖을 내다본 결과로는 그랬다는 것이다. 아시시가 제일 예쁜 소도시는 아닐 거라는 생각. 그건 시에나와 산지미냐노를 보고 난 소회인데,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런데 넌 아시시에 왜 갔냐고?

아시시를 남겨두고 로마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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